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첫 돌이 지난 후, 이제야 비로소 아기와 대화가 된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제대로 말할 수 있는 단어는 없다. 우연인 듯 '엄마', '물'을 말하고, 신기한 장난감을 보여주면 '우와'라고 외치긴 하지만. 아이와 나는 말이 아닌 눈짓, 손짓, 감탄사로 대화하고 있다.
가장 많은 대화가 이뤄지는 것은 식탁이다. 유아식을 시작한 아이에게 식판 5칸이 가득하도록 반찬 이것저것을 담아주었다. 낯선 것은 절대 막 주워 먹지 않는 아기라, 원래 먹던 밥만 먹으려 했다. 밥 숟가락에 반찬을 얹어 앞에 가져다 주자, 반찬만 쏙 골라내어 들어내고 나를 바라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밥 속에 반찬을 숨겨놓으면 아는지 모르는지 잘 씹어먹는다. 밥을 잘 먹길래 이것도 먹어보라며 국물을 떠먹여 주자 바로 손으로 밀쳐내며 다시 고개를 흔든다. '밥 외엔 필요 없다'는 명확한 의사 표현이었다. 한참 뒤 식사가 끝나면 꽤나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들며 앞에 있는 컵을 가리킨다. 가끔은 '물'이라고 뭉개지는 발음으로 외치지만 대부분은 입에 음식을 가득 문 채 손가락만 치켜든다. 빨대를 입 앞으로 대령시키면 숨도 안 쉬고 꿀떡꿀떡 물을 마시다가 흡족한 얼굴로 입술을 뗀다. 자신의 요구사항이 충족된, 제법 만족스러운 식사였던 모양이다.
최근에는 숟가락질을 시작했다. 숟가락으로 음식을 마구 휘저으며 장난을 칠 때는 경고를 주며 인상을 쓰고, 숟가락을 입에 쏙 넣으면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쳐줬더니, 내 눈을 똑똑히 바라보며 숟가락을 입에 넣고 자기 스스로 박수를 친다. 어서 박수를 치며 자신을 칭찬하라는 의미일 테다. 유아에게 '부모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한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쾌적함을 누리기 위한 필수항목이라는데, 우리 아기도 어느새 그 스킬을 익힌 모양이다.
아이의 쉼 없는 요구사항, 새로운 반찬을 먹이겠다는 의지, 덜 어지럽히면서 주어진 양을 다 먹게끔 유도하는 과정. 아기의 요구와 엄마의 의지가 은근하게 기싸움을 하는 식사 시간. 항상 결말은, 아기는 만족스럽고 엄마는 어딘가 찜찜하게 끝나곤 한다.
전쟁 같은 식사를 마치면 나는 한껏 지치는데 아기는 한껏 신이 나있다. 설거지를 마침과 동시에 쉴 틈 없이 아이와 놀이시간을 가져야 한다. 우리 집에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모았던 장난감이 한가득 있는데, 우리 아기는 아기용으로 구입한 장난감보다는 자신보다도 먼저 이 집에 자리를 잡고 있던 장난감에 관심을 더욱 보인다. 아기용 장난감을 흔드는 엄마를 뒤로 하고, 자신이 원하는 인형 혹은 장난감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주저 없이 꺼내 든다. 이리저리 흔들어보다가 내게 건네주면, 이걸로 어떻게든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보라는 뜻이다.
요즘엔 까꿍놀이를 가장 좋아하는데 커튼으로 몇 번 까꿍까꿍 해주면 신나서 본인 스스로 커튼 뒤에 숨는다. 내가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기다리면 커튼 속에서 까르르 웃음소리를 내는데, 어서 자신을 찾아서 까꿍! 해달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내가 가만히 있으면 빼꼼 커튼을 걷어서 나를 쳐다본다. 또, 과일 장난감을 들고 큰 소리로 냠냠냠! 먹는 체를 하면, 계속해서 내게 과일 장난감들을 쥐어주다가 한 번씩은 자기가 과일 하나를 들고 먹는 시늉을 한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 배가 출출해지면, 소파 위에 있는 쿠션을 들어 내게 가져온다. 내가 항상 수유를 할 때 머리를 받치던 쿠션이다.
싫을 땐 고개를 휘휘 젓는 것, 숟가락을 야무지게 쥐어 입 안에 음식을 넣는 것, 손바닥을 마주 모아 손뼉을 치는 것, 장난감을 흔들어 소리를 내는 것, 커튼을 걷어 활짝 웃는 것, 과일 장난감을 먹는 척하는 것, 쿠션을 엄마 무릎 위에 올리는 것.
모두 내가 하는 행동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이다. 내 행동을 몇 번이고 관찰하다가, 어떤 의미일지 생각을 하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타이밍에 그 행동을 따라 해 본다. 얼마나 대단한 사고의 발전인가. 그저 생존의 욕구밖에 모르던 아기가 어느덧 자신의 선호를 인지하고, 일부는 수용하고 일부는 거부하며, 더 재밌게 자극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 단계에 이른 것. 아직은 혼자 걷는 것도, 단어 한 마디 또렷이 말하는 것도 어려운 아기지만 이제야 욕망을 할 줄 아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우는 것밖에 몰랐던 신생아 시절에는 울음소리로 아기의 니즈를 파악하곤 했다. 입을 크게 벌리고 기침을 하듯이 켁켁대며 우는 것은 배고픈 상황, 짜증을 내듯 우는 것은 기저귀 교체, 어딘가 힘 없이 팔을 축 늘어뜨리고 울면 졸린 것. 심지어 아기의 울음소리 구별법이 바이블처럼 전해지고, 울음소리를 듣고 판별해주는 어플까지 나올 지경이니 이 세상의 엄마 아빠들은 아기와의 의사소통을 간절히 기다려온 것 같다. 늦은 밤 갑자기 깨어 울면 '대체 엄마가 뭘 잘못했니. 말을 해줘'라고 혼잣말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눈짓, 손짓, 감탄사로 내게 말을 해준다. 여전히 이유 모를 울음을 터뜨리곤 하지만, 내가 무어라 위로의 말을 건네면 수긍했다는 듯 진정할 때도 있다.
아기의 성장은 항상 놀랍다. 작은 행동들이 쌓여, 문득 돌이켜보면 꽤나 엄청난 변화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육아의 패러다임은 변화하고 순식간에 다음 단계에 이르러 있다. 생리적 욕구만 빠르게 채워주면 되던 '원초적 육아'에서, 다양한 방식을 통해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지켜야 할 규범을 가르쳐야 하는 '소통의 육아'로. 내 행동이 곧 아이가 체득하게 될 새로운 규범이라고 생각하면 눈짓 하나, 표정 하나, 눕는 모양 하나하나 가벼이 여길 것이 없다. 지금 버릇이 여든까지 갈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