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도 대성당, 엘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톨레도는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약 70km 떨어진 곳에 있다. 1561년에 수도가 마드리드로 옮겨질 때까지 스페인의 중심지였다. 타호강에 둘러싸여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천년고도(千年古都)로, 우리나라로 치자면 경주 같은 곳이다. 마을과 좁은 도로와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우리는 귀족의 저택을 개조하여 만든 식당으로 가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식당 창밖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다 그림엽서 같다.
스페인 음식은 우리에게 그리 낯선 맛이 아니었다. 맛있는 음식에다 와인까지 한 잔 곁들이니 여행자의 흥취가 확 올라왔다. 이제야 제대로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밥을 먹다 보니 어느새 3시가 다 되어간다. 톨레도 구시가지를 둘러보고, 오늘 밤에 묵을 호텔이 있는 포르투갈 국경 부근까지 가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톨레도에서 국경 근처 작은 도시 메리다까지는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우리는 여유를 부릴 겨를 없이 서둘러 길을 나섰다.
가파른 언덕 위에 세운 산성, 톨레도(Toledo)로 올라가는 언덕은 계단 길이었다. 관광객을 위한 배려인지, 끝도 없이 이어지는 높은 계단 옆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경사가 심한 언덕을 여러 구간으로 나누어 계단을 놓았다. 에스컬레이터도 여러 개로 나누어서 설치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천천히 올라가니 촘촘히 지은 석조 건물들과 돌을 박아 놓은 좁은 골목길이 우리를 맞는다.
작은 마차 하나만 지나가도 꽉 차게 생겼다.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났는지 거리가 무척 한산하다.
건물들은 서로 이마가 닿을 듯 바짝 붙어 있다. 건물 사이의 좁고 깊은 골목은 꼭 미로 같다. 길을 찾기 힘들어서 외적이 쳐들어 왔을 때는 도망치고 숨기 좋았을 것이다.
이슬람교와 유대교, 가톨릭이 혼재된 마을에 성당이 엄청 많다. 성당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거나 관광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종교 세를 거두어서 성당을 운영하게 된 후부터 급속도로 쇠락하고 말았다.
국가에서 고정적으로 월급을 받게 되니 사제들의 신앙적 열정도 시나브로 식었다.
톨레도 대성당(Toledo Cathedral)은 고딕 양식으로 페르난도 3세가 1227년에 건설하기 시작하여 266년 만인 1493년에 완공하였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증축과 개축을 되풀이했다. 현재 에스파냐 가톨릭의 총본산이다.
본당 우측 보물실(Sala del Tesoro)에 있는 ‘성체현시대(Custodia)’는 전체를 다 금과 은으로 만들었다. 총 5,000개의 부품으로 되어있고, 무게는 180kg이다.
프랑스 왕, 생 루이가 기증한 ‘황금의 성서’도 있다.
중앙에 있는 성가대실의 의자 하나하나에 새겨진 정교한 목각은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화가 엘 그레코와 고야의 작품도 여러 점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고 화려한 성당이다.
그리스 태생의 화가이며 조각가, 건축가인 엘 그레코는 주로 스페인에서 활동하였다. 본명은 ‘도미니코스 테오토코플로스’지만 ‘그리스인’이라는 말의 이탈리아식 발음인 ‘엘 그레코’라 불리게 되었다.
그는 바르셀로나의 가우디처럼 살아생전에는 별로 인기가 없던 비운의 화가다.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어두운 단색으로 배경을 표현하여 인물을 강조하고, 사람들을 10등신에 가깝게 길게 그렸다. 눈에 띄게 독특하고 파격적인 화풍의 소유자였다. 그의 진가는 죽은 후에도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19세기 이후에야 재평가되어 폴 세잔을 비롯한 많은 화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특히 20세기 초에 독일 표현주의가 등장하면서 미술사에서 신기원을 이룬 가장 중요한 작가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엘 그레코는 스페인의 궁중 화가로서 톨레도에 정착한 후에 평생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다. 스페인 왕실이 마드리드로 천도한 후에도 톨레도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극사실주의를 배제하고 현실주의 그림의 시조가 된 그의 그림 속 인물은 모두 셋째와 넷째 손가락을 붙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자화상도 많이 그렸다.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 그림 속에다 자기 얼굴을 슬쩍 그려 넣기도 했다.
그가 그린 사람을 자세히 보면 그림 속의 눈동자가 계속 나를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주 묘한 착시 현상이다.
엘 그레코의 작품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기괴하다는 이유로 백작을 매장하던 당시에는 톨레도 ‘산토 토메 성당’ 관계자들이 그림 걸어 놓기를 꺼렸다. 하지만 지금은 이 그림 덕분에 작은 성당이 관광 명소가 되었다.
