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중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친정살이다. 친정에서 며칠 묵으며 엄마 아빠와 육아를 함께하는 시간. 나는 친정이 차로 3시간 거리라 한 두 달에 한 번 큰 마음먹고 가야 해서, 매주 아기를 데리고 친정에 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내가 아기를 데리고 며칠 집을 비우면 남편이 서운하지 않을까 싶어 한 번도 얘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슬그머니 이야기를 꺼냈더니 너무나 흔쾌히 다녀오라고 답했다. 이게 바로 남편들이 환장한다는 '와이프 친정 갔다' 로구나.
마침 교사인 엄마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열흘 간 친정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빠도 일주일 간 휴가를 냈다고 했다. 남편이 데려다준 뒤 혼자 서울로 올라오고 열흘 뒤에 다시 우리를 데리러 오는, 2주 연속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번거로운 일. 게다가 남편은 우리가 없는 일주일 동안 일로 바빠 매일 야근까지 했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본 남편의 얼굴은 맑고 건강해 보였다. 열흘 간 육아를 쉰 덕분일 것이다.
솔직히 엄마 아빠에게 '육아에 대한 도움'을 기대하긴 어렵다. 아빠는 육아를 적극적으로 했던 사람이 아니라 사실상 육아 경력이 제로. 엄마는 여러 번의 수술과 약해진 손목으로 아기를 안아줄 수 없는 상황. 게다가 낯선 곳에서 거세게 칭얼대는 아기 덕에 육아 난도는 한껏 업그레이드. 그럼에도 그냥 어딘지 모르게 마음만은 편했다.
독박 육아를 할 땐 내가 한 눈 파는 순간 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에 항상 긴장상태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위험한 것들을 모두 치워놓았음에도 항상 예상치 못한 곳에서 아기는 넘어지고, 울고, 화를 낸다. 엄마 아빠는 손녀와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나와는 다른 의미에서 아기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아기가 누구를 더 닮았는지, 곤지곤지 죔죔은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책을 펼칠 수 있는지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친정에서의 첫날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처음 집에 도착했을 때 아기가 낯을 가리지 않고 잘 웃어서, 이거 성공이다, 싶었는데 문제는 밤이었다. 우리 아기는 잠투정이 있는 편인데 낯선 장소에선 강도가 더 강해졌다. 아빠표 인간 바운서 1시간 탑승 없이는 쉽게 잠들지 못했고, 심지어 한 시간마다 일어나 울어댔다. 첫날 밤을 보낸 나는, 남편 없이 열흘 동안 이 거친 밤을 어찌 버텨야 할지 막막했다.
다행히 3일 차 정도가 되자 아기는 친정집에 적응을 마쳤고 평소처럼 통잠을 무리 없이 잤다. 할머니 할아버지표 놀이도 나름 자리를 잡아, 아기의 웃음 포인트를 정확히 노릴 수 있게 되었다. 엄마가 틈틈이 사둔 아기 장난감은 큰 박스를 가득 채울 정도였고, 아기는 하루 종일 상자에서 장난감을 꺼냈다 넣었다 하며 놀았다. 우리 집만큼 아기에게 최적화되어 있진 않지만 아주 가끔 놀러 오는 손녀를 위해 준비한, 집안 곳곳에 숨어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마음을 발견하는 것이 즐거웠다. 어느새 아빠의 컴퓨터와 핸드폰 배경화면도 아기 사진으로 채워졌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식사시간이었다. 엄마는 매일 아침 갖가지 채소가 들어간 샐러드를 만들어주셨다. 비트, 양배추, 당근, 방울토마토, 블루베리, 샐러리에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와 레몬을 두르고 마지막으로 꿀과 발사믹까지 곁들인. 거기에 구운 달걀과 현미빵, 직접 만든 블루베리잼, 우유까지. 결코 나 혼자서는 챙겨 먹을 수 없는 초호화 아침을 매일 준비해주셨다. 본인이 먹는 것을 하나 더 만들면 되는 거라고 했지만, 출산 후 내가 먹은 모든 음식 중 가장 정성스럽고 호화스러운 음식이었다. 풀때기와 과일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내가 살면서 이렇게 또 엄마와 오랜 시간 함께 아침을 먹는 때가 또 올까' 싶어서 느적느적 천천히 씹어 넘겼다. 샐러드에선 어떤 풋내도, 쌉싸래한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달고, 신선했다.
어느 날은 아기가 유독 칭얼대면서 나에게 조금만 떨어져도 울어댔다. 덕분에 기껏 구운 한우를 못 먹고 있을 때, 엄마는 소고기에 구운 채소, 김치까지 곁들여 내 입에 계속 넣어주셨다. 결국 그날은 엄마가 먹여주는 고기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매일 이유식을 받아먹는 아기의 마음이 이런 건가 싶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빠가 아기와 대화하던 모습이다. 사실 아빠의 일방적인 사랑고백일 뿐이지만,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아기 코 앞까지 얼굴을 들이밀며 너무 예쁘다고 말하는 아빠의 모습이 그저 보기 좋았다. 아기에게 구운 감자와 고구마를 먹여주면서 잘 먹는다고 기특해하기도 했다. 아기는 할아버지가 먹여주는 족족 날름날름 잘 받아먹고 더 달라고 보채기까지 했다. 할머니 집만 가면 배가 터질 때까지 밥이며 간식이며 먹고 오는 게 국룰이라더니, 아기에게도 해당되는 모양이다. 아기새처럼 입을 뻐끔거리며 할아버지의 숟가락을 기다리는 아기의 모습에, 아빠의 광대는 내려올 일이 없었다. 자식보다 손녀가 예쁘다고들 하더니. 나를 볼 때와는 사뭇 다른 아빠의 눈빛이 낯설면서도, 내가 어릴 적엔 어떤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열흘 동안 아빠의 성장도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아기가 조금만 울어도 어디 아픈 거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던 아빠는 제법 오랜 시간 아기를 안고 달랠 수 있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아기도 내 곁을 떠나기만 하면 오열하다가, 열흘 뒤엔 할머니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면 죔죔을 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아기로 변해있었다.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웃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열흘 간의 휴가인 듯 휴가 아닌, 행복한 시간을 보낸 후 집에 돌아오니 다시 고독한 독박 육아가 시작됐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보물처럼 차곡차곡 담아온 그때의 영상과 사진들을 꺼내어 본다. 다음 친정살이는 언제 할지, 복직 전에 가족 여행은 언제쯤이 좋을지 떠들면서 이따금씩 몰려오는 외로움을 달랜다. 체할 듯이 급하게 레토르트 끼니를 먹을 때면 엄마표 호화 샐러드가 그리워지지만, 마냥 외롭고 서럽지만은 않다. 함께 한 기억으로 나 홀로 독박 육아를 버텨본다. 우리 인생은 항상 즐겁고 행복하진 않지만 때때로 행복했던 기억으로 살아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렇게 우리 엄마 아빠는 나를 키웠을 것이고, 키워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