SF작가가 그리는 선택의 의미.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서, 수도 없이 많은 선택을 한다. 하나의 선택은 크고 작게 인생의 행보에 변화를 일으킨다.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우리는 전혀 알 수 없기에 항상 그 선택을 하는 때에 있어서 깊게 고민한다. 이렇게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에는 우리의 자유의지가 관여한다. 생의 경험에서 우린 자연스럽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이런 자유의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런 세상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선택의 삶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 있다. 테드 창 작가의 “숨”이다. SF소설만이 가져올 수 있는 설정을 통해서 철학적 사고 실험을 진행하고 이에 따라 고찰하게 만든다.
이 책은 9개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며 각각이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자유의지와 운명 그리고 이에 연결되는 선택에 대해서 다루는 소설에 관해만 이야기하려 한다.
자유의지는 실존할까? 실제로 과학계에서 이 주제는 상당히 논쟁적인 주제다. 실제로 과학에서는 자유의지가 없다는 주장이 꽤 있다. 프랑스의 수학자 라플라스는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이것은 뉴턴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해 주고, 미래까지 예언할 수 있을 것이다.’라 했다. 이는 모든 일이 빅뱅 이후 결정되어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뉴턴으로 대비되는 고전역학에서의 결정론은 이 라플라스의 악마로 귀결되며 이는 자유의지를 부정한다. 이후에 자유의지란 없음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들도 진행되었고 다소 증명되는 듯 보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이는 논쟁적인 주제이며 철학적인 사유를 지닌다.
이 책에서는 과거와 미래로 이동할 수 있는 문이 첫 소설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에서 등장하지만, 주인공이 시간 이동해서 세상을 바꾸려 해도 바뀌지 않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하나의 우주에 변화되지 않는 결정론적 관점이 투영되어있다.
이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에서는 대놓고 자유의지가 없음이 증명된 세계가 나타난다. 자유의지의 부재가 증명된 이후 사람들은 무동무언증에 걸리게 되는데, 이는 아무런 행동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마지막 소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에 이르러 작가는 자유의지와 선택에 대해서 중도의 태도를 보인다. 이 소설에서는 ‘프리즘’이란 장치가 등장한다. 이는 평행우주를 기반으로 하며, 이 장치를 통해서 다른 우주에 있는 존재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프리즘을 통하며 다른 세계에 있는 ‘또 다른 나’와 대화를 할 수 있고 그 세계의 ‘나’는 이곳의 ‘나’와 다른 선택을 한다. 처음 나온 소설과는 달리 다중우주를 긍정한다.
이 소설은 다중 평행우주를 긍정하면서 결정론을 부정한다. 결정론이 부정되면서 운명이란 없고 우리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미래를 가변할 수 있다고 여길 만한 상황이 된다. 그런데 소설 속 사람들은 다른 생각을 보인다. 수많은 평행 세계를 접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택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기 시작한다. 오히려 수많은 평행 세계를 마주하다 보니,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 평행우주의 존재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선택이 무의미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그들이 취하는 모든 행동이 그들이 정반대의 선택을 하는 평행우주의 존재에 의해 상쇄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p.452)
소설에서 수많은 평행세계의 존재는 선택의 가치를 희석시켰다. 인물들은 선택의 가치가 반대되는 선택을 하는 세계에 의해서 희석된다고 여기고, 현재의 선택을 무의미하게 여긴다.
이렇듯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무가치해진 선택을 보이고, 가치가 없어진 선택은 무동무언증의 가치없는 존재를 만든다. 결국 작가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삶을 어찌 살아가야 하는가? 라고 강렬한 질문을 던진다.
실제로 자유의지가 있는지 혹은 없는지는 모른다. 다만, 삶에서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질문은 언제나 던질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작가는 자신만의 대답을 마련해두었다. 소설 "옴팔로스"에서는 자유의지를 긍정하는데, 이 소설은 창조론이 증명된 세계가 등장한다. 이후에 새로운 학설이 증명되는 상황이 펼쳐지는데, 이는 신이 인류를 창조했지만 창조할 의도가 없었다는 증명이다. 인류는 신이 실험용으로 만들었거나, 다른 창조물을 만들다 생긴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인류가 특별하지 않은 아주 사소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 이때 하찮아진 인류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건 자유의지 때문이라 말한다.
"진정한 선택을 하는 경우 우리는 물리법칙의 작용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결과를 일으킨다. 자유의지에 의한 모든 행동은, 우주 창조와 마찬가지로, 제1원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p.391)
자유의지를 긍정하면서, 이는 신의 창조와도 버금가는 기적이라 칭한다. 선택을 기적과도 같은 것이라 칭하며 우리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고 언급한다.
이는 소설 "우리가 해야 할 일"에서도 이어지는데, 자유의지가 없음이 증명됐던 이 소설의 화자는 미래의 인물이다. 이 인물은 과거로 편지를 보내며 무동무언증이 발생하는 현실을 알리고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자유의지를 가진 척 살아달라고 한다. 자기기만으로 자유의지의 부재를 피하라한다. 화자는 자기기만을 '선택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줄 알면서도 선택이 중요하다는 듯 살아가는 태도'라 말한다.
소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에 도달해서야, 선택이 희석된 세계를 맞이하고 난 선택의 가치를 고민하게 되었다. 작가는 선택을 기적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선택이 무의미하게 희석되버리기도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되는 두 태도를 각 소설에서 보여주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 상당히 걱정도 많이하고 두려워한다. 중요하면 중요할 수록 쉬이 선택하지 못하고 고통받는다.
뜻처럼 되지 않네.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우리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어쩌면 대부분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이럴 때 문득, 선택은 사실 무의미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유의지와 선택이 기적이든, 아니면 자기기만으로 인한 회피이든 간에 난 선택을 내 의지로 자각할 것이다. 그것이 가져오는 결과는 의외로 중요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선택이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면,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변화를 가져온다면 선택의 충만한 가치를 만끽하면 된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에서 선택은 두 극단 사이의 어딘가에 희석된 채로 존재할 것이다.
마지막 소설의 제목.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실존주의 철학자인 쇠렌 키르케고르의 구원의 개념에서 가져온 말이다.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상반되는 내부요소를 규합하며 성장하는 존재임을 자각했고, 불안은 이런 자유의지의 영역에서 오는 '현기증'이므로 구원 역시 이 자유를 자각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아무리 선택의 가치가 희석되어있더라도, 내 자유를 자각하기만 하면 구원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