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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Jul 10. 2023

복직하러 간다, 전철 타고

지상 구간으로 접어 들면서 응달인 도시 전철 안에 자연 빛이 들고 강이 비친다. 가득찼던 승객들이 썰물로 빠지고 이 안은 어느새 넓다. 종점을 몇 정거장 안 남긴 전철 안이 후련하다 하는 순간 빠르게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겨울 강과 나목과 헐벗은 갈대가 뒤로뒤로  빠르게 뒷걸음질쳐 가더니 시간의 터널이 된다. 어느새 삼십여 년 전 그 시간의 내가 앉아 있다.


출처 https://m.blog.naver.com/yeogistation


어색한 수트를 입고 내 공간에 앉아 나의 일을 한다. 그냥 말한다고 전해지지 않는다. 기안이나 품의, 보고서 같은 사회에서 용인되는 공식을 익힌다.  알파벳으로 명령어를 치던  DOS는 신입의 전유물이었지만 286 컴퓨터는 그때도 참 둔탁했다. 내 컨텐츠를 생산하고 시험하고. 아이디어는 샘 솟고 질서정연하게 풀어낼 수단을 강구한다. 고리타분한 관습을 창의적으로 변모시키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상사들의 눈빛은 매섭지만 과감하게 헤쳐 나간다. 뜻 맞는 사람들과의 세계가 단단해져 가고, 게다가 젊다! 그 젊음이 늙은 회사의 증기 기관을 돌린다.


Mark Rothko


일이 땡 끝나도 낮이 남는 토욜 오후,  아직 차가운 봄바람인데 꽃잎같이 팔랑대며 강을 따르는 노선 버스를 탄다. 데이트를 하러 간다. 직장 선배들은 이 신삥 아가씨가 연애에 성공하기를 요새 같으면 월드컵 16강을 바라는 붉은 악마쯤으로 응원한다. 생각해 보면 이 외진 곳에선 그런 파릇할 일이 잘 없기 때문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그 연애는 그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도 불구하고 참담히 실패한다. 훗날 어린 것을 옆에 끼고 각자의 지아비 지어미를 마주 보고 대구국을 끓여먹는 광경을 연출하게 되지, 백석이 딱 그렇게 그려줬듯이. 실패한 연애도 또한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계속 시작이었고, 무엇이든 가능했다.




저 강을 보며 첫 출근을 했었다. 정확히 32년만에 이곳을 다시 온다. 무슨 이런 인연이 있을까.

근무처를 옮길 때가 있다. 복직해야 할 지역이 내 첫 근무지가 있던 곳이라 놀랬다. 몸에 단 하나의 불씨도 남아있지 않아 더 일을 할 수 없었다. 2년을 쉬었다. 중간에 복직해서 일했으나 어림없었고 이곳으로 적만 옮기고 한 해를 더 쉬어야 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복직이다.


동안 나는 많이 바뀌었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도.


저항의 새벽을 노래하던 시인은 이제 히말라야에서 잠언시를 쓴다. 세상이 버린 쓰레기를 치우는 성자가 된 청소부로 다시 나타난 것이다. 필요해서 돌리던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는 없는 필요를 만들어 내야 굴러가는, 무용을 유용한 것으로 둔갑시키는 노회한 시스템으로 진화하였다. 끊임없는 결핍의 조장에 끝없는 무력을 느끼고 그것을 막아줄 구매력의 원천 즉, 자산의 유무에 따라 삶의 스펙트럼이 천양지차. 그러니  사람들은 저마다 부자가 되기 위한 것 말고는 길이 없다고 믿는다. 그 믿음을 팔뚝에 완장처럼 차고 결의를 다지는 시대가 되었단 말이지.


거대 담론의 시대가 가서일까. 성스러운 청소부의  면모가 된 시인 옆에서  나도 열심히 청소를 돕는 것으로 위안하려는 걸까. 차가운 이성이 앞서던 내가 따뜻한 것을 찾게 되었다. 대의 명분을 위한 일이 아니면 늘 혼자 있기만 하던 내가 사람은 사람들 속으로 가야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세상을 사는 데엔 큰 것이 필요치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침,

"실례합니다."

길을 묻는 할머니께 이리저리 가르쳐 드리니

"바쁘신데 시간을 많이 뺏어 죄송합니다."