워낙 빡빡한 일정이라 꼭 가봐야 할 장소만 골라 다니는 우리 일정에도 산토 토메 성당이 들어있었다.
엘 그레코 그림의 모든 특징이 다 들어있는 <오르카스 백작의 매장>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성당 안에 있는 오르가스 백작의 무덤 위에 걸려 있다. 그림을 보러 온 사람들은 자연히 백작 묘소에 참배하는 것처럼 빙 둘러서게 된다.
화가가 살아있을 때는 푸대접을 받던 그림을 보러 전 세계에서 찾아오고 있다. 예술가는 왜 죽은 후에야 빛을 보게 되는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톨레도는 철제 생산지다. 특히 검 제작으로 유명한데, 펠리페 2세가 톨레도에 있던 궁정을 마드리드로 옮기면서 침체기를 겪었다. 하지만 지금도 시 중심부에서는 칼과 철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거리에 있는 기념품 가게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그나마 불이 켜진 곳은 특산품인 철제품과 칼을 파는 가게밖에 없었다. 행여 길을 잃을세라 일행의 꽁무니에 바짝 붙어서 미로 같은 골목길을 내려가면서도, 불 켜진 특산품 가게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우리는 가게 앞에 잠시 멈춰서 사진을 찍었다.
톨레도 칼이 그리 단단하고 좋다는데 기념품으로 사갈 수가 없다. 날카로운 흉기를 소지하고는 비행기를 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살림하는 주부들은 주방용 칼을 탐내고, 남성분들은 멋진 모양에 마음을 빼앗겼다.
쉽게 가져갈 수 없는 물건이라고 하니 괜히 더 탐났는지도 모른다.
마드리드에서는 날씨가 좋았는데, 톨레도에 도착하자 하늘이 흐려졌다.
통상 스페인에서 비를 만날 확률이 극히 낮다기에, 나는 한국에서 여행 가방을 꾸릴 때 우산을 가져오는 것조차 망설였었다. 오늘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에도 반신반의했다.
큰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오긴 했지만 여태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톨레도 대성당에서 나오자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일기예보를 믿고 온종일 우산을 들고 다닌 보람이 있다.
골목길은 어둑해지는데 좀처럼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좁고 깊은 골목길에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돌바닥에 물이 넘치니 발 디딜 데가 마땅치 않다. 길이 너무 좁아서 자동차를 만나면 담벼락에 바짝 붙어 꼼짝하지 않고 있어야 했다.
발끝에다 온 신경을 다 모으고 조심조심 걸어도 경사진 길이 너무 미끄럽다. 비에 젖은 바짓가랑이가 어느새 다리에 휘휘 감긴다.
좁은 골목길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지어 걸으며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고 여럿이 함께 걸어보는 게 얼마 만인가. 같은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한 위안이다.
동그랗게 펼쳐진 세상 속으로 응축된 우주가 들어와 나를 충만하게 채운다.
빗물은 생각을 타고 내 속으로 들어와 무의식 깊숙한 곳에 고인다.
고목처럼 바싹 메말라가던 모든 것들이 촉촉해지는 시간이다.
고개를 반쯤 숙이고, 우산 속을 걸어가는 뒷모습이 새삼 아름답다. 세월을 거스르려는 발걸음이다.
정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인가 보다. 비록 몸은 늙어가고 있지만, 마음은 하나도 늙지 않았다.
한참 만에 골목길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아까 올라왔던 입구에서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버스에 올라타고 나서야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태양의 나라 스페인에서 이렇게 비를 만난 건 이번 여행을 축복하는 징조라고 생각하자. 세상에는 애초부터 좋고 나쁜 일이 따로 없다. 모든 것이 다 해석하기 나름이다.
큰맘 먹고 스페인에 왔는데, 톨레도를 이렇게 대충 보고 떠나려니 미련과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그래도 우리는 뒤돌아보지 않고 발길을 재촉했다.
다음에 여유롭게 일정을 잡고 또 오면 되지.
마드리드 솔 광장에서 영점을 밟으면 언젠가 꼭 돌아온다고 했으니, 그 말을 믿어보기로 하자.
‘리스본 심포지엄’을 차질 없이 잘하려면 오늘은 되도록 포르투갈 가까운 곳에서 자야 한다. 내일 아침 일찍 국경을 넘어가야 예정시간에 맞출 수가 있다.
이른 아침부터 바삐 돌아다닌 데다가 시차까지 더해지니 갑절로 피곤하다.
우리는 앉자마자 꾸벅꾸벅 졸다가 까무룩 잠들고, 버스는 스페인 국경 근처 작은 도시 메리다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