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 이제 좀 알겠다' 싶은 순간이 있다. 하루의 패턴이 어느 정도 자리 잡혀 가는 때.
우리 아기의 하루 일과
5~6시 : 기상. 첫 수유
8시 : 아침 이유식
9시 : 아침잠
10~11시 : 놀아주기, 수유
12시 : 점심 이유식
13시 : 동네 산책
14시 : 수유, 낮잠
15~16시 : 놀아주기, 수유
18시 : 저녁 이유식
19시 : 저녁잠
23~24시 : 수유
2~4시 : 수유
기저귀는 2시간, 수유는 3시간, 잠은 3~5시간 텀. 복잡해 보이지만 나름 균일한 텀으로 하루 일정이 짜여있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해진다.
우리 아기는 울음소리가 우렁찬 편이지만, 이유 없는 울음은 없기에 배고픔, 기저귀, 졸림, 심심함 중에 정답이 있다. 이제 아기 울음소리를 구분하고, 달래는 것에 능숙해져간다 싶었다.
인생의 모든 일이 그렇듯 항상 내 뜻대로만 돌아가진 않는다. 익숙해질 때 즈음 예상치 못 한 일이 일어나는데, 그게 바로 어제였다. 아침잠을 자야 하는 시간인데 아이가 잠드는 듯하다가 깨버렸다. 그대로 잠들지 않아 열심히 놀아주었다. 그렇게 아침잠 없이 오전이 지나가고 어느덧 오후가 되었다.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한 아이는 계속 울고 무엇을 해도 달래지지 않는 것이다. 나름 쌓아왔던 달래기 노하우를 총동원했음에도 아이는 달래지지 않았다.
나는 감히, 우리 아이를 잘 알고 있다고 착각했다. 사람이 타인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것이 자식일지라도 나는 완전히 그 사람을 알 수 없다. 태어나서 현재까지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했어도 완전히 알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인데, 어리다고 해서, 내 아이라고 해서 잘 알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그러고 나니, 내 주변의 모든 사람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가장 가까운 또 한 사람, 남편부터 나의 원가족 구성원인 엄마, 아빠, 언니, 할머니. 매일 혹은 가끔 연락을 나누는 친구들. 회사 동료들. 가까운 사람일수록 나는 그를 잘 알고 있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무슨 생각을 할지, 어떤 반응을 할지 내 마음대로 예상하고 판단해 버리고 만다.
돌이켜 보면 참 제멋대로 생각하고 살았다. 나와 친하고 가까운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멋대로 판단한 날이 많았다. 나의 생각과 결정을 당연한 것인 듯 강요한 나날도 있었다.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쩔쩔매며 달래는 순간에 나는 30여 년 간 이기적이었던 나의 인생을 반성했다.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인생의 여러 결정적인 변화를 겪다 보면 그 이전에 연결되었던 관계들은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특히 그러하다. 학교 다닐 땐 모든 게 비슷했던 우리가 각자의 선택을 하면서 공통점보단 차이점이 많아진다. 아니, 애초에 우리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지만 그 당시에 그저 하루 일과가 겹쳤던 것뿐일지도 모르겠다. 차이점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차이점을 문득 깨닫게 되면서 이제는 너무나도 달라진 하루 일과를 체감한다. 그렇게 공감대는 사라지고, 대화는 줄어들고, 공유하던 일상들이 없어진다. 그래서 내 인생이 진행이 될수록 친구들과 멀어지고 나는 고립된다고 느끼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것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루하루 아이는 나와 멀어지는 연습을 한다. 한 몸이었던 처음의 순간부터, 세상으로 나와 '분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한 몸처럼 지내던 시절. 뒤집기를 하고 혼자 힘으로 앉게 되고, 저 앞까지 기어가게 되고. 어느 순간 일어나서 제 힘으로 걷고, 그렇게 나와 점점 먼 곳으로 달려 나가게 될 것이다. 아이의 인생에 여러 결정적인 변화를 겪다 보면 나와의 관계도 점차 느슨해질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고립이 되는 기분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친구 관계와 부모 자식 관계의 차이가 있다면 멀어지는 듯해도 다시 가까워지는 순간이 돌아올 것이라는 점. 멀어지고 느슨해지는 우리의 관계가 서운하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은 아이가 제 발로 설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기에 마냥 슬프게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이를 키우며 나의 인간관계를 다시 생각한다. 나의 인간관계를 생각하며, 나와 아이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매일 나에게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퍼질 때도 있지만, 이 과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 이기적이고 독단적이었던 나의 인간관계를 반성하며, 아이에겐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다시금 마음을 바로 잡는다. 나는 너를 완벽히 알지 못하고, 완벽히 알 수도 없다. 아이와 나의 일상은 언젠가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될 것이다. 각자의 속도로 살아가되, 아이가 온전히 자신의 속도를 찾을 수 있도록 함께해주는 엄마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