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주가'라는 별칭을 붙일 정도로 잘 마시는 건 아니지만, 나는 술을 제법 좋아하는 편이다. 여행을 가면 물 대신 맥주를 마시고, 가끔 낮술 마시는 것을 좋아할 뿐.
코로나 직전 떠났던 마지막 해외여행에서도 어김없이 나는 맥주를 마셔댔고, 한국에 돌아와 임신 6주임을 알게 됐다. 임신을 알게 된 순간 기쁨과 동시에 '맥주 마셨는데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태아 알코올 증후군'은 아기에게 치명적인 장애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질문에 의사 선생님은 극초기에는 신체 재생능력이 뛰어나 자연 재생된다며 큰 영향 없다고 해주셨다. 그럼에도 나는 임신 기간 내내 '임신 중 맥주 먹은 엄마'라는 죄책감에, 유산이 되지는 않을까 아기에게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걱정해야 했다. 다행히 아기는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조리원에서부터 생겨 신생아 시절 내내 아기를 괴롭힌 태열은 또다시 나를 죄책감에 들게 했다.
어영부영 8개월째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초보 엄마. 술을 못 마신 지 어언 18개월이 되어가니 술 생각이 간절해졌다. 주변에서 '정 못 참겠으면 무알코올 맥주를 마셔봐라'라는 말에 편의점에서 무알코올 맥주를 종류 별로 사 왔다. 조금씩 시음을 하며 내 입맛에 맞는 맥주를 찾았다. 나의 원픽은 칭따오 논알코올 맥주. 내가 좋아하는, 목 넘김이 편하고 좋은 향과 구수한 맛이 나면서 기존 맥주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나는 배달의 민족답게 인터넷으로 한 박스를 주문해 배달을 받았다. 맥주의 맛은 느끼면서 취하지 않는다니. 논알코올 맥주를 발명한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문명의 이기를 한껏 이용하자는 생각에 매일 한 캔씩 마셔댔다. 그러다 문득 캔을 자세히 살펴봤는데 'NOT MORE THAN ALC 0.05%'라고 쓰여있었다. 알코올이 0.00%가 아니라니?
찾아보니국내 주세법상 알코올 함량 1% 미만의 술은 무알코올 음료로 구분된다고 한다. 알코올 함량이 0.00%이라면 '무알코올', 1% 미만이라면 '비알코올/논알코올'로 구분된다고. 하이트와 클라우드는 알코올 0.00%인 '무알코올'이지만 내가 마신 칭따오는 0.05%의 '논알코올' 주류인 것이다.
술 한 잔을 마시면, 두 시간 이후부터 안전하게 모유수유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술 한 잔은 맥주 기준 340~360ml. 순수 알코올 14g이 들어있는 양을 말한다. 알코올 섭취 후 30~60분 후에 알코올이 모유에 가장 많이 나오고, 2~3시간까지 나올 수 있다. 모유에 언제까지 알코올이 나올지는 알코올 섭취 양, 섭취 속도, 함께 먹은 음식, 엄마의 체중과 체내 알코올 분해 시간 등 여러 요소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섭취한 맥주 335ml에 알코올 0.05%라면 알코올의 양은 극소량으로, 혈중 알코올 농도는 0에 가깝다. 그렇지만 0은 아니다. 다행히 나는 대체로 마지막 수유를 끝낸 뒤 섭취를 했지만, 섭취 후 얼마 되지 않아 수유를 한 적도 있을 것 같다. 그제 새벽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잠을 잘 수 없었다. 내가 아기에게 알코올을 전해준 것이라면 어쩌지?
걱정되는 마음에 맘 카페와 지식인, 유튜브 등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나처럼 '알코올 제로'일 것이라 믿고 맛있게 먹었다는 후기부터, 한 입도 절대 마시면 안 된다는 강성 의견, 한 모금 마셨는데 괜찮을 것이냐는 질문글까지. 수많은 엄마들이 논알코올 맥주에 대해 근심 걱정을 표하고 있었다. 그중 한 질문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논알코올 맥주 한 모금 마시고 수유했는데, 아기 얼굴이 빨개져 취한 것처럼 보여요. 괜찮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기가 그 정도 양에 취할 리가 없음에도, 근심 걱정에 눈먼 애미들은 바보같이 느껴지는 그런 의문들이 들고 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미 마신 술은 애써 괜찮을 것이라고 자기 위안 중이며 남은 논알코올 맥주는 남편 몫으로 넘길 예정이다. 그 사이 아기에게 나타난 소소한 문제들이 나의 알코올 섭취 때문인가 죄책감이 들어 잠 못 이루는 밤이지만, 죄지은 애미는 스스로 죄를 사하여 주며 마음의 짐을 더는 수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당분간 아기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혹시 내가 그때 마신 술 때문에..?'라는 생각을 무한 반복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