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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숙 Nov 22. 2023

예감, 계절, 그리고 소리들

커피 잔 속에 얼음을 띄우고 빙하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

작은 입술 하나에도 쉽게 녹아내리는 빙하처럼

내게 소리의 목적지가 없다는 건 다행이었어    

 

까만 커피 거울을 들여다보며

혹시 난 아프로디테의 분신일지도 모른다고

어둠에게 내가 했던 거짓말이 떠오르고, 

    

목적지를 잃은 내 소리들이

사거리에서 먼저 들어온 파란 신호등을 따라 걸을 때가 있었어

무작정 걷다 보면 

회귀하는 연어처럼 내 집 어두운 현관 앞에 당도해 있곤 했지


냉동고 문을 열고 네모난 얼음 조각을 꺼내 

뜨거운 커피가 담긴 찻잔에 넣고

쩍쩍 갈라지는 얼음의 최초의 소리를 들어보았지


귀부터 검은 액체 속으로 사라지는 저 은밀한 대화를 좀 만져봐

달아나는 소리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얼음에겐 뾰족한 귀를 버리는 일이 대화의 시작이라는 걸 알겠어

각진 얼음의 결정을 녹여 부드럽게 스며들어 

쓰고 달콤한 물이 되는 일이 사랑이란 걸 

    

빙하의 귀가 떨어지면 지난봄에 들렸던 아도니스의 정원에도 꽃눈이 제 안의 멍울을 기약 없이 밀어 올리고 있겠지     


꽃이 필 때면 멍울과 멍이 같은 혈통이라는 걸 알겠어

예감을 이기는 계절은 없어

꽃의 기분이 시린 바람을 부르던 날

눈부시게 화사했던 꽃이 더욱 아팠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  

   

시든 후의 꽃잎들이 모두 누군가의 아픈 귀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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