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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먹는 꿈별 Oct 17. 2021

06. 그림책 서평의 진화

총체적 부실로부터 느리게 나아짐으로

초기 서평과 최근의 것을 함께 놓고 보면 변화의 정도를 조금 더 잘 알 수 있다. 최소한의 텍스트를 가진 두 작품 로랑 모로의 『근사한 우리가족』과  변예슬의 『나를 찾아서』를 나란히 놓으니 차이는 더 분명해진다. 

‘저 시간 많아요’식의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서평을 쓰는 일은 거의 없고 대부분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두르며 쓰게 된다. 더 정확하게는 쫓기듯 쓰는 게 나의 서평이다. 왜? 다음 책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의자에 앉아있음에도 공중에 떠있는 듯한 불안감을 누르며 ‘태연한 척’ 쓰고 있는 나를 거울 반사해서 보며 ‘왜 그러는 걸까?’ 묻게 된다. 

깊이 반성하지만 퇴고 없이 올리는 서평이 꽤 많았고 요즘도 퇴고는 형식적 절차에 가까운데 이 또한 발전을 가로막고 후회를 부르는 행동이다. 모든 글은 흑역사로 남을 수 있다. 비록 내치지는 않더라도 미안함과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 된다. 

『근사한 우리가족』, 이 빛나는 작품에 대한 서평을 다시 꺼내며 “이게 최선이었습니까?” 정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그 서평>  

   

① [서평근사한 우리가족 (20141217)


 생각보다 커다란 판형의 그림책인 [근사한 우리가족]이 도착했다.

하얀색 종이봉투에 은빛 둥근 스티커로 밀봉되어서 마치 성탄선물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 천천히 읽어나갔다.     

우리 가족은

정말 근사해요!     

앞표지의 회색 면지에 적힌 글귀는

화자의 시선이 따스할 것이라고 예상하게 해준다.     

좌우 두면을 함께 사용하여 주인공의 시선으로 가족을 한명씩 소개한다.

짧은 소개글과 그 내용에 잘 맞는 동물이 사람들의 무리속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가족의 특징이 부정적으로 표현될 때조차

애정어린 설명이 곁들여진다.

오빠, 남동생,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사촌들, 내 최고의 친구, 내 사랑

그리고 마지막에 나를 소개한다.

뒷면지에는     

여러분은요?     

라는 말로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초대하며

그 따스한 여운을 우리 가족에게로 전염시킨다.     

무엇보다 이 책의 특징은 그림 보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동물의 모습으로 소개되는 가족 외에 화면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모두가 평화롭다.

 각각의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장면일까를

상상하고 이야기해볼 수 있다.

화려한 원색이 사용되지만 통일성있고, 차분한 톤의 배경에서는 경쾌함이 살아난다.

아이는 키스 해링의 그림도 생각난다고 한다.     

내 최고의 친구를 소개하는 장면에서는 학교 운동장 같은 곳에서 친구들이 다양한 놀이를 

하는데

우리 아이들이 노는 놀이와 비슷한 것들이어서 신기했다.     

볼때마다 다양한 이야기거리가 만들어지는 그림책을 통해서

풍성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근사한 우리 가족/로랑 모로/로그프레스)(출판사 도서 제공)      


② [서평변예슬의 나를 찾아서』 길벗어린이 -이토록 아름다운 여행! (20200605)     

누군가의 첫 번째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독자에게도 특별한 설렘이다. 변예슬 작가의 『나를 찾아서』 또한 소개 문구를 보며 어떤 책일까 상상했다. 전개를 예측하게 되는 제목이라 궁금증이 커지는 정도와 자아 찾기 책의 비슷한 변주이겠거니 하는 예상이 거의 동일했다. 분홍의 진달래꽃 색 표지에서 제목 언저리의 빛을 향하는 흰색 물고기가 가장 눈에 띄었다. 주인공이구나 생각하며 표지 전체를 좌우로 넓게 펼쳐 보았을 때 생각보다 깊고 넓은 바다, 생각보다 많은 다른 물고기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바다가 왜 분홍이야 하는 의아함으로 넘긴 면지는 좀 더 물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전한다.    

  

속표지를 지나 본문 첫 장은 양쪽 화면을 채운 바닷속 물고기들 곁으로 ‘어느 날’이 전부다. 이어지는 문장도 작품이 끝날 때까지 거의 한 줄에서 짧은 두 줄, 단 한 번 세 줄이 등장한다. 최소한의 텍스트가 그림 안에서 나만의 문장을, 질문을 만들게끔 허용한다. 책장을 넘기며 나도 모르게 주인공 물고기의 시선으로 헤엄쳐 들어가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혼란스러워하고 놀란 후에 안심하는 여행을 한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이질감 없이 감정 이입하게 되는 시간이 펼쳐진다. 이 여행은 꼭 나의 여행 같다고 느낀다. 빛나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 물들어 가고, 그러면서 조금씩 나도 모르게 이루어지는 변화, 주변의 시선과 지적, 어쩌면 구원과 성장까지 연속적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이 책은 몇 번을 보았다. 바로 다음 장이 내 예상처럼 이어지지 않았기에 볼 때마다 신선했다. 내면의 빛을 간직한 마지막 장의 아름다운 물고기와 수많은 물고기 중 누가 주인공이지 싶었던 첫 페이지의 물고기를 비교하면 그 변화 폭이 또 한 번 놀라움을 안긴다. 필요했던 과정이었다고 받아들일 만큼. 지금 처한 공간적 배경이 삭제되고 온전히 빠져드는 몰입감 최고의 순간을 경험하게 해 준다. 내가 호사를 누리는구나, 감각적으로 한 번, 지적으로 한 번! ‘길벗 어린이’의 기다렸던 인생 그림책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 책을 더 좋아하게 될 것 같고 아마도 여러 번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나를 찾아서/변예슬/길벗어린이)(출판사 도서 제공) 

         



 서평 8년 차 시점>

『근사한 우리가족』 서평은 공백, 인용 제외 586자임에도 내용과 형식 비평을 성실하게 해내지 못한다. 500자가 넘는다는 점도 믿기지 않는다. 원 서평은 문단 가운데 정렬을 선택했는데 한 지점에 멈추어 들여다보지 않고 연이어 넘어가던 필자의 시선을 더 끊어놓는다.(물론 전체에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정렬 방식은 선택의 문제다.) 매력적인 작가의 많이 읽히는 책이고 나눌 것이 풍성한 작품인데 옳지 않다. 


『나를 찾아서』 서평은 우선 [책 제목-저자-키워드]의 제목 3종 세트가 장착되었다. 중요한 차이다. 또한 전자에 비해 기본적인 비평을 누락하지 않았다. 서평 역시 쓸수록 깨닫게 되고 느리지만 좋아진다. 급히 올린 서평이라 늘 아쉬움은 많고 또 흠 없는 글이 아님에도 앞으로의 시간을 더 잘 채워야겠다고 긍정적으로 마무리한다. 

두 서평은 2014년과 2020년의 간극에 마땅한, 어쩌면 부족한 변화다. 그 핑계를 이번에도 시간에 돌린다. 흠.


한 가지 더, 첫 작품으로 상 받는 작가들에게 늘 특별한 존경을 보낸다.   

   

덧) 그림책 서평에서 금손 맘들의 반짝이는 결과물들은 언제나 눈에 띈다. 창의적인 독후활동을 설계하고 아이와 함께 실현시키고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은 어떤 성장앨범보다 멋진 선물이 될 것이기에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을 선망할 시간에 ‘가능한 일을 제대로 해내도록 애쓸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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