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자리 흩트리기

결심의 계기 2

by 불지않는 면빨

누구나 자기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명작 소설이, 어떤 이에게는 역사적 인물의 자서전이 그런 류에 속할 것이다.


나에게는 과거 경제부총리였고, 현재는 경기도지사인 김동연 씨의 자전적 에세이 '있는 자리 흩트리기'가 그랬다.


영국에서 귀국한 직후, 당시 회사 최고경영자께서 모든 임원들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김동연 씨가 고위 공직자로서 훌륭한 분이긴 해도 역사적 인물은 아니며 그의 책이 문학적으로 대단히 빼어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대로는 안된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강렬하게 느끼면서도 머뭇거리고 있는 내 마음에

'야! 더 이상 꾸물대지 말고, 일단 움직여'라는 듯, 그의 책 제목이 돌직구처럼 내 마음에 꽃였다.


있.는.자.리. 흩.트.리.기.



김동연지사는 덕수상고 야간 출신으로, 그가 33세 되던 때, 아버지를 잃고, 그의 아들이 27살 되던 때 세상을 여읜, 어찌 보면 지극히 불행한 개인사를 가지고 있는 분이다. 덕수상고 야간 졸업 후 생애 처음 입사한 은행에서, 상고 출신으로 겪은 엄정한 현실과 이상의 괴리, 자기의 선택이 아닌 주어진 삶의 굴레를 탈출하기 위한 지난한 도전과 시련이 절절히 잘 표현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꼽은 그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3 곳은, 은행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에서 잘 나가는 선배로부터 따귀를 맞는 장면, 김지사가 나중에 정부 고위 관료가 되었을 때 뒤돌아 본 젊었을 때의 자기와의 대화, 백혈병으로 죽은 아들의 모교인 미국 워싱턴 대학에서 아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벤치를 학교에 기증하며 했던 죽은 아들과의 대화이다.


여하튼, 상고 야간 학생이 대한민국 경제부총리가 되는 과정은 평범할 수 없는 일 일 텐데, 그것은 본인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나태해지고, 편안해 짐을 느끼기 시작할 때, 그때를 변화가 자기를 부르는 시기라고 보고, 미련 없이 변화를 감행했던 과정이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나는 왜 김동연 씨의 있는 자리 흩트리기에 내 마음이 요동쳤을까?


스무 살 초반 나와 어느 길거리 모퉁이에서 우연히 조우한다면
그냥 아무 말 않고 잠시 쳐다보기만 할 거야

'그 사람' 눈치채지 못하게 눈길이 머무는 정도 쳐다보다
그냥 가던 길로 다시 갈 거야

마음속에 가득하고 넘칠 안쓰러움,
그냥 속으로 간직하기만 할 거야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 가득한 열등감과 분노와 슬픔을
'그 사람'과 똑같이 느끼기만 할 거야

아, 정말로 정말로 열정을 다해 살아서
결국 극복하면 지금의 어려움이
오히려 큰 축복으로 바뀌긴 하겠지만
그래도 너무나 큰 고통과 아픔이
그 좁고 좁은 어깨 위에 사정없이 놓인 것을
'그 사람'과 똑같이 느끼기만 할 거야

삼십 년 전이 아니라 '그' 만난 그날의 내 일처럼 느끼면서
혼자 돌아서서 내 길 갈 거야
아, 불쌍한 젊은 영혼

스무 살 초반 나와 어느 길거리에서 우연히 조우한다면
아무 말도, 아무 내색도 않고
잠시 눈길을 주다가
돌아서서 남몰래 울면서 그냥 내 길 갈 거야

-김동연, <지금의 내가 스무 살 초반 나와 우연히 조우한다면>


작가가 스무 살 청년의 자신에게 한 독백이 날카로운 칼 끝이 내 살을 에이는 것처럼 아팠다. 그것은 김동연 씨의 젊었을 적 모습에 내 젊었을 적 모습이 어련거렸기 때문이리라.


자기 연민, 열등감, 분노, 슬픔




나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헌신적이었고, 모범적이었지만, 배움이 짧았고, 가난했다. 아니, 배움이 없어도 수완이 좋거나 운명적으로 부를 거머쥐는 인물도 있겠으나, 나의 부모는 그런 분들은 아니었다. 그냥 무지하게 고생하셨다.


70년 대 초, 나의 부모는 슬레이트 지붕이 가득한, 부산의 어느 산마루 밑에서 집 한편에 수동직물 기를 두고 스웨터 원장을 짜서 국제시장에 납품을 했다. 말이 직물기지, 그냥 큰 쇠뭉치를 기계틀 위에서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 좌우로 벅벅 밀어서 천을 짜는 것이니, 계속하면 팔과 어깨가 골병이 드는 것이다.


몇 백장의 스웨터 원단을 납품하기 위해 큰 포대기로 싸면, 어린 나의 눈에 그것은 도저히 사람이 옮길 수 없는 산더미 만한 크기가 되는데, 내 부친은 그것을 어깨와 뒷 목에 메고 걸어서 납품했다. 부친이 지금도 뒷 목을 아파하는 것은 그때의 무지막지한 노동의 대가이리라.


