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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May 09. 2024

그러니까 너도 살아

나무.

시원하게 뻗어 잘 생긴 이들 사이에서 그를 만났다. 뭉크의 '절규'가 딱 저렇지 않았을까 싶게 입이 뒤틀린 채 고함을 치고 있다.  이이는 얼마나 오래 이곳에서 살아왔을까.




눈도 외눈박이 같다. 아팠겠구나. 나도 모르게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저 검은 입속을 들여다본다.



사진으로는 정확히 찍히지 않았다만 거의 땅 아래까지 텅 빈 공간이다. 물관이니 체관이니 하는 생물 시간에 배웠던 식물 구조 개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저러고도 살 수 있는 모양이야... 본디 무심한 자연이라 인간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고 간섭하는 것이 어폐이기도 하지만 너, 힘들었겠구나 싶어 다가가 저 얼굴을 어루만지게 된다. 여기저기 새들이 한 곡조 목청 돋우는 참이 지날 때까지 그러고 있으니 갑자기 울컥한다. 이 얼굴이 절규가 아니라면 무엇이 절규일지. 우린 왜 이렇게 아파하며 사는 거야.


다시 병가를 쓰면서 고통받았다. 질병 자체보다도 역시 무엇 하나 견디지 못하는구나 싶어서. '역시'라는 그 부사가 무서웠다. 다 자신이 만들어 내는 공식인 줄 알면서도. 어른이 되고 나서 만나는 '무섭다'는 감정은 정말로 무서웠다. 너도 무서웠을까, 삶이 통제되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 말이야. 네 속이 다 파헤쳐지고 낡은 영예만 거미줄처럼 쓸쓸해졌을 때. 살아가기엔 물도 양식도 버겁고 그래서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지 않았을까. 아무도 없는 숲에서 헝클어진 입으로 밤새 고함치고 싶지만 숲의 거대한 정적은 그 마음을 짓눌렀을 게야. '괜찮아'라는 위안도 잠시, '괜찮지 않'아지던 환원의 고리에 심한 멀미도 하였지?


하릴없는 간섭을 이렇게 해 보다가  절규를 뒤로 한 채 천천히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픈 허리엔 오히려 걸어야 한다기에 둘레길이 완만한 숲을 용기내어 찾았으니. 아카시아 잎이 떨어져 나뭇가지뿐만 아니라 숲길도   꽃난리였다.




꽃난리가 피워대는 법석에 귀 기울이 뒤돌아 고 싶어진다,  '절규' 나무. 가지의 어깨도 울퉁불퉁 돌기쯤 여겨지고 한 쪽을 잃은 듯 비대칭도 처연한데  비로소 알다. 위로 위로 내솟아 보는 하염없는 몸짓.


그때,  만치서 그가 말다.


그러니까 너도 살아.




 뒤 숲 '절규'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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