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잔 속에 얼음을 띄우고 빙하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
작은 입술 하나에도 쉽게 녹아내리는 빙하처럼
내게 소리의 목적지가 없다는 건 다행이었어
까만 커피 거울을 들여다보며
혹시 난 아프로디테의 분신일지도 모른다고
어둠에게 내가 했던 거짓말이 떠오르고,
목적지를 잃은 내 소리들이
사거리에서 먼저 들어온 파란 신호등을 따라 걸을 때가 있었어
무작정 걷다 보면
회귀하는 연어처럼 내 집 어두운 현관 앞에 당도해 있곤 했지
냉동고 문을 열고 네모난 얼음 조각을 꺼내
뜨거운 커피가 담긴 찻잔에 넣고
쩍쩍 갈라지는 얼음의 최초의 소리를 들어보았지
귀부터 검은 액체 속으로 사라지는 저 은밀한 대화를 좀 만져봐
달아나는 소리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얼음에겐 뾰족한 귀를 버리는 일이 대화의 시작이라는 걸 알겠어
각진 얼음의 결정을 녹여 부드럽게 스며들어
쓰고 달콤한 물이 되는 일이 사랑이란 걸
빙하의 귀가 떨어지면 지난봄에 들렸던 아도니스의 정원에도 꽃눈이 제 안의 멍울을 기약 없이 밀어 올리고 있겠지
꽃이 필 때면 멍울과 멍이 같은 혈통이라는 걸 알겠어
예감을 이기는 계절은 없어
꽃의 기분이 시린 바람을 부르던 날
눈부시게 화사했던 꽃이 더욱 아팠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
시든 후의 꽃잎들이 모두 누군가의 아픈 귀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