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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숙 Nov 22. 2023

골절

과일 가게 앞을 지나 횡단보도

한 알의 사과가 구르고 있는 길바닥

누가 흘리고 간 것일까

한쪽이 으깨진 사과

시멘트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제 몸을 떠나간 팔다리를

사과라고 읽어낼 수 있을까    

  

바닥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의외로 넓다

바닥을 친 사과 또한 그릴 것 

바닥은 바닥일 뿐이므로 아직도 떨어질 곳이 많다

바닥에 자리 잡기 무섭게 멍들고 깨진 사과는 

재빨리 사과의 껍질을 버리고

빨간 신호등에 멈춰선 트럭 앞바퀴의

울퉁불퉁한 곡선에 골절되지     

 

며칠 전 아파트 옥상에서 교복 입은 사과가 투신했다

껍질이 벗겨진 속살은 연했으므로 금방 바닥이 되었다

그래, 사과는 바닥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지 

하얀 과육이 바닥으로 스밀 때 햇살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바람은 묻지 않는다  

   

굴러 떨어지면 바닥과 한 몸이 될 수 있을까 

생각의 퍼즐들이 흩어져 있는 곳에 

흰 스프레이가 그어졌다 

    

송충이 한 마리,

푸른 나뭇잎을 향해 기어간다    

 

바닥도 제 몸처럼 가고자 하는 길이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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