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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Aug 02. 2023

복직 점수

'어느 날 걸을 수 없었다.'

로 시작하는 그날 일을 언젠간 써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러지 못하고 지금이 되었다. 문자를 다루며 먹고살면서 문자란 문자는 모조리 집어던졌다. 구역질이 나서. 단 한 톨의 문자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게 이 년을 갔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글을 쓴다. 그뿐인가. 복직도 하였다!


친구들이 그랬다. 구력이 얼만데 엄살떠냐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할 거라고. 그럴까, 정말 그럴까.


놀랬다. 복직하고 하루 안에 모든 감각이 돌아왔다. 그랬다. 정말 그랬다. 첫날부터 나는 어제도 했던 것처럼 몸이 기억하는 내 일을 하고 있다. 헛웃음만 나왔다. 뭐지, 이 편안하고 복된 느낌.

인간은 필요 이상으로 불안해 한다. 걱정하는 일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다. 그건 더 큰 불행에 대비해야 충격이 덜할 거라는 심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시 일하러 나가서 힘들면 그만둔다, 하고 간 복직이다. 적게 먹고살면 되지.  


말이 그만둔다지, 밥벌이를 접는 일이  앉은뱅이 밥상 다리 접는 것처럼 쉬운 일인가... 불안하였다. 그런데 여기 앉아 천연덕스레 일을 하고 있다. 웃는다.

'혹시 30년 가량 일하다 휴직 이삼 년 하고 복직하시는 분들. 걱정 마시어요. 준비랄 것도 없어요. 기냥 가시면 되어요.'라고 내 경험담을 말씀드려도 될까 싶다. 그런데 나처럼 이런 휴직을 하는 경우가 잘 있을라나...... .






동안 쌓인 서류를 정리하며 버릴 것을 고른다. 없애려다 한 번 다시 눈이 가는 A4지.  기뻤던 말이 있었던 게 기억나서 쳐다본다. '저 말이 있다면 복직 점수 80점은 따놓은 것이다. '


복직하고 둘째 날 팀별 사내 연수라는 것이 있었다. 요즘엔 이런 식으로도 하구나. 마지막 마무리 시간에 서로의 장점을 스티커에 한 마디씩 써서 그 사람에게 붙여 주며 얘기해 주란다. 그리고 발표하란다. 헉... 하루하고 반나절 같이 지냈는데.. 어쨌거나 우리 팀 6명이 서로들 적어 주었다. 내 이름 옆에 한 마디씩 적어 준 동료들 목소리.



내 평생 거의 들을 일이 없던 말이 있다. 기억하고 싶어서 남겨 둔다.



우아하다. 음, 내가 한 우아하지.

예술 감각이 있다. 저건 좋아하는 걸 말해라기에 글 쓰는 것이라고 해서인  같다. 또, 하고 싶은 걸 말해 보라기에 그림 그리고 싶단 말을 해서일 것 같고.

친절, 포용적. 뭐 첨 오는데 그럼 불친절하게 하랴, 밀어내랴.

고 싶다, 멋지다. 헉, 날 계속 알면........더 그럴 거얏, 하하하!!


좋은 말만 적어주는 거니 짜달시리 애틋해할 건 없고 또 내가 연장자 쪽이다 보니 (어느 틈에 나도 그 부류에 속하게 되었다. 직장에서;;) 조심히들 쓰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저 중에 내겐 너무 찡한 말이 있다.

'생기'

아. 이제 내가 아팠다는 꼬리표를 뗄 수 있겠구나. 눈이 번쩍 띈 말이었다. 두 분이나 적으셨다.  '생기'가 있다니. 내가 대견했다.


복직하러 가는 날 쓴 글. 저 때 얼마나 비장하였던지.



그런데 지금 나는 생기롭다!

싫다 싫다 하였지만 워킹맘으로 살아온 지난날의 관성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집을 나와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마웠다든지 하는. 초유의 고물가 시대, 원상 복귀된 월급봉투를 쥐게 것이라는 현실적 문제 때문이었을까. 복직하여 하루 안에 몸이 기억하던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에 안도한 것이 가장 큰 이유 같기도 하다. 그간 살아온 세월이 그래도 헛 일은 아니었다 싶어서. 부정해 버리고 싶던 직장 생활이었던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복직 첫날. 사람들에게 웃고 있는 날 보았을 때 혹시 이런 게 '조증'이란 것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하고도 어색하였다. 그런데 지어 웃지 않고 그냥 웃고 있다. 그런 나를 보는 것은 아련한 낯설음이었다. 내가 이제 편안해지고 있구나.  




며칠 전, 연식이 오래된 자동차를 바꿔야 하나 고민하는 어느 분의 브런치 글을 읽었다.

'낡은 자동차가 기죽은 것 같다. 지은 죄도 없는데.'라는 부분을 읽을 때,

'그렇구나. 나도 죄가 없었구나.'

하는 말이 내 속에서 튀어 올랐다. 그 증거를 내밀어 준 것은 지난해 8월부터 시작한 글쓰기라는 것도 함께. 나는 그저 내 삶을 살아왔을 뿐이라는 것. 지은 죄도 없는데 왜 그렇게 아파했을까.


한결 편안해진 나. 이제 나로서 설 수 있는 나. 그리고 글쓰기.  이들이 '생기'란 말의 이유로서 단연 우뚝을 새삼 알아차린다.






내가 동료들께 적어 드린 내용을 기억해 보면

'굳세어 보여서 기대고 싶어 진다. 씩씩한 목소리 활달한 웃음 추진력이 대단하다. 따스한 마음 책임감 뿜뿜. 예술에 대한 사랑이 숨겨도 드러난다. 눈빛이 토끼같이 순하고 사랑스럽다. 잘 어울리고 봉사하려는 모습이 최고다. 업무를 보는 눈이 뛰어나고 불도저 같이 힘이 있다. '


우리 팀은 저러한 분들이다. 난 참 인복이 많다, 늘 느끼지만. 내 직장 생활에서 동료로 아주 힘들었던 적은 음... 한두 번 있었구나. 그래도 내 앉은자리 주변의 사람이 아니어서 지내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직장에서 마시는 커피는 항상 맛났다는 거지.


날 이후 지내 보아도 다들 서로 도와주려고 하지 미운 행동하시는 분들이 없다. 가끔 말씀이 좀 긴 분이 있어서 곤란한 때가 있긴 하나 들어 드리고 싶다, 그 세상 푸념.   




점심 후, 직장 정원을 한 바퀴 돌다가 한 동료가 수국은 꽃이 함박이라 '함박꽃'과 같은 꽃이라고 주장하시길래, 이상하긴 하나 그런가 보다 했다. 나중에 사내 메신저를 보내 놓은 귀여우신 동료님. 답 보내는 나.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하던 시구가 떠오른다.

이러한 사소함이 오랫동안 전해오기를.




나는 이제 생기롭다. 그리고 늘 쓰게 되는 출퇴근길 풍광과 더불어 동료들. 새로운 곳에서 복직한 첫해, 나에게 이런 복이 왔다. 돈을 좀 더 벌어라는 말인지. ;;  내가 휴직한 동안 좋은 일을 많이 했나 보다. 허허. 사실은 또 하나의  복이 있다. 언젠간 그 얘기도 하게 될까. 


결론. 복직 점수는 95점이다.

100점 하면  설레발 같아서 호사다마일까 하니, 5점은 남겨 두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누군가가 쓴 아름다운 문장에 밑줄치고 설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지난 4월. 복직을 돌아보며 쓴 글을 다시 읽어 보았다. 지금 와서 느끼는 마음을 조금 더하여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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