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만에 조카를 만났다. 이제 28개월이 된 조카는 못 본 새 엄청난 성장을 해서 대화가 가능한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조카의 성장에 놀란 건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11개월이 된 우리 아기는 이제 물건을 잡고 일어나고 혼자서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으며 죔죔, 도리도리를 하며 애교를 떨 수 있는 꼬마가 되었다.
조카에게 "여기 어딘지 기억나?"라고 물으니 주저 없이 "아기!"라고 외쳤다. 아기가 사는 집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아기를 반가워하진 않았다. 조카는 인형과 장난감이 가득한 우리 집을 둘러보며 행복의 비명을 지르기 바빴다. 낮잠 2시간을 푸욱 자고 일어난 우리 아기 역시 오랜만에 만난 사촌언니를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나마 또래 아기 중에서는 가장 많이 본 사이임에도, 기억력 혹은 인지능력이 떨어져서인지 아니면 아는 얼굴이라도 누군가 우리 집에 오는 것이 불편해서인지 반가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대화가 가능한 28개월 조카와 놀아주는 건 제법 재밌다. 전에는 뭘 하고 싶어 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워서 늘 오답만 반복하는 이모였고, 피차 답답해서 조금 놀아주다 관두기 일쑤였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지금은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노는' 기분이 든다. 소리가 나거나 작동하는 장난감의 사용법을 한 번 보여주면 조카는 바로 따라 할 수 있었다. 많이 컸다곤 하지만 아직 대화가 온전히 이뤄지지 않는 우리 아기와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정신없이 조카와 놀아주다 싸한 기분에 돌아보니 의자에 앉아있던 우리 아기가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겪어보진 않았지만 바람피우다 걸린 사람의 기분이 이런 걸까 싶었다. 아기를 의자에서 풀어 매트에 내려주니 나에게 얼른 기어와 안겼다. 조카도 내 손을 잡고 인형놀이를 하자고 하는 통에, 괜스레 뿌듯한 인기쟁이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베실 베실 웃는 나와는 다르게 아기의 표정은 비장했다.
평소 아기가 인형을 꺼내며 놀던 곳에 조카도 자리를 잡고 섰다. 아기와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귀여워서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꼬마 아가씨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일단 우리 아기가 먼저 언니를 밀쳤다. 본인이 가야 하는 길에 언니가 턱 막고 있으니 아기 입장에선 정당방위지만, 놀이에 있어서 양보의 미덕, 함께 노는 배려의 기본을 알고 있는 언니 입장에선 어이없는 처사였다. 조카는 나에게 손짓과 눈짓으로 "얘가 지금 저 밀었어요"라고 말하고 있었고, 우리 아기는 한치의 부끄럼도 없는 당당한 표정으로 인형 놀이를 재개했다. 다행히 두 아가씨에게 양 손 가득 인형을 쥐어주어 큰 싸움으로 번지지 않았다.
바로 옆 인형 바구니에 우리 아기를 앉히고 동요를 불러주며 놀아주자, 어김없이 조카가 따라 들어왔다. 작디작은 리빙박스에 두 아기의 몸이 꽉 끼게 들어찼다. 나의 간드러진 동요 소리에 조카는 까르르 대며 적극적인 리액션을 취했고, 인형들을 들이밀며 이렇게 저렇게 인형놀이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나는 두 아기에게 공평하게 눈 맞춤을 하며 노래를 불러주다, 조카의 요청에 맞춤형 인형놀이를 해주었다. 인형의 뒤통수만 봐야 하는 아기의 표정이 다시, 심상치 않다. 언니는 인형의 표정을 이리저리 따라 하고, 인형 대신 대답도 하면서 재미나게 인형놀이를 즐기는데 우리 아기는 무미건조하게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다시 한번 싸한 기분을 느낀 나는 뒤늦게 우리 아기를 향해서도 인형을 흔들었지만 이미 아기의 눈빛은 싸늘해진 뒤였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의 싸한 타이밍들이 있었다. 아기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던 자동차 장난감을 집어온 조카. 언니 손에 쥐어진 자동차 장난감을 뺏어 들어 입에 무는 우리 아기. 그 모습을 보고 똑같이 장난감을 빨아대는 조카. 둘 사이에 질 수 없는 미묘한 신경전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같은 것을 가지고 다르게 놀다가, 따라 하며 놀다가, 뺏으며 놀다가, 엄마/이모에게 달려와 안기는 모습들이 다른 듯 닮아 있었다. 조카를 보며 '우리 아기가 좀 더 크면 이렇게 재밌게 놀아줄 수 있구나' 싶으면서도, 매 순간 최선과 진심을 다해 놀아주어도 부족한 아기의 마음을 생각해봤다.
5시간가량 열정적으로 놀다가 조카가 떠났다. 우리 집을 떠나는 이모, 이모부, 사촌언니의 모습에 우리 아기는 힘차게 빠빠이를 했다. 문 닫히는 쿵 소리와 함께 아기의 표정이 한껏 밝아졌다. 곧 똥 쌀 것처럼 불안 불안했던 표정은 사라지고 평온함만이 남았다. 이제 온전히 엄마를 독점할 수 있다는 안도였을까. 평온함은 이내 흥분으로 이어졌다. 평소와 같이 놀아줘도 더 크게 웃고 더 오래 신나 했다. 그 덕에 아기는 평소보다 훨씬 늦은,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깊게. 온종일 경계하고 질투하는 일이 꽤나 흥분되고 피곤했던 모양이다.
아무런 의사표현도 하지 않던 신생아에서, 조금씩 의사표현을 하는 아기가 되자 신경 쓸 것이 많아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리적인 욕구만 충족시키면 되었던 육아 초기에서, 공명정대, 평등함, 그리고 비교하지 않는 자세로 무장해야 하는 육아 중기 두 아기 돌보기는 나에게도, 아기들에게도 결코 쉬운 시간이 아니다. 아기에겐 제법 피곤한 날이었지만 다시 돌아보면 처음 해보는 놀이가 많았던 새로운 날이었고, 처음 겪는 감정도 배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아기와 나는 또 어떤 새로운 감정과 시간들을 마주하게 될까. 살아가면서 아기가 질투하는 날보다 내가 질투하는 날이 많을 것을 알기에, 오늘의 경험이 귀엽고, 신비롭고, 즐겁고,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