허리까지 푸욱 숙이는 흰 연세의 품격을 만났을 때, '세상은 아름답구나.' 하는 따신 가슴이 되어 흐리고 비 뿌리는 겨울날이 서글프지 않다. 낮게낮게 숙이시던 그 노인의 절. 그런 일상의 품격이 이루는 따뜻한 이불을 덮을 때,  한없이 그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나오기가 싫어지는 것이다. 그런 것들로 나는 충분히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것을 퇴행적이라 하여도 할 말이 없다만.




운전을 해서 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아니, 운전을 하면 오히려 더 멀다.  다행히 전철의 끝에서 끝, 한 번으로 올 수 있으니 감지덕지해야 할 판. 운전하는 시간 만큼은 수백 마리의 말이 끄는 힘을 가진 엔진을 빌어 야성을 발휘했건만. 그러나 전철을 타는 긴 시간 동안 두 손과 시선이 홀가분하니 또 다른 자유를 선사받는 것이로구나. 막판에 지상 구간으로 접어 들 때 황금같이 순간을 번쩍이는 강과 나무와 갈대. 그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분이 채 되지 않지만 앞으로 내 출근길의 클라이막스가 될 것이다. 매일 그 절정을 기다릴 생각을 하면 설렌다.



걱정이 왜  없겠는가. 공포가 왜 일지 않겠는가. 다만 지난 날 내가 쓴 글을 되뇌어 보면,  그 조그마한 글이 한 됫박의 용기를 부어주는 것을. 메릴스트립의 " lei it go-o-u."를 따라 소리내던 글.


https://brunch.co.kr/@4497dc9646cf428/19




신기하다.

쉬었던 동안이 꿈인지, 다시 일하는 지금이 꿈인지. 장자의 나비가 쉬는 동안의 내 그림에 앉았다가 복직하는 전철 속의 내 어깨에 앉았다가 하는구나. 가만히 보니 그 날개 끝이 파랑이다.  파랑,  내가 잘 쓰지 않던 색.  입술에서 떠나올 때 휘파람이 나는 소리. 가볍게 날아 올라 꿈꿀 수 있는 색. 나의 색연필로 언젠가는 이 나비도 그려보고 싶다.


기나긴 나의 출근길이 이 세상이 아닌 곳으로 연결된 산책이 될 수 있길. 전철이 지상 구간을 통과하며 이 세상으로 다시 나올 때 쯤엔 그 산책의 세례로 나는 한층 더 강해져서  이 탈것에서 해방될 수  있길.



산책


                      정현종



산책을 한다.

그 시간은 이 세상의 시간이 아니고

그 공간은 고해苦海를 벗어나 있다.

세계는 푸른 하늘까지

숨결은 대기 속에 ㅡ

그렇게 가없는 몸이여,


이 단순한 활동은 얼마나 풍부한가,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듯한 시간이라니!

사물사물하는 보석,

이 시간이 없으면 어떻게 살까.

세상의 시간이 아닌 때를

고해가 아닌 데를 걸어가느니.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정현종, 2022





전철은  겨울 강과 나목과 갈대가 만들어 내던 시간의 터널을 거둬 들인다. 내 발은 새로운 땅을 걷게 될 것이다. 그때와 같지만 다른 곳. 스물의 나와 오십의 내가 교차되는 곳. 그때 스물의 내가 삼십 년 뒤 오십의 나를 여기서 다시 만날 것을 알았다면...... .

스물의 용기도 오십의 격도 다 내 것이다. 용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나를 이루는 것들 속에 녹아 지금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이만큼 살아 왔으니 나름의 격이랄 것도 있지 않을까.


푸릇하던  '시작'을 기억하라고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한 것인지.  괜시리 이 노래를 한 번 듣고 전철을 내리고 싶다.



https://youtu.be/TX9UtBij_t8


When the beating of your heart

Echoes the beating of the drums

There is a life about to start when tomorrow comes.

. . .

Beyond the barricade

Is there a world you long to see

then, join in the fight

That will give you the right to be free.






-사 족-


80이 되어 50의 나를 본다. 삼십 년 전의 나를 본다.

50의 이 순간을 으로 두지 않을 수 없다.

'양조위의 장만옥' 아닌 장만옥, 그녀의 일을 하는 장만옥. '화양연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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