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실수를 하신 건지도. 거의 모든 면에서 고급스러운 영화이라 안 본 분이 손해다. 며칠 밥 먹지 않고 앓고만 싶은 영화다. 실제로도 앓는다... .
리뷰와 논평은 무지무지 많아 내가 더 덧붙일 역량도 없을 뿐더러, 속속들이 파헤쳐 지는 것도 이젠 이 영화에 미안할 정도라 난 딴 얘기, 그 세 사람 얘기를 좀 하고 싶다.
영화를 잘 모르고 박찬욱 감독 작품을 다 보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부터 믿고 보는 감독이 되었다. 좋아하는 감독인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있는 그 느낌은 좋다. 그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과는 다르게 불량했다. 불량함 속에 범인들이 끄덕일 만한 개연성을 넣어두는 그는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다. 원작이 있긴 하지만 '올드보이'에서 그 만두를 주구장창 먹어야 하는 이유 같은 것.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돈도 버는 날이 오겠구나.'
이런 인상을 받았던 거 같다. 표현의 힘이 장난 아니니 그 '이유'가 사라진대도 영화는 볼 만하겠단 생각도 했다.
그런데 하나도 불량하지 않은 이 영화가 그의 영화라니. 전작에 비해 친절해진 영화를 보니 그도 나이를 먹어 이순 (耳順)의 흐름에 따르는 경지로 옮아가려는 것인지, 아니면 한 번의 시도인지 다음 작이 기다려진다.
'안개'를 들으며 우는 탕웨이를 바라보던 박해일의 지긋한 미소. 영화제 시상식인지, 영화의 시상식 장면인지 헷갈리는 그 로맨틱한 미소가 화제였다. 그러고 보니 '은교'도 박해일의 분장 포스터 때문에 볼 결심을 했었다. 어디까지 그가 할 수 있나. 분장이 감출 수 없는 의상 속 젊은 몸이 어색했을 뿐, '잘하는구나'하며 보았던 기억이 난다. 할 수 있는 최대를 해내려는 젊었던 그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던 거 같다.
최민식을 두고 '이순신'을 한다고 했을 때 그 용기가 어디서 왔을까 싶었다. 티저 영상에서 맥없는 "출정하라."를 듣고 조금 실망.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의 출정하라'를 사랑하게 되었다. '저 장면에서는 저렇게 대사를 쳐야 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는 실연(實演) 이구나... .'
헤어질 결심. '사람을 잡아야 하는 형사'와 '사람을 사랑하는 남자' 둘 다를 너무 잘 해낸다. 그간 무던히도 또 애썼겠구나. 그렇게 성장해 나가는 그를 지켜보는 것은 행복하다. 그러니 시상식에서 옆의 여인을 바라보던 눈빛도 그대로 받아 들여진다. 저이의 실상이리라고.
결국, 박찬욱이기 때문에 보고 박해일이기 때문에 보고, 마지막으로 이 여자 때문에 본다.
탕웨이의 예쁜 얼굴은 말뭐이니. 저렇게 예쁜 여자가 피의자이라서 심문을 해야 한다면 나도 그냥 사랑할 것만 같은데 뭘. 그 나이에 '색,계'의 그 여자를 해낸 탕웨이다. 전력이 쩡쩡한 양조위를 배경으로 만들고 전경으로 튀어 오르던 것이 단지 예뻐서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헤어질 결심의 그녀도 그랬다. 예쁘기만 해서 사랑하고 싶어지는 서래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보는 내내 탕웨이의 얼굴보다도 외국인에 의해 구사된 한국어의 질감과 의미에 대해 생각하느라 문득씩 영화를 방해받았다. 혀가 말리는 권설음, 또 상황을 빗나간 듯한 생소한 말의 사용, '마침내'같은.
생각해 보면 감독은 그 모호한 발음과 의미를 이용하여 우리로부터 그녀를 '안개' 가득하게 떼어놓으려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중국식 한국어 발음에 편해지고 싶다거나, 빗나간 말들의 정황을 맞추어 내려고 애쓰는 동안, 우리의 피의자 서래는 달아날 시간을 충분히 얻게 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발음에 익숙해질 때쯤, 그 단어의 용법도 사실은 어긋나지 않았던 거였고 이미 우리는 이 둘의 사랑에 푹 빠져있게 된다. 젠장, 사랑은 늘, 아름답고, 너무 아프다.
사랑하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포스터
그녀 언어의 하이라이트는 '마침내' 이지만 그 외 많은 유행어를 만들어 내었다. 한 영상에서 이 어떤 탕웨이를 보고 한참을 웃었다. 청각이 너무 정확한 희극인들의 비상함을 예찬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