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위한 도서관 탐방기
지난 주말, 이사 갈 집 계약을 마쳤다.
그저께는 아이가 새로 다니게 될 어린이집도 입소 확정되었다.
3년 간 지냈던 집, 아이가 생기고 태어나 지금껏 자랄 때까지 지내온 이곳을 떠나려니 여러모로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이사 가기 전까지 이 주변의 모든 편의시설을 즐겨볼 생각으로, 일주일 간 '도서관 탐방'을 다녔다. 우리 아이가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도서관을 찾겠다는 목표로.
첫 도전은 주민센터에 딸려있는 '작은 도서관'. 어린이집 행사로 종종 작은 도서관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어, 하원 후 아이와 함께 걸어갔다. 어른 걸음으로는 5분이면 되는데 아이와 주변 풍경 이곳저곳 간섭하다 보니 무려 40분이나 걸렸다. 작열하는 태양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혹여 찻길로 뛰어들까 걱정되어 아이만 바라보며 걸으니 내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진다. 중도 포기할까 몇 번이나 생각하다가 집에서 온갖 그림책을 꺼내며 엄마에게 읽어달라고 조르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가 새로운 책을 잔뜩 만나면 얼마나 좋아할까 기대하며 도서관까지 향했다.
이름처럼 정말 작은 도서관이라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작은 도서관에는 어린이 도서 코너가 있는데, 아이들이 편히 앉아 읽을 수 있게 마루 형태로 되어있다. 먼저 온 손님은 40~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남성분이었고 마루 위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쓰고 계셨다. 아이를 마루 위에 데려다 놓으니 "우와!" 크게 소리쳤다. 그 소리에 놀란 사서분이 다가와 "조용히 해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내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한 아이는 계속해서 "엄마 이것 봐요!"라고 말하고, 나는 계속 "쉬-쉬- 도서관에선 조용히 해야 해" 속닥거렸다. 아이는 손에 닿는 책을 모두 꺼내고 "엄마도! 엄마도!"를 외쳤다. 엄마와 함께 그 책을 읽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아이와 도서관이 처음인 나는 그저 온몸에 땀이 날 뿐이었다. 속삭이며 책을 읽으면서도 등 뒤에 앉아 있는 먼저 온 손님께 민폐를 끼칠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아이와 조용히 책을 읽으려 했지만 아이가 중간중간 큰 소리를 내면 사서분이 조르르 다가와 "조용히 해야지" 말씀하셨다. 아이가 책을 보고 좋아하는 얼굴보다, 난처해하는 사서분의 얼굴, 차마 볼 순 없지만 예상치 못한 소음에 짜증이 났을 먼저 온 손님의 얼굴이 더 신경 쓰였다.
그렇게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먼저 온 손님이 입을 뗐다. "아이는 소리 내도 괜찮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죄송한 마음이 들어 차마 뒤돌아 보지 못하고, 책 한 두 권 더 꺼내어보다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도망치듯 도서관을 나왔다. 아무리 어린이 도서가 같이 있는 곳이라도, 도서관 에티켓을 지킬 수 없는 어린 아기를 데려오면 안 되는 거였는데. 괜한 분들께 폐를 끼쳤구나. 울적한 마음이 들어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은데 아이는 그 마음도 모르고 계단을 발견하고 마냥 신났다. 그렇게 계단을 하나하나, 천천히 내려오더니 아이는 다시 도서관으로 올라가자고 나를 이끈다. 처음 보는 책이 많았던 그곳이 어지간히 즐거웠나 보다.
그다음 날은 어린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집 앞에서 버스 3 정거장 가면 보이는 도서관. 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도서관인데 2층 짜리라 꽤 규모가 된다고 한다. 그나마도 후기가 없어 대표 사진 두어 장으로 파악한 내용이다. 어린이 도서관은 외관부터 다르다. 외벽에 어린 왕자 그림도 있고 '우리 동네 도서관 투어' 프로그램이니, 어린이 참여 프로그램이니 여러 가지 유인물들이 붙어있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도서관보다 훨씬 큰, 무수한 책장과 안락한 소파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는 어제보다 더 신이 난 모습으로 책장을 둘러보았다. 우리를 발견한 사서분이 빠른 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유아 공간은 저 쪽 방이에요" 사서분의 손 끝이 가리킨 곳은 데스크 뒤편의 작은 방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리 없는 우리 아이는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발을 옮겼다. 사서분은 다시 다가와 "2층에는 아기가 갈 수 없어요, 못 가게 해주세요" 말을 건넸다.
