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속의 영국
버스에서 처음 지브롤터 지형을 보았을 때 나는 독도가 생각났다. 뜬금없이 그냥 독도 생각이 났다. 아마도 돌섬처럼 보이는 삐죽한 삼각형의 암벽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보면 헤라클레스가 세상의 종점에 도착하여 두 개의 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그 두 기둥 중 하나가 히스페니아의 지브롤터 암벽이고 다른 하나는 지브롤터와 마주 보고 있는 아프리카의 몬테 하초라고 믿었다. 스페인 국기에 있는 스페인 왕가의 문장에 그려진 두 개의 기둥이 바로 이 두 암벽을 상징하는 것이다.
일명 지중해의 끝이자 고대 세계의 끝이라고도 불리는 지브롤터는 이베리아반도 남단 지브롤터 해협에 있는 영국령이다.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도시 라 리네아 데 라 콘셉시온(La Linea de la Concepcion)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역사적 이유로 인해 스페인과 영유권 분쟁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여권 심사를 거쳐 지브롤터로 들어갔다. 지브롤터는 비록 작은 땅이지만 명백한 영국이었다. 여태껏 지나온 스페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우리는 입국장에서 도심까지 빨간색 지브롤터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돌산 긴 터널을 통과한 끝에 깔끔한 도시를 만났다. 지브롤터 전역이 다 면세구역이라고 하니 쇼핑 좋아하는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버스에서 내려 각자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1시간 후에 헤어진 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영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거리를 천천히 걸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저 잠깐 점만 찍고 가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진 찍는 것밖에 없었다.
거리 끝까지 천천히 갔다가 원점으로 돌아오는 데는 한 시간도 넉넉했다. 유난히 건물을 바짝 붙여지어서 생긴 좁은 골목이 인상적이었다. 작은 도시 안에 대학교도 있고 규모가 큰 공연장도 있다. 전체적으로 탄탄하고 안정된 분위기였다. 스페인 속에 버젓이 자리 잡은 영국 풍경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