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가게 앞을 지나 횡단보도
한 알의 사과가 구르고 있는 길바닥
누가 흘리고 간 것일까
한쪽이 으깨진 사과
시멘트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제 몸을 떠나간 팔다리를
사과라고 읽어낼 수 있을까
바닥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의외로 넓다
바닥을 친 사과 또한 그릴 것
바닥은 바닥일 뿐이므로 아직도 떨어질 곳이 많다
바닥에 자리 잡기 무섭게 멍들고 깨진 사과는
재빨리 사과의 껍질을 버리고
빨간 신호등에 멈춰선 트럭 앞바퀴의
울퉁불퉁한 곡선에 골절되지
며칠 전 아파트 옥상에서 교복 입은 사과가 투신했다
껍질이 벗겨진 속살은 연했으므로 금방 바닥이 되었다
그래, 사과는 바닥에게 사과할 필요가 없지
하얀 과육이 바닥으로 스밀 때 햇살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바람은 묻지 않는다
굴러 떨어지면 바닥과 한 몸이 될 수 있을까
생각의 퍼즐들이 흩어져 있는 곳에
흰 스프레이가 그어졌다
송충이 한 마리,
푸른 나뭇잎을 향해 기어간다
바닥도 제 몸처럼 가고자 하는 길이라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