아이를 억지로 안아 들고 유아방에 들어갔다. 작은 방에는 작은 책장이 있다. 척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책장에 너덜거리는 책들이 꽂혀있었다. 그 모습에 실망했는지 아이는 밖으로 나가겠다고 난리다. 다시 한번 온몸에 땀이 흐른다.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해야지, 그리고 아기는 여기서만 볼 수 있대" 나의 차분한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가 좋아하는 뽀로로 단어카드를 들이밀며 같이 읽어보자고 하니, 아이가 잠시 울음을 멈췄다. 카드를 몇 장 넘기다 '과자' 카드가 나왔다. 그 단어를 보자마자 반응한 아이는 과자 카드를 내 눈앞에 흔들며 "까까 먹어요!" 외친다. 내가 오늘도 잘못된 선택을 했구나.
다시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근처 마트를 찾아 과자를 손에 쥐여주었다. 과자를 들고 "엄마 까까 좋아요"라고 말하며 웃는 아기를 보면서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우리 아이는 도서관에 올 준비가 안 되었던 걸까.
아이를 진정시키고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제대로 책 한 권은 읽고 가야지. 그 사이 손님이 한 분 더 오신 모양이다. 우리 아기보다 조금 커 보이는 남자아이가 엄마와 책을 읽고 있다. 나름 재밌어 보이는 책 몇 권을 뽑아 아이에게 읽어주니, 우리 아이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가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내며 책을 읽자 먼저 온 손님도 슬그머니 내 앞에 자리를 잡는다. 내가 우리 아이에게 "아빠는 어디 있지?" 물으면 먼저 온 손님이 재빠르게 아빠 그림을 가리키며 "여기 있잖아" 말한다. 순간 어린이집 선생님이 된 기분이 들었지만,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어린이 도서관의 재미는 이런 거지.
몇 권 읽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져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 학교 운동장에 아이를 풀어주었다. 오후 내내 아기띠 안에서, 좁은 방에서 놀던 아이가 넓은 땅을 밟으니 꽤나 시원했나 보다. 이리저리 달리며 "엄마, 이것 봐요!" 외치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 넓은 동네에 네가 재밌게 놀 수 있는 도서관 하나 없을까. 내일도 재밌는 도서관을 찾아보자.
그다음 날은 소아과에서 건강검진을 한 뒤 병원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동네 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도서관. 규모는 작지만 큰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이라 도전해봤다. 세 번째 도서관은 외관부터 오래되어 보였다. 문 앞에는 '도서관 에티켓을 지켜주세요' 굵은 글씨로 써 붙어있다. 긴장하며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니, 좁은 책장에 빼곡히 꽂혀 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릴 때부터 도서관을 좋아했던 나는 빼곡히 꽂혀있는 책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상황이 다르다. 도서관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유아 코너부터 찾는다. 어김없이 어린 아가들을 위한 마루 바닥이 있다. 조용히 아이를 그곳에 내려 주니 아이는 또 신이 났다. "엄마, 엄마" 아이는 신이 나서 책을 꾹꾹 누르며 엄마를 불러댔다. 나는 또다시 식은땀을 흘리며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해야 해" 반복해서 말해야 했다.
그곳의 사서분들은 우리에게 일절 관심이 없었다. 조용히 해야 하는지, 먼저 온 손님이 없으니 조금은 소리 내도 되는지 알 수 없지만, 문 앞에 붙어있던 '도서관 에티켓' 단어가 아른거렸다. 유아 코너에도 큰 현수막으로 '어머님들 대화는 밖에서. 아이들이 에티켓을 배울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는 말이 써 붙어있었다.
아이에게 계속 쉬-쉬-라고 말하며 책을 둘러보았다. 나와 탄생을 같이 한 듯한 오래된 책들이 가득 꽂혀있었다. 아이가 좋아할 법한 공룡 책을 꺼내니 표지가 달랑거린다. 올해부터 아기 엄마들과 독서모임을 주기적으로 갖고 있는데, 모일 때마다 좋은 그림책을 공유한다. 모두에게 공유할 만한 좋은 책을 찾고 싶었는데 이곳에는 전래동화, 단어카드, 표지가 달랑거리는 공룡 사전 같은 책뿐이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도서관을 나와, 아기띠를 동여매며 아이에게 말했다. "내일은 진짜 끝내주는 도서관을 찾아줄게"
오늘 다녀온 마지막 도서관. 남편이 이런 곳도 있다며 찾아준 옆 동네 어린이 도서관. 집에서 거리는 멀지만 규모도 꽤 크고 후기도 한 두 개 있다. 사진을 보니 유아 코너가 크게 있고 소리를 내어 책을 읽어도 되는 분위기인 듯했다. 버스 정류소까지도, 버스를 타고 가는 거리도, 그 버스를 내려 도서관까지 가는 길도 제법 멀다. 그래도 오늘은 진짜 끝내주는 도서관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를 안고 걸음을 재촉했다.
