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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재 Feb 29. 2024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

나스르 왕조, 보압딜, 나스르궁, 이사벨 여왕

10드디어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으로          



드디어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에서 카사블랑카와 함께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여기였다.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은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품었던 막연한 환상이었다. 아마도 기타 연주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의 물방울 구르는 듯한 소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알람브라 궁전 주차장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막 내리려는데 가이드가 우리 목에 건 무선기에다 그 음악을 틀어 주었다.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아름다운 기타 선율에 가슴이 먹먹하다. 손가락으로 기타 줄을 계속 튕기는 트레몰로 주법이 오늘따라 유난히 애잔하게 느껴진다. 


주차장에서 본 알람브라궁전

                                


 Alhambra는 ‘붉은 것’이라는 뜻의 아랍어 ‘Al-Hamra’에서 유래된 말로 ‘붉은 성’이라는 뜻이다. 스페인어는 h가 묵음이므로 Alhambra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알람브라로 표기해야 맞는다. 


스페인어로 그라나다(Granada)는 새빨간 씨앗을 가득 품은 석류를 의미한다. 그래서 궁전 정원에 석류나무를 심었을까? 주인이 다 사라져 버린 지금도 석류 홀로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알람브라궁 정원에 있는 석류나무



711년에 이베리아반도로 들어온 무어인들은 13세기 초 안달루시아의 수도였던 세비야가 가톨릭교에 점령되자 그라나다로 터를 옮겼다. 


나스르 왕조는 여기에다 1238년경부터 알람브라 궁전을 짓기 시작하였고, 250년 가까이 살면서 그들만의 화려한 문화를 이룩했다. 그라나다는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근거지였다. 


1492년, 그라나다의 보압딜은 끝내 버티지 못하고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와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나스르 왕조의 멸망으로 이슬람 왕국은 사라지고 이베리아반도는 다시 가톨릭 국가로 회복되었다. 


그들이 세운 알람브라 궁전은 유럽에 세워진 이슬람 건축의 백미로 남았다. ‘그라나다에서 소경이 되는 것보다 더 큰 형벌은 없다.’라는 찬사가 있을 정도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는 건축물이었다.    

      

왕의 전용 공간인 사자의 궁, 12마리의 사자가 떠받들고 있는 샘

               


스페인 군대는 1491년부터 알람브라 궁전을 포위하여 고사 작전을 펼쳤다. 


8개월 동안 압박을 당한 끝에 식량이 떨어지자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인 무함마드 12세 보압딜은 저항을 멈추고 은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들고 항복했다. 그의 항복 조건은 앞으로도 왕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이곳에 사는 이슬람과 유대인 백성들의 정치와 종교의 자유 보장이었다. 


이사벨 여왕은 보압딜의 항복 조건을 흔쾌히 다 승인했다. 그 조건에 덧붙여 물의 근원지인 알푸하라스(Alpujarras) 계곡과 금화 삼만 개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보압딜은 모든 재산을 다 털어서 금화를 준비하여 정복자를 맞았다. 


이사벨 여왕과 그녀의 남편은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하고, 이슬람 왕족과 시민들이 무릎 꿇고 있는 알람브라 궁전으로 무혈 입성했다. 그들이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한 것은 전적으로 그라나다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연기였다. 


사실 처음엔 그들도 이슬람교도들을 회유하고 달래서 이끌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사벨 여왕이 알람브라 궁전을 보고 난 후에는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듯한 궁전의 호화로움과 완벽하게 아름다운 정원 풍광에 이사벨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특히 시에라 네바다 산맥 정상에 있는 만년설 녹은 물을 땅속 수로를 통해 끌어다가 만든 분수와 연못은 상상을 초월한 놀라움이었다. 지상에서 꿈꿀 수 있는 천상의 세계가 형상화된 것 같았다. 아름다운 중정은 훗날 인도 타지마할의 모델이 되었다.         


