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보내며

첫 등원 소회

by 아리

단지 내 어린이집에 덜컥 합격하긴 했는데 정작 보내려니 걱정되는 것들이 많았다.

근심 걱정들과 함께 봄 학기는 가정보육으로 대체했다. 여름이 오니 어린이집의 등원 독촉이 시작됐다. 마침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교사 대 아동 비율 개선 시범사업'에 우리 어린이집이 참여하게 되어, 7월부터 교사 1명 당 아동 3명에서 2명으로 변경되었다. 연말 복직을 앞두고 슬슬 보내볼까 생각하던 차에 원장님의 강력한 설득으로 7월 1일, 처음으로 어린이집 등원을 했다.


반년을 고민하다가 전날 갑자기 결정된 첫 등원. 양가 부모님께 이 소식을 알리니 우리 집에선 잘 됐다며 기대된다는 반응을, 시댁에선 마음이 아프다는 반응을 보이셨다. 어린이집 관련 안 좋은 뉴스들을 많이 읽었다는 어머님은 작은 아이를 벌써 어린이집에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신 모양이었다. 걱정돼서 잠을 못 주무실까 걱정되어 나까지 늦게 잠들었다.


잠들기 전 어린이집 가방에 짐을 챙겨보았다. 어차피 나도 같이 있을 거고 30분 정도 있다 올 거라 뭘 챙겨야 될까 싶긴 하지만, 기저귀와 손수건, 이름이 적힌 애착 장난감, 쪽쪽이를 가방 깊은 곳에 쑤욱 집어넣었다. 항상 집에만 있어 굳이 물건에 이름을 쓸 필요가 없었는데 처음으로 아기 물건에 아기 이름을 써넣자니 나의 첫 등교, 첫 출근처럼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아기의 첫 사회생활은 자신의 것에 이름을 써넣으며 '나'를 분명히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어린이집 등원의 백미는 등원룩 코디하기. 어린이집에서는 외출복을 입혀야 할지, 집에서 입던 실내복을 입혀야 할지 헷갈렸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어머님이 사주신 예쁜 노란옷을 꺼냈다. 아기에게도 중요한 날이니 가장 예뻐 보이는 옷을 골라주고 싶었다.




첫 등원 날 아침. 9시까지 등원해야 하는데 아기가 8시 반에 갑자기 잠이 들었다. 평소엔 10시 정도에 잠드는데 갑자기 잠투정을 하더니 평소보다 일찍 오전 낮잠에 든 것이다. 원장님께 등원이 늦을 것 같은데 내일 갈까요, 물으니 늦어도 꼭 들르라고 했다. 다행히 아기가 9시 반 정도에 일어나 후다닥 옷을 입히고 어린이집으로 갔다.


어린이집은 현관부터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출석 태그가 달린 가방을 들고 어린이집 현관에 들어서자, 출석 기계 화면에 우리 아기의 얼굴이 떴다. 자동으로 출석 확인이 되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0세 반 교실에 아기와 함께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5명의 아기들이 놀란 얼굴로 우리를 바라봤다. 청일점인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에 우리 아기도 울까 긴장했는데 우리 아기는 교실을 둘러보느라 바빴다. 6명 중 4명이 돌이 지났고 1명은 우리 아기와 비슷한 9월 생이라고 했다. 이름도 우리 아기랑 비슷해서 자매처럼 잘 지내보자고 인사를 건넸다. 낯선 가족들과 만나면 1시간씩 울어대던 아기라, 어린이집에서도 엄청나게 오열하겠지 싶었는데 의외로 우리 아기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라 벙쪄있는 내게 원장님이 아기를 두고 원장실로 오라고 말씀하셨다. 아기 몸을 선생님 쪽으로 돌리고 교실을 빠져나오는데 아기는 내가 가는지도 모르고 장난감에 집중했다. 집에선 잠시 화장실만 가도 울던 아기인데. 복잡한 생각이 마구 떠오르는 와중에 원장님은 쉴 새 없이 우리에게 등원을 재촉한 이유, 어린이집 생활의 즐거움 등에 대해 말씀하셨다. 코로나 때문에 작년부터 모든 학부모들이 적응 기간에도 어린이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는데, 나는 걱정이 많아 보여서 처음으로 입장을 허가한 것이라고 했다. 지금 나에게 쉼 없이 말을 걸어주시는 것도 처음으로 아기를 낯선 곳에 떼어두고 근심이 가득한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됐다.


원장님과 한참 떠들고 나니 순식간에 30분이 지났다. 교실로 돌아가 아기 이름을 부르니 아기가 후다닥 기어서 내 품 안으로 들어왔다. 선생님께 어땠냐고 물으니 울지도 않고 잘 놀았다고 한다. 내가 가방에 챙겨 넣었던 쪽쪽이를 물고 있는 걸 보니 잠깐의 칭얼거림은 있었던 것으로 추측이 되었다. 원장님은 오늘 아주 성공적이었다며 내일은 들어오지 마시고 문 앞에서 인사하고 가보자고 하셨다.


집으로 돌아와 정신없이 집안일과 식사를 챙기고 나니 어느새 오후가 되었다. 밖으로 나와 단지 안을 산책했다. 엄마 혹은 아빠, 할머니와 하원한 많은 아이들이 놀이터를 채우고 있었다. 보호자들은 벤치에 앉아있고 아이들만 놀이터에 모여 각자의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놀이를 하며 그들만의 사회생활을 능숙하게 해내고 있었다. 놀이터를 뒤로 하고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아기와 단 둘이 걷고 있자니, 아기와 단 둘이 지냈던 지난 9개월의 기억이 천천히 떠올랐다. 등 뒤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아기가 만나게 될 친구들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다음 날, 두 번째 등원을 하고 생애 첫 키즈노트를 받았다. 새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재미나게 놀았고, 책상을 잡고 옆으로 걷기도 했다 한다. 내가 없는 곳에서도 잘 노는 아기의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기도 하고 내심 서운했다. 가장 크게 드는 마음은 애틋함이었다. 아기가 없는 30분. 처음으로 아기 없는 집에 홀로 남아보니 영영 보낸 것처럼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아기들은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가면 낯선 곳에 혼자 남아 엄마가 다신 돌아오지 않을까 봐 무서운 마음이 든다는데, 엄마가 느끼는 마음도 얼추 비슷한 심경이리라. 아이들은 엄마와 분리되면서 불안함을 느끼지만 이내 다시 만나면서 정서적 안정감 되찾는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신뢰와 안정을 쌓아간다. 엄마 역시, 같은 마음일 것이다.


오후에는 증손녀의 첫 등원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할아버지는 잘 다녀왔냐는 안부인사에 이어 본인의 딸(이자 나의 엄마이자 아기의 외할머니)이 어릴 적 얼마나 말이 빨랐고 영특했는지 뿌듯한 얼굴로 자랑하셨다. 이제 환갑을 앞두고 있고 어느새 할머니가 된 본인의 딸이, 지금껏 애틋한 것이다.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면 "너한테는 엄마지만 나한텐 소중한 큰 딸"이라고 말씀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 고작 30분 간의 이별로 온갖 감상에 빠져있는 내가 느끼는 애틋함과 60년 동안 이어져 온 할아버지의 애틋함이 같은 깊이일 순 없겠지만, 평생 이어질 애틋함의 시작점에서 새삼스럽게 아기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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