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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Mar 17. 2022

어린이집 중독자의 열흘 가정 보육기


일일 코로나 확진자 60만의 시대. 청정지대를 유지하던 우리 어린이집도 기어코, 확진자가 나오고야 말았다.



우리는 어린이집에서 가장 보수적인 편에 속했다. 혼자서만 오전반만 보내다, 연초에 병이 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선생님의 권유로 오후반까지 보내게 됐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어린이집에서 보내게 해도 될까' 걱정하던 과거의 나는 어디로 갔는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동안 세상 알차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





[3 8~9]


그러던 나의 일상이 갑자기 1년 전으로 원복 된 것은 지난주 화요일의 일이었다. 아이 체온이 37.5도를 넘겼다며, 긴급 하원을 해달라는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다. 평소에 체온이 높은 편이긴 하지만 어린이집의 정책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이 하원 해야 했다. 본래는 오후에 글도 쓰고 영상도 편집하고 할 일이 많았지만, 곧바로 컴퓨터를 끄고 아이를 데려 왔다.



갑자기 마주한 가정보육.

아이와 놀아줄  있는  뭐가 있을까 정리하며 나름의 놀이 메뉴판도 만들어봤다. 도화지   가득 메뉴가 채워졌지만 1시간 만에 소진되고 말았다.



다행히 다음 날은 선거일이라 남편과 함께 육아를 할 수 있었고, 남편은 메뉴에 없는 재밌는 놀이를 어떻게든 만들어냈다. 아이 컨디션도 좋아져서 한 시간 넘게 아파트 단지에서 산책을 했다. 그 와중에 아이가 넘어져서 인중에 꽤 큰 상처가 생겼다.



[3 10~11]


목요일 아침, 아이를 등원시키려 하는데 아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밤에도 잠투정이 있었는데 아침에도 일어나지 못하고 울면서 뒹굴뒹굴 굴러다니기만 했다. 겨우 달래면 다시 쌔액쌔액 잠들었다. 아침 먹을 시간이 지났음에도 계속 잠만 자려했다. 땀을 뻘뻘 흘리던 아이가 겨우 일어난 시간은 오후 3시. 아무것도 먹지 않은 아이에게 천천히 먹을 것을  입에 넣어주니 조금 기력을 차리는 듯했다. 체온도 높지 않고 콧물, 기침도 없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도 조금 놀아주니 컨디션이 돌아와서 안심이었다.



다음날 등원시킬지 말지 고민을 한참 하다, 일단 가서 체온이라도 재봐야겠다 싶어 어린이집에 갔다. 집에선 아무리 재어도 36.5도를 넘지 않던 아이의 체온은 어린이집에서 또다시 37.5도를 기록했다. 출석체크만 하고 바로 뒤돌아 나와 병원으로 향했다.

평소 가던 병원이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 일단 무작정 가보기로 했다. 버스를 놓칠 새라 아이를 둘러업고 뛰는데 기사님이 다행히 기다려주셨다. 비몽사몽 버스에서 내리다 짐까지 흘렸다. 친절한 기사님이 경적소리로 알려주셔서 주섬주섬 주워 들었다. 병원 가는 길마저 이렇게 험난해서야.

힘들게 도착한 병원에는 대기자가  명도 없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아이들의 경우 비대면 진료가 원칙이지만 오셨으니 대면 진료해드리겠다고 해주셨다. 의사 선생님만 보면 오열을 하던 아이는, 진료 내내  번도 울지 않고 힘없이 그저  늘어져 있었다. 선생님은 체온도 그리 높지 않고 감기 증상도 보이지 않으니 코로나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일단은 감기약을 처방해주셔서 약국에서 아이의 감기약과, 혹시 필요할지 모를 코로나 상비약을 바리바리  왔다.  와중에 약국에서는 결제가  번이 되었다는 사실을 집에  뒤에야 알았다. (다행히 전화로 해결했다)



[3 12~13]


험난했던 금요일을 보내고  같은 주말. 드디어 남편과 공동육아를   있는 날이다.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다 잠들면 내가, 내가 지쳐 드러누우면 남편이. 암묵적 교대 시스템으로 평화롭게 육아를   있었다. 다행히 아이 컨디션도 좋아졌다. 남편과 있으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힘든 일은  혼자 있을 때만 오라는 법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남편이 육아를 잘했기 때문일까.



평화로운 주말 끝무렵, 같은 반 아기 부모가 확진이라는 공지가 키즈노트에 떴다.



[3 14~15]


부모가 확진이면 그 집 아기도 꼼짝없이 양성일 텐데, 어린이집에 보내도 될까? 고민을 하다 일단은 보내보자 하고 등원을 시켰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어린이집에서 또 연락이 왔다. 그 아이가 결국 확진이 되었다고, 같은 반 아이들은 이틀간 등원할 수 없다고. 그렇게 또 반나절만에 나의 짧은 자유가 끝나고 다시 가정보육이 시작됐다.



어린이집 보내기 전까진 온종일 아이를 봐왔는데,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한 후에 보려니 얼마나 힘든지. 내가 어린이집 중독자가 되었기 때문인지 아이의 고집이 가장 강해진다는 18개월이 되어서인지.

아이는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해주지 않으면 허리를 꼿꼿하게 펼치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장난감을 쥐어주면 재밌게 놀다가 냅다 던지며 재미없어 죽겠다는 얼굴을 했다.



