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즈
아침에 출발할 때부터 현지 가이드는 '모로코는 모르고 가는 나라'라고 했다. 알고는 안 갈 고생길이라는 뜻이었다.
더욱이 오늘은 날씨가 나빠서 모로코로 가는 길이 수월하진 않을 것이라는 예고를 계속 되풀이했다. 자칫하면 스페인 타리파에서 모로코 탕헤르까지 가는 쾌속정이 뜰 수가 없다고 했다.
1시간이면 되는 쾌속정을 타지 못하게 되면 바지선을 타고 멀리 돌아서 밤새 가야 하고, 파도가 너무 세면 아예 항구에서 발이 묶일 수도 있다고 겁을 주었다.
가이드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우리가 예약한 배는 파도가 높아서 출항이 취소되었다. 그래도 저녁 7시에는 큰 배가 뜨게 되어서 타리파 선착장에서 기다렸다가 타기로 했다.
우리는 졸지에 두어 시간 동안 선착장 난민 신세가 되었다. 모로코는 스페인보다 치안 상태도 나쁜 데다가 여러 가지로 다 열악한 환경이니 고생을 각오하라는 가이드 말에 다들 위축되었다. 모르고 가는 나라가 모로코라는 말이 사실이면 어쩌지? 슬슬 걱정이 많아졌다.
탕헤르까지 가는 배 안에서 28명의 입국 서류를 쓰는 사이에 모로코에 닿았다. 1시간 만에 무사히 도착했다.
스페인에서 타던 버스는 스페인에서 기다리게 하고 탕헤르에서 모로코 버스와 현지 가이드를 새로 만났다. 고물 버스가 나올 확률이 높다기에 걱정했는데 갓 출고된 새 차가 나왔다. 운전기사와 가이드도 젊고 친절했다. 모르고 간 모로코에서의 출발이 좋아서 다행이었다.
탕헤르 호텔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서 4시간 반 후에 페즈(Fez)에 도착했다.
스페인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졌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철근이 삐죽삐죽 나온 건물이 길옆에 즐비했다. 건물을 완공하면 세금을 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미완의 집에 들어가서 살고 있었다.
모진 가난을 헤쳐나가는 요령이랄까, 살아남으려는 자들의 독한 생명력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그들의 삶을 구차하다는 말 한마디로 폄훼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페즈는 모로코의 주요 도시 중 가장 오래된 중북부 산기슭의 중세 도시다.
메디나(Medina of Fez)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벽으로 둘러싸인 구도심으로 대학, 전통시장과 레스토랑 등이 있다.
우리가 방문한 날이 마침 이슬람교의 안식일인 금요일이라 좁은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수많은 가게는 대부분 문을 닫았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도 버거운 매우 좁은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자칫 한눈을 팔다가 일행을 놓치면 찾을 길이 막막한, 대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는 어둡고 좁은 미로였다.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끌려다니면서도 나는 특이해 보이는 것은 다 사진에 담았다.
골목에 있는 가게마다 각양각색의 물건으로 휘황찬란한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하필 휴일에 맞춰서 오는 바람에 빈 골목길만 휘돌아 보고 나오게 되었다.
너무 먼 곳이라 다음에 또 오리라고 장담할 수 없어서 더 아쉽다.
이번 여정 중에 가장 보고 싶고, 기대했던 광경을 눈앞에서 놓쳤다.
여행이란 것이 원래 계획한 대로 착착 되지 않고 변수를 만나는 것이 매력 아닌가. 다음에 여정을 넉넉히 잡고 다시 와야지. 나는 막연한 다짐을 또 하면서 미로 같은 골목을 정신없이 빠져나왔다.
페즈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가죽을 가공하고 염색하여 제품으로 만드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내가 모로코에서 꼭 보고 싶었던 염색하는 과정도 오늘이 금요일이라 볼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독한 염료 냄새를 피해 박하 잎으로 코를 막고 가죽 제품을 파는 가게로 들어갔다.
가방과 옷, 슬리퍼 등 온갖 가죽 제품이 다 있다. 아쉬운 대로 공장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쇼핑도 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