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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Jun 09. 2022

언니가 생기니 철부지가 되었다


우리 3 아이, 언니4, 1 아이들의 열흘  동거가 끝나간다.

언니는 출산휴가, 나는 육아휴직으로 자유를 얻어 열흘 동안 친정살이를 하고 있다. 두 달 전 동생이 생긴 나의 조카는 못 본 사이 말이 부쩍 늘어 못 하는 말이 없다. '이모 핸드폰으로 파리지옥 노래 틀어', '내 생각에는 슬아가 피곤해서 우는 거 아닐까?' 풍부한 어휘력을 바탕으로 자기 생각과 요구사항을 명확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고집도 보통이 아니라 이모도 엄마도 할머니도 이길 수 없는 비대한 자아를 가졌다.



조카 못지않게 우리 딸도 한 고집한다. 최씨 고집 둘이 만나 대단한 최씨를 낳았다. 말이 조금씩 트이기 시작한 시기 친정에 내려와 이제는 완전히 입이 트였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니야!', 그다음은 '이거 줘'. 대체 어디서 배웠나 지켜보니 나의 조카, 자신의 사촌언니에게 배운 것이었다.



말만 배운 것이 아니라 비대한 자아까지 닮았나 보다. 나와 단둘이 있던 집에서는 몇 번의 실랑이 끝에 포기하는 모습도 간혹 있었는데, 이제 그녀에게 포기, 수긍이란 없다. 과자를 먹고 싶으면 반드시 먹어야 하고 과자 중에서도 젤리와 오트밀 쿠키만 콕 집어서 요구한다.



친정에 온 첫 5일은 비가 와서 집에만 있었는데 최근에는 날이 풀려 매일 산책을 나섰다. 산책 중 우리 아이는 대체로 의젓하게 잘 걸었지만, 본인이 원하는 길로 가지 않으면 배를 힘껏 내밀며 울어재낀다. 어른이 원하는 방향으로 데려가려 억지로 안아 올리면 엄마 몸을 발로 밀어내며 탈출해, 어떻게든 본인의 길로 달려간다.



친정집에 온 첫날과 오늘을 비교하면 그 차이가 꽤 커서, 우리 아빠는 왜 아이가 떼쟁이가 되었냐며 의아한 듯 말하기도 했다. 나 역시 이 상태로 집에 돌아가면 육아 난도가 꽤 올라가겠다 싶어 막막한 마음도 들었다.



본래 집을 벗어나면 허용적으로 아이를 대하게 되면서 철부지가 되는 법칙이 있다. 거기에 제법 고집 센 언니까지 있으니 그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따라 하는 행동도 많을 것이다.



조금 더 생각해보니, 아이는 단순히 언니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속된 말로 '누울 자리 보고 눕는다'고, 언니와 함께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어진 모양이다. 고집 센 언니와 함께 있으니 자신이 더 드러누워도 될 상황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이와 단 둘이 있을 땐 놀아줄 방법도 떠오르지 않고 대체로 무기력한 기분이었는데, 언니와 있으니 육아 메이트가 생겼다는 든든한 기분이 든다. 놀아줄 아이가 한 명에서 세 명으로 늘었지만 잠시 후엔 언니에게 맡기고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내 마지막 체력까지 끌어다 최선을 다해 놀게 된다. 말이 잘 통하고 리액션이 좋은 조카가 있으니, 다채로운 놀이법이 계속 떠올라 제법 재밌는, 꿀잼 이모가 되었다. 아이도 엄마가 평소보다 톤이 높으니 더 재밌어한다. 그렇게 힘껏 놀아주다가 이제 내가 누워도 되겠다 싶으면 자신 있게 드러눕는다.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언니라는 존재는 누울 자리를 더 뻔뻔하게 눕게 만들고, 이래도 되는 걸까 싶었던 일도 거침없이 행하도록 만드는 힘을 가졌다. 뻔뻔함과 자신감을 단단히 장착하게 만드는 그런 존재다.



언니 동생의 관계는 평생의 친구 같으면서 평생의 라이벌 같은 느낌이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경쟁심은 더 커진다. 조카는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인데, 우리 아이(사촌동생)에게 밥 줄까 하면 자기가 더 크게, 먼저 입을 벌린다. 입 짧은 조카에게 밥 먹이는 스킬 중 하나다.

우리 아이 역시, 언니가 과자를 먹으면 자신도 꼭 같은 과자를 먹어야 하고, 언니가 우유를 마시면 자신도 맹물이 아닌 저 하얀 우유를 꼭 먹어야 하는 사람이 된다. 그 하찮고 치열한 경쟁심은 육아를 한층 편하게 만든다. 목욕 후에도 절대 안 나온다던 아이들이, '누가 1등으로 로션 바를까?' 하면 한시바삐 욕실 밖으로 뛰쳐나온다. 언니 동생의 관계란 참, 견고하다.



우리 아이에겐 언니와 동시에 동생이 생겼다. 생후 2개월의 조카는 정말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상태다. 신생아는 정말 작고 따뜻하다. 뜨끈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 아이는 아기 입에 쪽쪽이를 물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조금 강한 힘으로 아기를 쓰다듬어 주기도 한다. 제법 의젓한 모습으로 자는 아기 얼굴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조용하던 아기가 울면 뭐라도 해주려고 주변을 서성이기도 한다. 마치 어린 동생에게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려는 듯, 믿고 누울 수 있는 자리라도 만들어주려는 듯.



주말이 지나면 간만에 어린이집 등원을 해야 하는데, 선생님께 변동사항들을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자아가 지극히 비대해지고 고집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철부지가 된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아기를 챙겨주는 든든한 언니, 경쟁의식 부추기는 쟁쟁한 동생이 되었습니다. 짜증도 잘 내지만 그만큼 더 잘 웃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다채로운 모습으로, 눈부시게 성장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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