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고집이 반갑다

by 아리

우리 집은 고집쟁이들의 집합체다. 나와 남편, 아기 모두 최 씨라 최 씨 고집들의 모임이라고 부른다. 나는 회사에서도 선배들에게 고집은 세 번까지만 부리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다. 남편은 겉으로 보기에는 유순한 성격이지만 집안일이나 육아에 있어선 은근히 자기 고집을 부리는 경향이 있다. 내가 아기에게 무엇을 해주라고 말했는데 별다른 대꾸가 없다면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 나도 다시 고집을 부려 한 번 더 이야기하는데, 그럼에도 끄떡 않고 본인 뜻대로 행동한다. 대체로 남편의 뜻대로 했을 때 나쁘지 않은 결과가 나왔기에 남편에게는 덜 고집부리려 노력 중이다.


두 최 씨의 아기라. 우리 아기도 만만치 않은 고집을 가질 것이라 예상은 했는데, 생후 10개월을 앞둔 지금부터 서서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지금은 고집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귀여운 투정에 가깝다. 올라가면 안 될 곳에 엄마를 밟아가면서까지 올라가고,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땐 온몸을 뒤집어 가며 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순간에는 그 고집이 버겁게 느껴지지만 나는 아기의 고집이 반갑다.



우리 가족 중 고집왕을 뽑는다면 단연 할머니라고 말할 수 있다. 내 고집의 근원지인 할머니는 '보통이 아닌 성격'이셨다. 누가 지적을 하면 참지 않고 반박을 하는 사람이었고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 명확해서 항상 그 뜻을 가족에게 전달하는 분이었다. 몇 년 전 고관절 골절로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이 바뀌었다. 할머니에게 남은 감정은 분노와 체념뿐인 듯이 의료진에게 화를 내거나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고 밥도 한 술 뜨지 않으셨다. 80년 만에 처음으로 입원한 병원은 할머니에게 큰 공포를 주었고 이는 섬망 증세로도 이어졌다. 이미 골절은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할머니의 히스테리는 심해져 심지어는 할머니의 팔을 묶어야만 하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자타공인 할머니가 가장 아끼는 손녀였던 나는 병원에서의 할머니 모습이 그저 슬펐다. 격렬하게 화를 내는 모습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듯했고 긴 분노 끝에 아무 말도 않고 밥 한 술 안 뜨는 모습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듯했다. 아무런 고집도 부리지 않는 할머니를 보며 나는 할머니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한없이 슬펐다.


의료진들의 노력 끝에 할머니는 점차 호전이 되어갔고 나의 갖은 애교로 할머니는 겨우 밥 한술을 뜨게 되었다. 할머니의 섬망 증세는 며칠 만에 좋아져서 다시 내 눈을 바라보며 대화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병원밥이 맛없다고 투정 부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나는 그저 반가웠다. 할머니의 투정과 고집은, 삶의 의지의 귀환 그 자체였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전처럼 마음껏 걸어 다니거나 배불리 식사를 하시진 못하지만 고집은 전과 같았다. 고춧가루가 조금이라도 들어간 매운 음식은 질색하고, 국수와 짜장라면을 좋아한다. 입에서 살살 녹으면서 달달한 죠리퐁 과자는 항상 머리맡에 한 두 봉지씩 쌓여있어야 하고. 씨름과 레슬링 경기 보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에는 트로트가 나오는 오디오를 가장 좋아하신다. 치아가 점점 약해져 이제는 마시는 영양제밖에 못 드시지만 내가 부엌에서 무언갈 먹고 있으면 자신에게는 권하지도 않냐며 웃음과 함께 투정을 부리신다.



사람은 늙을수록 아기의 모습이 되어간다. 딱딱한 음식을 씹지 못하거나 혼자서는 걷지 못하는 신체적인 변화도 있지만, 같은 것을 여러 번 묻기도 하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고집을 부리는 모습이 아기와 유사하다. 할머니가 여전히 고집을 부리는 것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붙잡고 있다는 의미다. 아기의 고집은 자아를 발견하고 자기 자신을 쌓아가는 출발점이다. 각자 생애 시작과 끝에서 나는 반가운 고집을 발견한다.


아기가 고집을 부리는 것은 엄마와 나를 온전히 구분하게 되어, 엄마의 뜻과 다른 '나의 뜻'을 관철시키고 싶은 욕망의 탄생을 의미한다. 그러다 이따금씩 짜증을 부리는 것은 그런 욕망에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답답하다는 뜻이다. 때로는 고집이 먹혀들어 본인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본인의 뜻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굴복하게 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정도'를 배워가게 될 것이다. 고집의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아기는 여러 색을 지닌 자신의 모습을 쌓아갈 터다. 아기의 고집은 제대로 성장의 과정을 밟고 있다는 증거이자, 한 명의 인간으로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몸도 마음도 더 자라면 더더욱 버거운 고집을 부리게 되고, 지금의 반가운 마음은 언제 왔었냐는 듯 사라지겠지만. 나는 우리 아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아이가 될지, 그렇게 고집을 부려 이루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나보다 대단한 고집쟁이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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