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독박 육아를 시켜보니

by 아리

남편은 육아에 매우 적극적인 편이다. 퇴근을 하자마자 손을 씻은 뒤 아기를 안아 달래주고, 주말이면 나 대신 아기 옆에서 잠들며 내가 낮잠 자는 동안에도 바지런히 아기를 돌본다. 내가 모유수유를 하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수유 담당이 되어, 그 외의 육아, 집안일 영역은 최대한 남편이 맡고 있다. 주말만큼은 주양육자가 되어 나에게 쉬는 시간을 주기도 한다.

문제는 퇴근이 늦다는 것. 보통 8시, 늦으면 9~10시쯤 집에 들어와 평일에는 아기가 깨어있는 모습보다 자고 있는 모습을 더 많이 본다. 아침에 출근인사를 하는 시간과, 밤에 한 번 짧게 깼을 때 보는 것이 전부인 부녀 관계. 늦은 퇴근에 본인의 의사는 없었기에 참으로 슬픈 일이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완전한 자유의 시간'을 주려 노력한다. 남편은 나에게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을 주고, 나는 남편에게 자전거 탈 시간을 준다. 그 시간만큼은 육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다만 빈도와 시간이 조금 다른데, 남편의 자전거는 휴일 하루 당 2시간 정도, 내가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한 달에 한두 번 하루 당 5~8시간 정도다. 시간의 총합을 생각하면 서로에게 나쁘지 않은 거래인 셈이다.




보고 싶었던 영화가 개봉한 날, 나는 남편에게 휴가를 쓰게 하고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왔다. 오후 3시에 나가 밤 11시 정도에 돌아올 예정이라 8시간, 하루 근무시간에 맞먹는 독박 육아를 부탁하게 됐다. 평일 동안 나의 육아 근무시간은 24시간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왠지 억울한 마음이 들면서도, 휴가날에도 육아 근무를 해야 하는 남편이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옷을 차려입고 화장을 하니 아기가 나를 낯선 눈길로 바라보았다. 내 치마 가락을 잡고 보채기 시작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 집을 나서니 발걸음이 세상 가벼워졌다. 사무실만 가면 시름시름 앓다가 퇴근하는 순간 말짱해지는 것처럼, 집이라는 근무지를 나서니 엄마로서의 책임감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엄마인지라, 친구들과 대화하는 틈틈이 남편이 보낸 아기 사진을 보고, 남편이 기록하는 아기 스케줄을 체크했다. 지금쯤 낮잠을 자야 하는데 보채지 않고 잘 잤나? 저녁 이유식 먹고 목욕할 시간인데 남편 혼자 잘했을까?




회사를 다닐 땐 퇴근 후에 회사일을 절대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육아는 잠시 쉬는 순간에도 쉼 없이 아기를 생각하게 된다. 하루 24시간 내 옆에 꼭 붙어있던 아기를 떼어놓고 나 혼자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 괜한 죄책감이 드는 것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다는 말을 애써 되뇌며, 잠깐의 자유를 즐기려 애썼다. 그럼에도 집에 돌아오는 길은 항상, 아기 사진과 영상을 돌려보며 이산가족 상봉하러 가는 길인 양 애틋해지곤 한다.

8시간의 즐거운 외출 후 집에 돌아오니, 아기는 이미 잠들어 있고 남편도 거실에 널브러져 누워 있었다. 식탁 위에는 급히 해치운 듯한 남편의 저녁 잔해물과 빈 젖병, 아기 기저귀가 뒹굴고 있었다. 평소엔 서로가 귀가하면 문 앞 마중 나오던 우리인데, 남편은 바닥에 붙은 채로 지친 미소를 지으며 잘 다녀왔냐고 인사를 해주었다. 남편에게 오늘 어땠냐고 물으니 '고독했다'라고 답했다. 아기와 함께 하는 하루가 고독하고 적막했노라고. '귀여운 아기랑 있는데 왜 고독해?' 나는 이유를 알면서도 남편에게 되물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한 사람을, 내가 온전히 돌봐야 한다는 게 생각보다 고독하더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귀여운 아기와 항상 함께 한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지만, 온전히 타인에게만 집중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제법 피곤한 일이다. 내가 그의 욕구를 모두 만족시켜 주지 못할까 봐, 그 때문에 아프거나 훗날 작은 결핍이라도 생길까 봐, '어떻게 애를 키웠길래 애가 이 모양이야'라는 말을 한 번이라도 듣게 될까 봐. 온종일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아기를 위한 완벽한 하루를 만들려 노력한다. 오늘도 고된 몸을 이끌고 쉼 없이 일을 하는 남편이 어서 퇴근해 나의 고독함을 해소해 주길 바라면서, 야근하는 그를 타박한다. 집에 아기를 두고 집을 나서는 아빠의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서로의 일상이 뒤바뀐 하루를 보내고 나서야 우리는 서로가 느껴온 무게와 고독함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남편에게 독박 육아를 시킨 하루, 서로에게 '고생했다'라고 말해주며 그 마음을 헤아려 본다.

ps.
독박 육아 다음 날, 남편은 밤 11시가 되어서야 퇴근을 했다. … ….

keyword
이전 12화아기와 산책하며 만나는 4가지 유형의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