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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재 Feb 26. 2024

모르고 가는 나라, 모로코(3)

카사블랑카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내 눈에는 그저 평범해 보이는 작은 항구에 불과했다. 


카사블랑카 입구에서 잠시 머무르지도 않고 그저 스쳐 지나가면서 가이드가 빠른 말투로 설명했다.


 “여기가 그 유명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카사블랑카랍니다. 저기 언덕 위에 있는 하얀 집들 보이시지요? 지금은 낡아서 누런 집이 되었지만요. 


지금 막 지나온 곳이 바로 영화에 나왔던 그 카페입니다. 릭(Rick)이 운영하던 카페, 다들 보셨어요?”


거의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었고, 버스는 멈출 의사가 전혀 없이 속도를 유지하며 달렸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졸린 눈으로 커튼을 들치고 내다봤을 때는 이미 바닷가 릭의 카페가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거리를 무심히 달리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의 상투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여러분들 중에 카사블랑카 영화에 나오는 그 카페에서 분위기 잡고 술 한잔하고 싶으셨던 분은 안 계십니까? 


이 버스 안의 어떤 분은 카사블랑카에 가서 멋진 분위기에서 술 마시는 것을 평생 버킷리스트로 간직해 오셨다고 합니다. 그런 분이 또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이제부터 제가 초를 좀 치겠습니다. 


사실 여기에서 카사블랑카 영화는 단 한 컷도 촬영하지 않고 전부 다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찍었답니다. 그냥 카사블랑카라는 이름만 가져다 쓴 것이지요. 


방금 지나온 그 카페도 영화가 대박이 난 후에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영화 덕분에 카사블랑카라는 도시가 유명해진 셈이죠.”


가이드의 설명에 다들 크게 실망했다. 오래 간직했던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 대한 환상이 와그르르 깨지는 순간이었다.      


영화 카사블랑카 포스터

영화 카사블랑카는 1942년에 개봉한 흑백영화다. 워너브라더스에서 제작, 배급한 영화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상황과 두 연인의 사랑을 그린 로맨스 영화다. 모로코의 도시 카사블랑카를 무대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영화를 제작할 당시에 북아프리카에서 횃불 작전이라는 전쟁 중이어서 카사블랑카에서 촬영은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미국 할리우드에다 스튜디오를 만들고 영화를 찍은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텔레비전에서 추억의 명화로만 여러 번 보았다. 




9스페인 태양의 해변으로     




저녁 어스름한 시간에 카사블랑카에 도착해 호텔에서 잠만 자고 이른 새벽에 서둘러 출발했다. 


스페인으로 가는 배를 예약해 놓은 터라 시간에 쫓겼다. 하산 메스키다 사원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6시 5분 전이었다. 6시까지는 조명을 켜 놓아서 사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우리는 사원의 조명이 꺼지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단체 사진 한 장 건졌다.         


카사블랑카 하산 메스키다 사원 앞에서

                              


대서양과 마주하고 있는 이 사원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메디나에 있는 모스크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이슬람 사원이다. 실내에 2만 5000명, 광장에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1986년, 모로코 왕 하산 2세는 물 위에다 사원을 짓도록 주문하였다. 신의 보좌는 물 위에 지어졌다는 코란의 구절을 따른 것이었다. 그래서 건물 일부만 절벽에 기대어 세웠다. 건물 대부분을 대서양 쪽으로 확장하여 바다 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지었다. 


하산 2세가 60세 되는 해인 1989년까지 완공하라고 명령했지만 4년 늦은 1993년에 완공되었다. 


사원의 바닥 일부가 유리로 되어 있어서 신도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면 바다 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사원 안에는 학교와 공중목욕탕, 박물관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 있다. 6천 명이 넘는 모로코의 장인과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양으로 장식한 사원을 완성하였다.   

   


우리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사원을 떠났다. 


동이 트기 직전의 어둠 속에 다시 숨어버린 사원을 뒤로하고, 배를 타기 위해서 탕헤르를 향해 계속 달렸다.


단 이틀 만에, 페즈를 둘러보고 리바트를 거쳐 카사블랑카에서 잠만 자고 다시 탕헤르로 돌아왔다. 그러자니 버스만 12시간 넘게 탔다. 


무엇 하나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우리에겐 생소한 이슬람 문화의 껍데기만 슬쩍 곁눈질한 느낌이다. 


그래도 평생 처음 아프리카 땅을 밟아 봤으니 만족이다. 다음엔 천천히 다니면서 자세히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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