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자라나고 엄마는 늙어간다

by 아리


육아 10개월 차로서 말하자면 아기는 6개월 이후에 급격히 성장하는 것 같다. 자기 힘으로 뒤집고 앉게 되면서 새롭게 보고 만지는 것들이 많아진다. 아기는 기다렸다는 듯 집안을 돌아다니고, 모든 것을 입으로 넣어보면서 감각을 넓혀간다. 가만히 누워서 울거나 자는 것밖에 못 하던 아기는 온종일 새로운 것들을 찾아 나서는 모험 쟁이가 되었다.


반면 엄마는 매일이 같다. 아니, 같으면 다행일 지경으로 매일 점점 늙어가고 나약해지는 듯하다. 수술 직후 깨끗했던 제왕절개 부위는 켈로이드가 생겨 크게 부어오르고 가끔 참을 수 없이 간지럽다. 자고 일어나면 허리와 어깨가 늘 뻐근하고 손목은 종일 시큰거린다. 최근에는 생리가 다시 시작되어 20개월 만에 생리대를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임신 출산으로 얻은 유일한 행복이 기어코 끝나고 말았다.


신생아 시절 아기는 하루 두어 시간을 제외하고 잠 자기 바빴다. 그러던 아기는 이제 낮잠 한 두 번과 10시간가량의 통잠을 자는 '사람다운' 수면 패턴을 가지게 됐다. 반면 나는 아기가 태어난 이후 한 번도 6시간 이상 통잠을 자본 적이 없다. 아기는 잘만 자는데 나 혼자 새벽에 몇 번이고 일어나고, 밤에는 겨우 얻은 자유 시간이 가는 게 아쉬운지 쉽사리 잠들지 못해 늘 새벽 2시쯤 잠이 든다. 남편은 대체 그만큼 자면서 어떻게 사냐고 물었다. 내가 봐도 '사람답지 못한' 수면 패턴을 가지게 됐다.



요즘 나의 가장 큰 걱정은 잘 늘지 않는 아기의 몸무게다. 태어날 당시에는 딱 평균 몸무게였던 아기가 지금은 하위 20% 정도의 몸무게라 이유식의 문제인지 모유의 문제인지 매 끼니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우상향으로 꾸준히 늘고는 있어서 괜찮겠거니 위안 삼고 있다. 사실 더 걱정해야 할 건 내 몸무게일지도 모르겠다. 생후 100일경, 임신 전 몸무게로 돌아왔었지만 항상 급하게 대충 끼니를 때우다 보니 몸무게가 만삭 시절로 회귀하고 있다. 이제 내 뱃속에는 아무도 없는데. 뱃속에 있던 아기는 배 밖으로 나와 자기 몸무게를 천천히 늘려가고 있는데 엄마는 홀로 빠른 속도로 몸무게를 늘려가고 있다.


5개월 vs 10개월. 아기티를 점점 벗어나고 있는 모습이 기특할 따름.



아기가 낮잠을 자면 나는 핸드폰에 찍어둔 아기 사진을 정주행 한다. 갓 태어난 쭈글쭈글 시절부터, 태열이 한껏 올라 얼굴이 불긋했던 시절, 볼살은 빵빵하고 머리숱은 없어서 키위같던 시절을 거쳐 뽀얗고 갸름한 지금에 이르기까지. 길고도 짧은 아기의 일생을 사진으로 되짚어 보며 찡한 마음을 품는다.

그러다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임산부 시절, 임신하기 전 신혼 시절, 결혼 준비 시절, 연애 시절 내 사진이 나온다. 지금보다 어리고 날씬하고 촉촉하던 시절. 몇 살 더 먹은 나는, 유독 초롱초롱해 보이는 그 시절 내 눈빛이 아득히 먼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결혼 준비하던 시절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하루하루 바지런히 성장하고 있는 아기와 달리, 나는 하루하루 늙어만 가고 제자리에 머무는 것 같았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혼자 생각해서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을 때 어느새 흘러버린 시간만큼 내 시간을 몽땅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온종일 아기와 놀다가, 아기가 잠들어 오랜만에 TV를 켰다. 인터뷰 프로그램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사람들은 의외로 가진 것이 많음에도 자신의 부족함만 생각한다고. 그 말을 듣고 내가 가진 건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10개월 동안 아기를 키운 것 외에 무엇을 했지?

일단 책을 읽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책을 읽었던 때는 없는 것 같다. 메모장을 열어보니 올해 들어 약 30권의 책을 완독 했다.

그리고 나름 '유튜버'로서 한 주도 쉬지 않고 매주 2편의 영상을 만들었다. 점점 줄어가는 조회수가 슬프긴 하지만 '꾸준함'이 가장 큰 장점인 나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깨지 않겠다는 의지 하나로 아기가 잠든 매일 밤 영상을 편집했다.

몇몇 친구는 출산 전보다 멀어지고 심지어는 절교도 했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더 가까워지고 속내도 더 많이 털어놓게 됐다. 항상 힘이 되어주어 고마운 마음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더 없을까 고민하게 되는 소중한 친구가 생겼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나의 아기. '성과'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부족한, 경이로운 아기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임을 떠올렸다. 내 품 안에서 나의 돌봄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던 아기가 혼자 뽈뽈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배우는 모습이 그저 기특한데, 나도 우리 엄마 눈에는 놀라운 성장을 하고 있는 모습 아닐까? 나 또한 엄마 품에서 아무것도 못하던 아기였는데 어느덧 자라나 한 사람을 키워내고 있으니. 아기가 울거나 아프면 그저 내 탓으로 여기면서도, 아기가 예쁘게 잘 자라는 것은 내 덕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이 들고나니 괜히 우쭐해져서 자고 있는 아기를 벅찬 마음으로 바라봤다.


처음인데도 뚝딱뚝딱 아기를 잘 키워낸 나, 제법 기특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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