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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재 Jan 31. 2024

리스본, 사라마구 기념관(1)

포르투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4리스본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 기념관    

  

    

하필 리스본 신시가지에서 구시가지로 연결되는 곳에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었다. 차는 들어갈 수가 없게 막아 놓아서 기념관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리스본 거리의 바닥은 대리석이다. 매끄러운 대리석 위에 빗물이 덮이니 발끝이 무섭다. 중앙통 큰 거리에는 크게 자른 대리석, 뒷골목에는 자잘하게 자른 대리석을 다 깔아 놓았다. 가이드 말로는 싸고 흔해서 대리석을 썼다는데 비가 오니 걷기가 영 불편하다. 미끄러질까 봐 최대한 몸을 낮추고 걸었다.


시장통 먹자골목을 지나간다. 비가 억수로 퍼붓는 데도 사람들이 차일 밑에 놓은 테이블에 모여 앉아서 놀고 있다. 어설픈 차양 사이로 빗물이 쳐들어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고 떠든다. 맥주를 마시며 친구들과 함께 축구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중인가 보다. 마침 오늘이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이란다.


비가 오는데도 급할 것 없이 여유롭게 자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여태껏 무언가에 쫓겨 정신없이 달려가기만 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걸 최고의 미덕으로 알고 살았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 속 개미처럼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베짱이처럼 느슨하게 살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끊임없이 일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지향했다. 


가끔은 저 사람들처럼 비가 오든 말든 유쾌하게 먹고 마실 수 있는 여유로운 자세로 살아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1998년에 『눈먼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cegueira)』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라마구의 기념관은 리스본 항구 근처에 있다. 지금은 사라마구 재단 본부 겸 기념관으로 쓰이는 카사 도스 비코스(Casa dos Bicos)는 아담하고 아름다운 흰색 건물이다. 16세기 초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건축 양식과 포르투갈의 마누엘 스타일로 지었다. 


건물 외관에 운동화 스파이크같이 뾰족 튀어나온 장식들이 이어져 있어서 ‘스파이크의 집’이라고도 부른다.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우리는 밖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는커녕 간판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정신없이 비를 피해 들어간 기념관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무심한 얼굴로 서 있는 사라마구의 커다란 독사진이었다. 입을 굳게 다문 남자의 눈빛이 날카롭고 야윈 뺨 위로 우수가 흐르고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어디서 많이 본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는 그의 사진 옆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경은 수필가, 사라마구, 김희재 수필가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 1922 ~ 2010)는 50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창작의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1949년에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은 신경학자 안토니우스 에거스 무니스에 이어서 받은 그의 노벨 문학상은 포르투갈의 언어와 문화가 낳은 큰 성과였다. 


사라마구는 1980년대에 접어든 후에 인간의 운명과 약점을 깊이 있게 다룬 독창적이고 다층적인 작품들로 작가로서의 성년기를 맞았다. 흔히 우화적이라고 표현되는 그의 소설은 정치적 회의주의와 역사적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마술적 사실주의의 경쾌함, 실험적 문장, 등장인물들에 대한 애정을 가미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그는 60세에 비로소 장편소설 『수도원 회고록(Memorial do convento)』(1982)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8세기 초반의 종교재판을 무대로 한 이 작품은 노련한 전사 발타사르와 비상한 힘을 지닌 여인 블리문다의 사랑을 다룬 복잡한 환상소설이다. 



사라마구는 1922년 11월 16일에 리바테주 지구에 있는 아지냐가 마을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용접공, 제철공, 막노동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다가 출판사의 편집자로 들어갔으나 자신의 글은 거의 쓰지 못했다. 


그는 1969년에 안토니우 데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독재 치하의 억압적인 분위기를 참을 수 없어 공산당에 입당했다. 1974년 4월 혁명 이후 역공에 나선 반공 세력에 밀려 신문사에서 쫓겨나 국외로 강제추방 되었다. 추방된 후에 생계를 위해 번역가, 언론인으로 활동했고, 1979년부터 전업 작가가 되어 희곡, 소설, 시, 일기 등 전 장르에 걸쳐 활동하였다.


1977년에 첫 장편소설 『회화와 서예의 안내서(Manual de pintura e caligrafiea)』를 출간했다. 이 작품은 어느 이상주의적인 초상화가가 화가이자 비평가로서의 자신의 내적 통합성을 지키기 위해 갖은 희생을 치른다는 내용이다. 


단편집 『유사 사물(Objecto Quase)』(1978)과 장편소설 『바닥에서 일어나(Levantado do chao)』(1980)에서 그의 관심은 정치로 옮아갔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살라자르 독재체제 아래서 형성된 것이었다. 

   (계속)


사라마구 기념관에 걸려 있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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