그것이 힘드셨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꾐에 넘어갔는지, 공장을 정리하고 중고 덤프트럭을 샀다. 트럭 이름이 제무시였는데, 본래의 이름이 GMC였다는 것을 커서 알게 되었을 때 그 황당함이란... 미국 GM사 트럭을 부산 사투리로 제무씨라고 부른 것이다. 경험이 없는 분이 중고 트럭을 가졌다고 잘 될 리가 있었을까? 아마도 빚으로 산, 중고 트럭을 처분하고 남은 돈도 없었을 터이니, 다음 생업으로 자본이 들어가지 않는 어느 건설회사의 대관 (?) 임원으로 취업하셨다.


내 30년 직장경험에 의하면, 과연 나의 부친이 일하셨던 곳이 제대로 된 건설회사일리가 없고, 학벌도, 네트워크도 없으신 분이 대관을 제대로 하셨을 일이 없었을 터.. 그냥 성격이 올곧고 바른말 잘하는 분이니, 이용만 당하다 팽당하셨을 것이다.


있지도 않은 살림은 더 줄어들어 다섯 식구가 단칸방으로 이사했고, 창고를 하나 빌려 주류 도매상을 차렸다. 아마도 그 주류도매상도 빚으로 차렸을 것이다. 그때는 내가 중학생이었으니,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자전거라기 보단 주류와 음료수 박스를 실을 수 있는 큰 짐칸이 있는 바퀴 달린 쇠덩이에 한판에 40병과 20병이 들어 있는 소주 맥주 박스를 두서너 단 실어서 기어도 없이 중학생 다리 힘으로 대로변 찻길을 낑낑거리며 달렸다. 도착해서 멈추면 술병 무게를 감당 못하고 넘어져 주류병들을 깨 먹기 일 수였다. 보다 못해 당시 국민학생이던 둘째 동생은 내가 모는 자전거가 서면 넘어지지 않도록 받쳐주기 위해 내 자전거를 뛰어서 뒤 따라왔다.


수완이 없는 분이 그냥 몸으로 주류 음료를 시장과 가게에 배달하는 일이 얼마나 널 푼수가 있었을까? 그냥 몸만 고달프다 끝났다. 나의 부모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일은 버스 종점에 천막을 짓고 한 식당이었다. 내 고등학교 때 일이다.


부모는 천막 식당에서 먹고 자면서 일했고, 우리 3형제는 버스 두 정거장쯤 떨어진 어느 주택의 단칸방에서 친할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지냈다. 할머니는 또 속이 얼마나 상하셨을까?


소위 세근이 들고, 사회인이 되어서 나의 부모 마음이 그때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배움이 없었어도 시작은 그래도 가내수공업 사장이었을 텐데 흘러 흘러 돌부리 흙바닥 어느 공터 천막 식당에서 동네 목욕탕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서 고깃덩이를 다듬고 있을 때 내 부친의 마음은 어땠을까? 자식이 없었다면 삶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들지 않았을까?


내가 고등학생일 때니, 나의 동생들은 중학교 3학년,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한창 예민하고 모든 것이 불만인 사춘기의 나의 동생들은 부모의 따뜻하고 세밀한 보살핌 같은 호사는 기대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내 동생들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건실하게 성장한 것은 그 자체로 기적일 수도 있는 일이다.


나의 어른들은 본인들의 배움이 짧았던 관계로 자식들의 교육에 관해서 정녕 헌신적이었다. 80년대 시절 부산의 국립대학교는 내 형편상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학교였다. 학교에 입학해서 그냥 평범하게 졸업하고 평범한 직장을 다녀서는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나아지기 힘들겠다는 현타가 오면서 취향과 적성에 상관없이 회계사 시험에 도전했다. 총명하지도 않았고 집중하지도 못했던 터라 회계사 시험 준비기간은 길어졌다.


내 또래가 여느 직장의 대리쯤 할 나이에 천신만고 끝에 회계사를 합격했다. 집안 형편상 부산 부모 곁에서 직장 생활하는 것이 당연했으나 나는 무작정 상경을 감행했다. 그것이 내 인생 처음으로 한 유쾌한 반란이었다... 김동연 씨가 말한 유쾌한 반란...


내가 김동연 씨의 나 자신과의 대화에 감흥을 느낀 이유는 김동연 씨처럼 내 마음의 깊은 곳에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내 인생 10대와 20대의 암흑의 시간, 결핍, 열등감, 분노 같은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해서 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글을 보며 내 감정이 이입됐고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그가 일으킨 새로운 도전을 위한 '있는 자리 흩트리기'라는 단어는 퇴직을 머뭇거리며 있는 자리를 지키고자 했던 나의 끈질긴 미련에 반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이제 결심은 섰다.

다만, '그다음 무엇을 할 것인가'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