다행히(?)   전에 주문한 장난감이 도착했다. 아기 핑계로   취향의 인형들. 아이와 나는 함께 박박 포장을 뜯어 곧장 가지고 놀았다. 아이의 노잼 얼굴을  뒤라 포장을 뜯는 손이 더욱 분주했다. 그렇게 겨우 이틀을 보냈다.



그리고 화요일 저녁, 같은 반의  다른 아이가 확진이 되었다는 공지가 떴다. 퇴근한 남편은 목이 칼칼하다며 진단 키트를 꺼내 들었다. 다행히 음성이었다.



[3 16~17]


짧은 시간에 같은 반 다섯 아이 중 둘이 확진이라니. 다음은 우리 아이 차례일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증상이 슬슬 나타나는 아이 아빠. 이대로 어린이집에 보낼 순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께는 이번 한 주는 쭉 가정 보육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내 마음은 무거웠다. 또 뭘 하며 놀아줘야 하나?



내 마음을 읽은 듯 아이는 온종일 노잼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잘 먹던 밥도 먹지 않고 던지기 일쑤였다. 설상가상 요통까지 와서 제대로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온종일 누웠다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힘겹게 아이를 돌봤다. 삼시세끼 아이 밥 차리는 것에 지쳐서 내 밥을 챙겨 먹을 힘도 없었다. 밥을 먹지 않으니 힘은 더 빠지고 쉽게 짜증이 났다. 사람에게 탄수화물이란, 마음의 온도를 조절시키는 기능이 있는 듯하다.



퇴근 후 남편이 와도 반갑지 않고 그저 누워만 있고 싶었다. 아이에겐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내 억지미소를 지어 보이며 꾸역꾸역 놀아줄 것을 찾았다. 아이가 잠든 뒤에는 평소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있는 동안 해왔던 일들을 폭풍처럼 해치우고 잠들었다.



목요일. 이제는 정말 임계치에 다다른  같다. 가정보육을 하는 기간동안 아이는 남편과 함께 기상했다. 오전 6. 낮잠도 자지 않으려 했다. 나는 오전 내내 꾸벅꾸벅 병든 닭처럼 졸았고 아이는 놀아달라 끊임없이 보챘다. 엄마와 온종일 있는데도 심심해 보이는 뒷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지만, 어린이집 중독자에겐  몸의 무게가 죄책감보다 무거웠다.



결국 그동안 꺼내지 않았던 비장의 무기, TV 켰다. 미디어 노출만은 최소화하고 싶었는데  몸이 고단해서 도저히  되겠다 싶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채널을 조금 보여주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애니메이션 영화를 틀었다. 가족애를 주제로  영화라 모성애가 가득 차올랐다. 최선을 다해 온몸을 써가며 아이와 놀아줄 힘이 생겼다. 콘텐츠의 힘이란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강력하다.



오후에는 놀이터에 나갈 힘도 생겼다. 포근해진 날씨에 많은 아이들이 놀이터에 나와있었다. 또래를  발견한 우리 아가는 조심조심 다가가 옆에서 같은 놀이기구를 만지작거렸다. 처음에는 서로 낯을 가리다 이내 편해진  같이 계단을 오르내렸다. 노는 와중에 손을 밟히고 밀쳐넘어지기도 했지만 아이는 해맑았다. 엄마와 함께 있던 열흘이 아이에게도 꽤나 힘든 일이었나. 또래를 만나니 평소 보지 못한 설렘의 미소가 보인다.



집에 오는 길에 아이가 좋아하는 떡을 사니, 당장 입에 넣어달라고 난리다. 길바닥에 드러누워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우리 아기가 언제 이렇게 컸지. 아이의 투정에서 아이의 성장을 불현듯 느낀다.




낮에는 아이의 시간을 알차게 채워주지 못하는 스스로를 탓하며 꾸역꾸역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낮에 찍어둔 아이 영상과 육아법 영상을 돌려보며 '내일은 오늘보다 알차게 놀아줘야지' 반성했다. 그리고 다시 낮이 찾아오면 아이의 노잼 표정에 다급한 마음만 들었다.


어린이집에 대해  누구보다 보수적이었던 나는 단기간에 어린이집 중독자가 되었고, 아이와  시간 놀아주기도 벅차 하는 0점짜리 엄마가 되어있었다. 그런 자괴감에 빠질 때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가정 보육하는 내내, 매일 통화를 했다) 엄마에게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털어놓고 근황을 묻다 보면 자괴감 잊을  있었다. 엄마에게도 나는 작디작은 아이였을 텐데 어느새 자라나 아이를 돌보고 있으니,  자체로도 기특한  아닌가 하며 자존감을 충전했다.



그리고 내일은, 다시 아이를 등원시키기로 했다. 또다시 확진자가 나온다면 가정보육을 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아이를 온종일 보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아직도 내 허리는 아프고 밥덩이를 던지는 아이 앞에서 표정관리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전보다 자신감이 붙는 것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여실히 체험했기 때문이다.

짜증이 나면 밥을 먹자. 자괴감이 들면 엄마에게 전화를 하자. 놀아줄  없으면 노래를 부르고 TV 틀자. 모성애가 부족할  가족애 충만한 영화를 보자. 아이를 돌보는 것이 고되다 생각될 , 복직  지금  순간을 그리워하게  그때를 생각하자. 나는 아이의 가장 예쁜 시절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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