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자식을 잡아 먹는 사투르누스
이 그림의 제목은 ‘1808년 5월 3일’이다.
프랑스 군대가 마드리드 외곽에서 스페인 사람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나폴레옹과 시민 군대의 싸움에서 항복하고도 죽는 사람들을 그렸다. 특히 가운데서 두 손을 들고 있는 흰 셔츠 입은 인물이 인상적인데,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표현했다.
고야는 이 작품을 통해 프랑스에 대항한 스페인의 봉기를 기념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로 치면 ‘3.1 운동’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난청과 격동적인 시대 상황으로 인해 고통을 받던 말년의 고야는 어둡고 기괴한 작품들을 다수 제작했다.
마드리드 외곽에 마련한 전원주택, ‘귀머거리의 집’이란 뜻의 ‘킨타 델 소르도’란 별칭이 붙은 집의 회벽에다 직접 그렸다. <검은 그림>으로 불리는 연작이다. 전부 다 기괴하고 섬뜩한, 대중에게 공개할 의도가 없는 그림이었다. 제목도 붙이지 않았다.
스페인 내전을 암시하는 작품으로 여겨지는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에 나타나는 묘사는 너무도 불안하고 어둡다. 미래의 신 사투르누스가 잡아먹는 자식은 바로 국민이었다.
고야의 마지막 작품은 프라도 미술관에 걸려 있는 <진단서를 들고 있는 주치의의 초상화>였다.
고야는 파리와 보르도에서 은둔했다. 82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스페인에 돌아오지 않고 프랑스에 머물렀다.
우리는 시간에 쫓겨 거의 겅중겅중 뛰어다니다시피 하며 중요한 그림만 골라서 보았다. 모처럼 큰맘 먹고 멀리까지 온 길이라 열심히 보고 듣고 메모장에다 기록했다.
아무런 감정의 기복도 없이 기계적으로 읊어대는 가이드의 설명을 놓치지 않고 수첩에 적으려니 정말 벅찼다.
그래도 책에서 보았던 유명한 그림들을 원화(原畫)로 다 보았으니 본전은 다 뽑은 기분이다.
이번엔 시간에 쫓겨 가이드가 보여주는 그림만 감상했지만, 다음에 여유롭게 일정을 잡고 다시 와서 찬찬히 보면 좋겠다.
우리는 미술관 마당에 있는 고야의 동상 앞에서 단체 사진만 찍고는 서둘러서 톨레도로 향했다. 오늘 톨레도 관광을 다 마치고 포르투갈 국경 근처까지 가서 숙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내일 리스본에서 열리는 심포지엄을 예정된 시간에 잘할 수가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