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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수 Aug 27. 2023

04. 박성우 시인의 '메밀꽃밭'

유년과 중년

문학사상 8월호 이달의 시인.


'유년의 여름을 다시, 건너 보다',  시인 박성우


시인의 소년 같은 웃음이 좋다. 그의 유년을 함께 달린다.


시골로 돌아온 고모가  가꾸던 마을 어귀 코스모스 길. 소년은 점빵을 하는 고모의 외상값을 같이 챙기곤 했는데 고모그 꽃길 애지중지하는 까닭을 알 수 없다. 대처에서 고모는 사랑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란다, 꼬마야. 하며 읽는다.

봉숭아꽃물만이던가. 손톱 물이라면 고구마 줄기를 제쳐 놓으면 섭하다는 걸 난 알지. 봉숭아물 든 손가락이 아니었고구마 줄기는 까야했으니까. 소년은 그 줄기로 하여 손톱 밑에 때가 낀 느낌이 싫은데 어머니가 담가 주시는 고구마 줄기 김치는 매콤 시큼 왜 그리 맛있는가. 그러고 보니 나도 그 김치가 엄청 좋다. 호랑이 같던 우리 고모 밑에서 시집 살던 사촌 오빠의 새색시는 고구마 줄기 김치를 맛있게 담았었다. 아삭아삭 짭조름. 며칠 지나 맛이 들면 새콤해지는데 그때는 아주 그냥 꿀맛이었지.   


할머니가 통통한 가지를 소년네에 매 가져다준다. 실한 가지의 내력엔 매일 아침  머니가 에 부어대는 요강이 있었고, 이걸 알더니 누나들은 전과 달리 먹질 못하는데

 '흠. 맛만 좋구만. 뭔 지린내가 나는 것 같다고 그러지?'

하는 소년의 목소리에 고만 웃음이. 퍼드러하니 익혀 슴슴히 무친 가지나물을 좋아하는 나는 요 녀석의 어른스런 말에 "맞제, 그자?" 소리가 절로 난다.


유년의 밥상엔 밥이고 반찬이고 간에 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의 살내음으로 젖어 있었을 것이다. 텅 빈 나의 유년이었을지라도 여름 마루에서 식구들과 밥에 척척 얹어 먹는 저 음식이 '얼마나 맛있게요.' 하고 시인이 내게 말을 건다면 '그러게요.'라고 답할 수 있는 것은 대체로 '상상'의 힘이긴 하다. 그런데 따져 보니 무서워도 음식 잘하던 우리 고모 또 고모 며느리 새 언니가 있어서 저런 밥상 추억담에 나도 한 젓가락 얹고 훈수 둘 수 있구나 싶어 진다.





오이, 감자, 옥수수 이야기도 줄줄이 꿰어 나온다.  '옥수수 깡치에 이 닦을까?'를 읽을 때쯤이면 같이 옥수수깡 칫솔질을 하고 개운해진다. 현실로는 깡치 겨가 잇새에 끼어들고 달착지근 옥수물도 드니 뭐 개운하겠나 마는 소년을 따라 하고 있으면 다 백 점짜리가 되는 '지난 기억에 대한 관대함'이라니. 해본 적 없는 '옥수수깡치질'이란 말에 꼬리를 말아 올려 윗니를 한 번 스윽.   


남의 시골집 밭반찬을 따라 간드렁거리다 보 유년으로 틈틈이 달려가 폭폭 찌던 여름 입맛을 달구던 먹을거리 흥건히 만난다, 서럽던 그때 일들은 잊고. 이렇게 실컷 맛있게 먹다가 하늘의 별똥별을 거대한 별사탕쯤 여기고 수풀에 떨어진 그것을 찾으면 온몸을 대고 붙어 와작와작! 하겠다는 소년, 그 소년이 나오는가 했는데 시간 속에서 빠져나와 그새 쉰 살 중년이라고 말하는 시인이 있다. 그러니 시인의 소년과 함께 한참을 신나게 달다가 중년의, 푹푹 찌는 무거운 여름으로 나도 돌아와 버리고 만다.


시인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지금의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시 세 편을 슬그머니 부려 놓았는데, 이 시를 딱 만난다.




메밀꽃밭


                             박성우


씨앗을 넣은 지 얼마나 되었던가

메밀 줄기가 오밀조밀, 꽃을 피운다.

한낮 볕에 이파리를 늘어트리면서도

가늘고 여린 손을 뻗어 꽃을 내민다.

해가 어지간히 어간 늦은 오후,

호스를 밭머리로 길게 당겨

소나무 산자락 메밀밭에 물을 준다


여느 때처럼 별생각 없이  물 틀고

밭이랑 가운데로 물을 뿌리는 찰나,

배추흰나비 떼가 일제히 솟구쳐 오른다.

실로폰 소리처럼 경쾌하게 튕겨올라

메밀꿏밭을  배추흰나비밭으로 바꾼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일순간에

쪽으로도  하얗게 치고 들어와

나조차도 메밀꽃밭 위로 띄워 올린다.


하얗게 일렁이는 마음은 멈추지

물 호스를 그만 거두어야 할지

주던 물을 마저 주어야 할지,

궁리하는 사이에도 추흰비 떼는

팔랑팔랑 붕붕, 나를 잡고 솟구쳐 오른다.


문학사상 2023. 8월호




아. 이 배추흰나비 떼가 눈앞에 잡히는 것만 같다. 무수한 파닥거림의 알갱이가 분분할 때, 진득이 묵었 동안의 여름 습도가 말갛게 걷히음도 날아오르는 게 아닌가. 가을이라기엔 이른데 묵은 여름 이렇게도 탈탈 털어주 시를 만나  동안의 무거움을 떨어내고 비상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배추흰나비 떼.  듣기만 해도 가비얍도다. 팔랑팔랑 붕붕. 나는 이렇게 솟구쳐 오르고 있는 것을.






집 앞 작은 도서관에서 문학잡지를 뒤적이다 만난 배추흰나비 떼다.



 이 시에 앞서 시인의 말은 이러하였다.

" ㆍㆍ 나는 그새 쉰 살이 넘은 중년이다. 그러니 별수 있겠는가. 순간순간의 시간을 메밀꽃처럼 환하고 배추흰나비처럼 팔랑거리며 사는 수밖에."


그런데 나는  말과 달리 별수 없어서가 아니라, '별수'로 팔랑거리고 싶다. 여름 메밀의 숨 막히는 은 생의 애욕을 떠 올리게 하는 '메밀꽃 필 무렵' 허생원의 은 날 이야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러한 삶의 정점은 어느 순간에나 있다. 지금 솟구쳐 오르는 배추흰나비는 누구의 것인가. 그것을 보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중년의 무게는 얼마쯤 될까. 저 '팔랑팔랑 붕붕'에 함께 솟구쳐 오르려면 아이의 무게쯤이거나 시인의 영혼쯤이 되어야 할까. 그러고 보니 소년의 여름 음식을 얻어먹다가 내 속의 그 아이도 만났다. 아이는 내 속에 늘 있다.

'그래 ... 너를 안아 줄게. 이리 온.'

나는 유년의 나를 안고 함께 날아오른다. 팔랑팔랑 붕붕. 배추흰나비 떼가 우리 둘을 잡고 솟구쳐 오른다. 시인의 영혼이 내게 준 선물이다.




ㆍ메밀꽃밭 사진 출처ㅡ김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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