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작가인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 기념관으로 가는 길에 제로니모스 수도원과 벨렘 탑을 들를 예정이다. 안에 들어가서 볼 시간은 없지만 어떻게 생긴 곳인지 직접 가서 둘러보기로 했다.
카보다로카에서 거세게 불던 바람 끝에 비가 묻어 있었나 보다. 수도원에 도착하니 가랑비가 간간이 뿌리기 시작한다. 투박한 인상의 현지 가이드가 버스 안에서 제로니모스 수도원과 벨렘 탑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리스본의 벨렘 지구에 있는 여러 역사 유적 중에서 가장 훌륭한 유적으로 손꼽힌다.
이 수도원은 16세기 마누엘 1세의 의뢰로 산타 마리아 예배당 자리에 세워졌다. 산타 마리아 예배당은 마누엘 1세의 조상인 항해 왕 엔리케가 세웠는데, 당시 뱃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성당이었다.
처음엔 포르투갈 왕실의 묘지로 사용하려고 지은 수도원이 훗날 탐험가 비스코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개척하고 귀환한 것을 기념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바스코 다 가마도 역사적인 출정 전야에는 꼭 이곳을 찾아 기도했다.
성당에 있는 바스코 다 가마의 무덤은 지금도 수도원의 중요 역사적 기념물 중 하나이다. 그의 무덤 기둥에는 밧줄을 쥔 손이 조각되어 있다. 그 손을 만지고 기도하면 항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다는 속설이 있었다.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싶은 사람들의 염원으로 인해 그 손은 반들반들해졌다.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고딕, 이탈리아, 스페인, 플랑드르 디자인을 병합한 건축물로 세계에서 마누엘 양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물로 평가된다. 198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 수도원은 지금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벨렘 탑은 제로니모스 수도원에서 빤히 보이는데 실제 거리는 꽤 멀다. 시간에 쫓기는 데다가 바람까지 몰아치니 탑 위로 올라가 보기는커녕 가까이 가서 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우리는 멀리 보이는 벨렘 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만 찍었다.
벨렘 탑은 유럽인 최초로 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인도까지 항해했던 바스쿠 다 가마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요새이자 감시탑이다. 16세기 포르투갈의 고유 건축 방식인 '마누엘 양식'으로 지었다.
화려한 장식과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이 탑은 리스본 항구를 감시하는 용도로도 쓰였다. 멀리서 보면 나비가 물 위에 앉아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탑의 밑 부분은 원래 물속에 잠겨 있었는데 1755년 대지진으로 테주강의 흐름이 바뀌는 바람에 건물 전체가 물 밖으로 드러났다.
바다 끝에 건축한 이 작은 성곽은 큰 배가 출항할 때는 왕이 베란다에 서서 직접 배웅하기도 하고, 각종 기념일이면 파티 장소로도 쓰였다. 위층은 화려하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며 왕의 권위를 뽐내기에 매우 적당한, 아름답고 탄탄한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물에 잠겼다가 드러난 아래층은 19세기까지 정치범 수용소로 쓰였다. 만조 시에 바닷물이 넘치면 감옥은 모조리 물에 잠기게 되었는데, 끝내 죄수들을 대피시키지 않았다는 잔혹한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벨렘 탑은 천국과 지옥이 공존했던 복합건물인 셈이다.
이 탑도 제로니모스 수도원과 함께 1983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