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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Aug 16. 2022

그림책 읽어주는 3가지 유형

아이를 기르면서 나름대로 가장 열심히 공부한 것이 '책 육아'다. 그럼에도 이곳저곳에서 수업을 듣거나 책 몇 권 읽은 게 전부인 데다 실제로 아이에게 적용하려니 어렵기만 하다. 조금 읽다 금방 자리를 떠나버리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역시 어설픈 엄마구나 시무룩할 때가 많다. 그럴싸한 전집 시리즈도 하나 없는 아이의 책장을 보며 우리도 이제 하나 들여야 하나, 장바구니를 그득그득 채우는 나날이다. 그러다 문득, 가족들이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각자의 독서 방식에서 그들의 성격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첫 번째, 아이 아빠와 할머니 유형이다. 남편은 전형적인 공대생 타입으로, 사회가 정해둔 정답대로 살아가는 모범생이다. 쑥스러움을 타는 남편은 처음에는 딱딱하게 활자만 읽었지만 2년 동안 아이를 키우며 제법 단련되어, 이제는 꽤나 리얼하게 책을 읽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책에 적힌 대로, 한 톨도 틀림없이 읽어내는 모습이 과연 모범생답다.

아이의 할머니인 우리 엄마도 그 못지않은 모범생이다. 약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라면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도 약을 꺼내 드실 정도로 '시키는 대로 충실히 하는 모범생' 그 자체. 게다가 30년 넘게 교직에 몸 담은 사람으로서, 교과서대로 행동하는 전형적인 전교 1등 타입이다. 남편은 그림책 속 주인공 이름을 아이 이름으로 바꾸는 정도의 융통성이 있으나 (이것 역시 내가 시켜서 하는 거지만), 엄마는 주인공 이름마저도 책에 적힌 그대로 읽는다. 작게 적힌 의성어까지 저자가 시키는 대로, 책에 적혀있는 대로 읽어줘야만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아이의 할아버지인 우리 아빠 유형이다. 아빠는 자유로운 예술인으로, 평생 글을 쓰시며 살아왔다. 학창 시절엔 모범생이었지만 성인이 된 이후 그의 삶은 남들이 정한 틀을 깨며 살아온, 거창하게 말하자면 '반항의 역사'였다. 어린 시절, 엄마가 정답대로 하라고 다그치면 옆에서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우리 편을 들어 엄마의 속을 뒤집던 그런 아빠였다.

그래서인지 그림책 읽어주는 방식도 너무나 자유롭다. 그림 옆에 적혀있는 활자는 완전히 무시한 채, 본인의 해석대로 책을 읽는다. 책 속의 주인공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활자를 읽어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나름대로 해석해서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책을 읽어도 매번 내용이 달라지고, 아이의 대답에 따라 스토리가 다르게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언니와 나의 유형이다. 아이의 주양육자로서 책 육아에 나름 관심이 있는 엄마. 그래서 그림책을 가급적 다양하게 활용한다. 나는 그림책에 코끼리가 나오면 코끼리 인형을 가져와서 손에 쥐고 책을 읽는다. 빨간 물건을 모으는 괴물 이야기가 나오면 주변의 빨간 물건을 찾아오는 놀이를 곁들인다. 나름대로 독후 활동까지 연계하여 이것저것 해보려 하지만, 매번 아이가 내 뜻대로 따라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여러 놀이를 만들어보며 애쓰는 것이 나와 같은 유형이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언니는 좀 더 능숙하다. 처음에는 활자 그대로 읽어주고, 그다음에는 그림책 속 주인공들의 표정만 따라 하면서 읽는다. 그다음에는 의성어, 의태어만 내면서 읽어본다.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매번 다양한 값을 아이에게 제공하여 다채로운 어휘를 습득할 수 있게끔 하는, 전략적인 책 읽기다. 책 한 권으로 소위 '뽕을 뽑는' 야무진 엄마 유형이다.


가족들의 각양각색 책 육아 방식을 보며, 그 한가운데 있는 우리 아이를 지켜보았다. 집에서는 별 관심 없던 책도 외갓집에 오면 흥미롭게 몇 번이고 들춰보기도 하고, 엄마와 재밌게 읽던 책을 이모에게, 할머니에게, 할아버지에게 들이밀기도 한다.

아이에게 좋은 책 읽기 방식은 정해져 있지 않다. 한 권을 읽더라도 여러 사람이, 최대한 여러 방식으로 읽어주는 것이 아이에겐 가장 큰 재미일 것이다. 책을 읽으며 아이가 유난히 재밌어하는 부분이 있다면 몇 번이고 똑같이 읽어줘도 좋다. 그러다 그 책의 다른 부분에서 변주를 주어 또 다른 재미 포인트를 만들어줄 수도 있고, 다른 책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똑같이 재밌게 만들 수도 있겠다.

어떤 아이는 활자 그대로 읽어주는  번째 방식이 가장 익숙해서 재밌을  있고, 어떤 아이는 매번 색다른  번째 방식으로 읽었을 때 결말을 예상할  없다는 점에 설레며 책을 펼칠 수도 있다. 같은 아이여도 어떤 날은 조용하게, 어떤 날은 호들갑스럽게 읽는 것이 재미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책 육아가 남들보다 부족하다고, 어떻게든 아이를 내 무릎에 앉혀 끝까지 책을 읽혀야만 한다고, 친구 아기가 보는 저 전집 시리즈를 모두 사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보채지 않으려 한다. 나에겐 나만의 방식이 있고, 우리 가족들 모두 각자의 방식이 있다. 아이가 읽는 책 한 권에도 무수한 이야기가 담겨있고, 아이 앞에서 다채롭게 펼쳐질 것이다. 가족이면서도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고,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는 우리네의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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