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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Apr 25. 2024

내가 가면,

生.

베란다 확장 공사를 한 거실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떨어지면 아프겠지. 반불구가 되고 안 죽을 수도 있을 거야. 죽고 싶다는 우울감으로 뛰어내릴 때는 이것저것 이렇게 재지 않겠지. 견수 없이 솟구치는 어떤 힘이 육체를 밀어내야만 아래를 향해 떨어질 수 있겠지.


생각을 그만두고 다시 거실 안쪽으로 들어왔다.


통화를 하다가 남편은 이미 집으로 오는 중이라고 한다. 와 보아야 늦은 저녁이고 지쳐 한 시간여 코를 골다가 열 시쯤이면 다시  운전해 돌아가야 하면서. 후 도착했다고 전화가 오는 시은 매양 자정께이니 내가 아프다고 해서 주중에 그가 집에 오는 것이 싫다. 오지 말라고 하였는데도 회차할 맘이 없는 남편은 기어이 오고 만다. 한껏 늦은 저녁을 먹고 날 위로합신다 하다 꾸벅꾸벅 졸더니 역시나 잠드는 남편. 동안 나만 알고 이기적으로 살았어. 나 힘든 것만 징징대며 살았어, 당신에게. 먼 길 운전해 오느라 저렇게 쓰러져 자는 그의 얼굴을 쓰다듬어 보면서 처음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가면 이 사람이 힘들겠구나.'




병가는 내게 트라우마가 되었다. 허리 통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제약되기도 하고 골치 아픈 것이 싫어지니 허무한 줄 알면서도 유튜브 속에 들입다 시간을 가둔다. 오늘은 은퇴한 부상 경찰견을 입양한 부부 이야기로 알고리즘이 안내한다. 보고 싶다, 온기. 힘든 훈련과 구조활동으로 관절 부상을 겪고 늙어가는 개를 전직 동료 소방관이 성심껏 돌본다. 남편은 참으로 자상하고 부인은 정이 살뜰하다. 따뜻하고 선한 사람들, 또한 착한 동물들. 이들을 보는 20여 분 동안 잠시 무거움을 잊었다.


시험 출제를 근근이 하여 보내 놓았더니 동료가 대신 채점을 하다 궁금한 것이 있다고 연락을 해 왔다. 업무 대화가 끝나고 전화를 끊은 후에 따뜻한 무언가가 아련히 피어올랐다. 그녀는 사람을 대할 때 진심이 느껴. 그런 그녀와 동학년을 하게 되어 감사하다. 짐짝처럼 덜컹거리던 마음에 깃털 같다고나 할 것이 살랑 내려앉는다. 고맙다고 톡을 보내니 그녀가 남기는 문자.

'아이들이 부장님 그리워요. 언제 오시냐고.'

이젠 아이들과도 거리 두고 지내기로 했건만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학생이란 존재는 그 자리여전한 의미심장인가 싶으니 허탈하다. 동안의 '도망'이란 게 겸연쩍어서.


흐리던 밖인데 어느새  해가 빛그림자를 비스듬히 거실로 밀쳐 놓는다.  여러 권 소파에 놓여 등을 서로 내어 미는 책 속에서 글 연이 있는 브런치 작가님을 찾아 오늘 읽고 싶은 부분을 골라 본다.  교사, 아빠,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서 그분의 일상초대하는 글을 아껴 가며 읽는다. 내가 곶감 빼먹듯이 쏙쏙 얻어가려 하는 건 글에 드리워진 살아가는 힘. 그것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가면 이 사람이 힘들겠구나' 하던 메마른 가슴이더니 여기저기 삶의 꽃이 피어 다.  있으면 정말로 백화난만 시절인 오월인데 나는 자리에 누워 이미 꽃을 본다. 아가는 일이 피워내는 꽃.


그러니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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