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은수 Jul 21. 2023

매일 길1_ 안녕, 붉은 철의 여인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눈도 까칠하고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무겁다. 지하철 안에서 급 피곤하다. 한 주일을 어찌 보내나...... .

전철은 여지없이 나를 강 건너로 데려다 준다. 저러한 생각을 하며 지상으로 내려온다.


아..  주말 동안 이 길은 또 나를 맞을 준비를 열심히도 하였다. 봄비를 맞으며 금요일 퇴근을 하였는데 그 비가 열일하였다.



나를 위한 '홍해의 갈림길'은 이제 꽃, 하늘하늘이다.



홍해의 갈림길 내력이 있는 나의 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이라더니 오늘 이 길을 걸으니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자연의 숨이 내게 닿는다, 그것이 내 속의 뭔가를 모두 떨어 낸다는 그 일'.

도무지 알 수 없는 생의 이끎이다.


이제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내 자리가 있다. 나름 삼십 년 동안 해 온 내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 풍경의 자연은 그곳으로 향하는 내게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를 선사한다. 그것도 매일 다른 모습으로 경이롭게.






이들 뿐이겠는가. 아침 강 환장이며 저녁 강 환장이고 늦은 퇴근날. 이 숲 사이를 지는 해, 환장이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생의 이끎이다



다시 또 세상을 사랑하게 될 수 있을까 하였다. 누구나 사는 동안에 잊지 못할 아픔을 겪는다. '내가' 아픈 병도 앓는다. 다 놓아버리고만 싶던 것이 어느틈엔가 곁에 와서 함께 숨 쉬고 있다. 그러한 중에, 고단함은 사방 조용히 잠입한다. 고단도 고마운 다. 그가 아니면 나는 또 예전처럼 살겠지, 심하게 열심히.


한편으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생활 강도의 역치가 점점 낮아져 다. 나를 아껴서 써야한다. 그래서 까치발을 하고 먼 데를 보려는 나의 어깨를 눌러 앉혀야 할 때가 많다. 그런 나를 보면 조금 쓸쓸해진다. 그런데 도무지 알 수 없는 저 한 가지는 이러한 만감을 어루만진다.  세상 속에 서도록 나를 북돋워 준다. 그래서 출퇴근길, 저들을 바라보다가 우뚝 멈출 때가 많다.






'홍해의 갈림길'을 지나가다 보면 봄을 맞아 이렇게 환한 아이들도 졸로리 줄지어 있다. 하늘 향해 생동을 뿜는다.  

"하은수, 너의 하루를 쏘아 줄게. 하늘로, 하늘로."

봉오리들이 말한다.


출근길 아침에 만나는 화단



퇴근할 때는 이렇게 얼굴을 벙글고 있다. 낼 아침엔 또 탄탄히 오무린 입술을 뾰족이 내밀겠지. 그러곤 여전히 내 하루를 태양같이 쏘아 올려 주겠지


퇴근길, 아직 해가 남아있는 화단



이 길 다음엔 무엇이 펼쳐지는가는 후에 또 써 보고 싶다. 이러니 미련이 없다, 그녀를 보내주는 것에.






복귀한 직장은 너무 멀어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것이 훨씬 낫다. 시 외곽으로 나가는 노선이라 흔히들 지옥철이라 하는 현상이 없다. 거의 종점에서 종점으로 가니 늘상 앉아 간다. 그 시간 동안이 평화롭다. 아무러한 간섭도 받지않고, 운전하며 기울여야하는 주의도 필요치 않아 고요히 수평 이동으로 한 세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건너간다.


퇴근할 때 잠들어 종점까지 간 적이 있다, 몇 번. 종점에서 내리면 건너가지 않 옆 차선에 늘 대기 중인 역방향 열차가 있어 다시 되짚어 오는 게 싫지 않다. 많이 피곤했구나, 나를 웃어 주면 그뿐.

그러므로, 그래서, 그리하여

나는 붉은 철의 여인과 안녕할 결심을 하였다. 나를 자유롭게 해 주던 그 바퀴를 애정하였으나...




'여지껏 흰색, 크롬 실버색만 몰던 내가 많이 아플 땐 고민 1도 없이 빨강색 차를 고르고 있었다. 그 기운을 받고 싶어서. 확실히 불처럼 상승 욕구가 일고 가벼웁고 뜨거워지는 게 느껴진다. 나에게 부족한 에너지를 빨강색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주차장에서 빨갛게 납작 숨죽이고 있는 차를 발견하면 멀리서 다가갈 때부터 기쁘다. 엔진이 달궈지면 나도 함께 불이 되니 색의 세계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 나의 글, '보테닉_여름의 색을 가진 꽃 그리기_색채의 세계' 중에서




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를 비롯하여 출퇴근길 새로운 인연을 만나 내가 매일 생의 한가운데에 있던 동안 그녀는 늘 지하 구석에서 햇빛도 없이 하품만 하는 나날을 보내었다. 내 사랑을 못 받아 파사삭 붉게 말라있고 품위는 시들어 있다. 오랜만에 세수해 주고 바라보니 다시 물기가 오르고 예쁘다. 그리고 보내기로 결심한다.



머지 않아 이별을 할 그날이 오려니

그저 세상만사 들꽃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생각을 해 다오

 - 조병화, '나도 그랬듯이' 중에서



좋은 곳으로 가니 잘 살아.

나도 두 다리로 씩씩하게 살아갈게.

안녕, 나의 철의 여인.






이제 세상 속에 있는 나를 더 느낀다



삼월 마지막 날, 오늘 아침 나를 맞는 숲.








https://youtu.be/A3kJdZMdGPw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웅산' 의 목소리로. 이런 걸 보고 '쩐다'고 하는 것.








ㅡ 복한 직장이 너무 멀어 지하철을 탄다. 동안 사랑하였던 차를 처분하던 날 썼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인과 남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