알람브라 궁전의 아라야네스 중정 풍경

                            


이사벨 여왕은 이 궁전을 오롯이 독차지하고 싶었다. 그녀는 이슬람과 유대인의 정치,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한 말을 뒤집고 이슬람교도들을 무참히 박해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보압딜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아름다운 알람브라 궁전을 이사벨에게 내주고 말았다. 가족들과 부하들, 그리고 동행하길 원하는 백성들을 이끌고 눈 덮인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어 아프리카 모로코로 향했다.          

천혜의 요새인 알람브라 궁전

                                                     

천혜의 요새인 알람브라를 싸움 한번 해 보지 않고 그냥 내어주고 나온 안타까움과 죄책감에 어쩔 줄을 몰랐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보압딜은 영토를 빼앗기는 것보다 이 궁전을 떠나는 게 더 슬프다며 눈물을 흘렸다. 점점 멀어지는 궁전을 바라보며 왕과 신하들 모두 목놓아 통곡했다. 


그렇게 패자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향해 그의 어머니는, 남자처럼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니 여자처럼 울기라도 하라며 차갑게 비아냥거렸다. 


그라나다를 내어주고 모로코로 돌아간 보압딜은 알람브라 궁전을 끝내 잊지 못했다. 그래서 쫓겨간 그곳에다 알람브라와 비슷한 궁궐을 다시 짓고, 거기서 평생 가슴에 회한을 품고 살다 죽었다. 



그라나다를 완전히 점령함으로써 레콩키스타(Reconquista)를 완성한 가톨릭은 무어인들을 철저히 배척하고, 그들이 남긴 문화를 파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알람브라 궁전은 너무 아름다워서 차마 다 부수지 못하고, 왕의 거처로 사용하기 위해서 부분적으로 철거하고 변형하였다. 그러던 것이 나폴레옹 시대에는 완전히 방치되어 집시들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 


훗날 이곳의 건축적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발견한 사람은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이었다. 그는 미국인 작가이자 외교관이며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를 “인류의 성서”라고 극찬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그가 1829년에 출판한 <알람브라의 이야기 Tales of the Alhambra> 덕분에 다시 주목받게 되었고, 궁전의 원형을 찾기 위한 보수공사가 시작되었다. 


오랜 노력 끝에 알람브라 궁전은 1870년에 스페인의 국보로 등록되었고, 1984년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알람브라궁전의  나스르궁

알람브라 궁전의 핵심 공간인 나스르 궁은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을 따로 해야만 들어갈 수가 있다. 방문객 수를 엄격히 제한하여 예매하기가 매우 힘들어서 알람브라까지 와서도 못 보고 가는 사람이 많은데, 이번에 우리에게는 문이 열렸다. 예매한 표와 함께 여권으로 신분까지 철저히 확인하고 입장했다. 


궁전 안에서는 기대거나 만지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됐다. 셀카봉도 사용할 수 없고, 배낭도 꼭 앞으로 메라고 했다. 그만큼 훼손에 민감했고 철저히 단속했다.      



나스르 궁전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슬픈, 정교함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궁전 곳곳에 남아 있는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이어폰을 통해 들으면서, 섬세하고 정교하게 문양을 가득 새겨 놓은 벽과 천장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나스르 궁의 천장과 벽의 섬세한 문양

                                    


무심히 반복되는 흥망성쇠의 사이클을 여러 번 지나오면서, 시간 속 망각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진 것이 얼마나 많을까. 


용케 남아 있는 낡은 흔적들을 통해 왕성했던 순간들을 유추해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왠지 모를 허망함에 내 가슴도 덩달아 텅 비는 것만 같았다. 


알람브라 궁전에서 바라보는 그라나다 전경

                       


아름다운 궁전 안에 사람의 온기와 생기가 가득 찼던 그 시절에도, 이곳에서 모든 걸 다 누린 사람은 왕과 왕비 등 극소수에 불과했을 것이다. 왕의 혈족이라 해도 이 공간을 자유롭게 누릴 수는 없었다. 


모든 궁궐의 속성이 그렇듯이 이곳도 금단의 성역, 아름다운 지옥이 분명하다. 

                                            (계속)

              

                

그라나다 시내가 한눈에 다 보이는 전망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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