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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숙 Nov 22. 2023

한 모

모서리를 돌아 시장에 갔다

분주한 신발들 틈을 지나 두부 가게 앞

가만히 앉아 있는 개와 눈이 마주쳤다

말랑말랑한 순두부가 개의 순한 눈빛과 닮았다

     

개의 눈빛에서 모서리가 살아난다     


자신의 각을 허물어 본 적 없는 모서리는 위태하다

물컹한 살덩이에 화들짝 놀란 칼자국

번지수 모르는 시장 모서리를 따라가다 보면

멀리 갔다 돌아오지 못한 엄마 냄새가 나지막이 들린다 

    

할머니는 간수 모자란 두부처럼 

물러터진 엄마를 늘 나무라곤 했다

불 같은 할머니 성격에 자꾸만 눌러 붙던 엄마 

화를 끌어 모아도 한 숟갈 간수 만도 못해서

순두부 같은 엄마를 입에 넣어 오물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무쇠솥이 거품을 물고 올라올 때마다 

엄마는 찬물을 끼얹었다

끓어 넘치는 것은 빨리 식혀줘야 한단다

엄마가 만든 두부는 하얗고 반듯했다 

칼이 지나간 직선은 그래서 슬프다  

    

물컹한 엄마는 으깨지기 쉬웠으므로,

아버지는 모서리부터 베어 물곤 했다  

   

금방 주저앉을 두부의 마음 위로

되살아나는 칼의 기억,  

   

한 모라는 말에는 벼린 기억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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