오늘 찾은 도서관 이름에는 '숲'이 들어간다. 이름처럼 작은 숲 속에 위치한 도서관. 바로 옆에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큰 놀이터도 있다. 커다란 나무 사이로 들어가면 도서관 입구가 나온다. 로비에 들어가니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2층은 유아 전용 3층은 어린이 전용이다. 엘베를 타면 거동이 불편한 사람도,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도 원하는 층에 쉽게 갈 수 있다. 2층에 내리니 한눈에 차마 들어오지 않는, 넓은 도서관 내부가 펼쳐졌다. 한가운데에는 기차모양의 책장과 폭신한 매트가 있다. 아이는 기차를 보자마자 "칙칙폭폭!" 외치며 달려간다.
아이의 큰 소리에도 식은땀을 흘리지 않은 이유는, 다른 아이들이 먼저 와서 큰 소리로 책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책장 너머 한 구석에서는 오빠들이 옹기종기 모여 책을 읽고 있고, 한쪽에 있는 유아 전용방에는 언니들이 사운드북으로 신데렐라 이야기를 듣고 있다. 언니들이 있는 유아 전용방에 가자 언니들이 우리 아이를 일제히 바라본다. 우리 아이가 사운드북 하나 집어 버튼을 누르니, 한 아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 책은 고장 났어. 이거 읽어" 자신이 듣고 있던 신데렐라 사운드북을 건네주었다.
유아 전용방에는 수유실도 있고, 아이들을 위한 작은 의자도 여럿 있었다. 방도 넓고 시설도 깨끗했으며, 신간 도서 코너까지 있다. 색색이 예쁜 전집도 여러 세트 보인다. 우리 아이는 신나서 코끼리 책, 돼지 책 이것저것 꺼내와 신나게 책장을 넘겼다. 이곳은 내가 꿈꾸던 어린이 도서관 그 자체였다.
엘베 앞에는 이 도서관에 먼저 와 즐겼던 선배들의 얼굴과 각자 추천하는 책 제목이 적혀있다. 그 앞에는 사서분들이 큐레이팅 한 책들이 테마 별로 쌓여있고, 벽 쪽에는 이 마을 엄마와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그림책들이 꽂혀있다. 깨끗하게 관리된 책들이 장르 별로 구분되어 가지런히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이름처럼 숲 도서관, 책의 숲과도 같은 공간이다.
어린이 전용 3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아이들이 미끄러지지 않게 칸마다 깔개가 깔려있다. 우리 아이 손이 닿을 높이에 손잡이가 달려있다. 우리 아이는 몇 번이나 그 계단을 오르내리며 까르르 웃었다. 밝게 웃는 우리 아이에게 눈치를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언니 오빠들이 웃으며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 도서관 내부를 탐방하다, 집에 갈 시간이 되어 밖으로 나왔다. 이전 도서관과는 달리 후련한 걸음이다. 아이에게 "오늘 도서관 맘에 들었어?"라고 물으니 "맘에 들어!" 즉답한다. 도서관에서 힘껏 놀았는지, 돌아가는 길에는 내 품에 안겨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극적으로 우리 아이와 내 취향에 딱 맞는 어린이 도서관을 발견하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씁쓸하다. 두 돌이 다 되어가는 우리 아이가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은, '어린이 도서관'보다는 '공동육아방'이 적절하다. 오늘 갔던 도서관보다 딱 2배만큼 버스를 더 타고 가야 나오는 '공동육아방'은 구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놀잇감과 몇 권의 그림책이 꽂혀있는 공간이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집 근처에는 없다. 그래서 집 근처 도서관에 찾아 가면, 먼저 온 어른 손님이나 의젓한 어린이 손님들이 조용히 책을 읽는 곳이 대부분이다. 유아 전용 코너가 있지만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 소리 내어 책을 읽을 수 없다.
두 돌 무렵의 우리 아이는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없다. 큰 소리로 동물 이름을 외치며 흉내를 내고, 엄마도 같이 보자며 엄마를 고래고래 불러야 하는 시기다. 그럴 수밖에 없는 때고, 그래야 하는 시간들이다. 오늘의 도서관처럼 모든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은 신기루처럼 존재한다. 이렇게 찾고 찾아, 멀리 멀리 나와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22개월을 위한 도서관은 어디 있을까. 이사 갈 그 동네에도 우리 아이가 웃으며 책을 읽고, 내가 식은땀 흘리지 않으며 쉽게 오갈 수 있는 꿈같은 어린이 도서관이 있어줬으면 한다. 큰 나무가 우거진 숲 속으로 가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책의 숲이 어디에든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