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스위스

물가에 울고 풍경에 웃었다

by 서쪽하늘



어젯밤 딸은 초저녁부터 잤고 난 어쩐 일로
생생해서 그림을 그렸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마트에서 먹을 걸 좀 사서 역으로 갔다. 얼마나 비싼 걸까 이젠 알고 싶지 않다. 속 쓰릴까 봐. 모르는 게 약이다.

기차 좌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 자리 맞나? 통유리에 좌석도 너무 편했다. 여행 경비의 5분의 1은 된다는 '골든 패스 익스프레스'란다. 돈 많이 썼구먼.

풍경 봐야지 그림 그릴 시간이 있을까. 딸은 그림을 그리다 구경하다 하겠단다. 딸의 인생 첫 오일파스텔 그림이다.



스위스 풍경은 차원이 다르네. 여기가 바로 '지상 낙원'이다. 높은 산에도 집을 짓고 살다니 대단하다. 자세를 아예 창문 쪽으로 틀어서 앉았다. 내 눈동자가 초록색으로 변할 것 같다. 이쪽을 보면 반대쪽 창문 풍경이 예뻐서 고개를 좌우로 돌려가며 봤다. 특별히 좋은 풍경이 나오면 사람들이 아예 서서 찍었다.



몽트뢰에 도착해서 레만호 쪽으로 내려가서 주변을 걸었다. 아네씨호 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호수를 바라보며 점심을 먹고 걷고 사진을 아주 많이 찍었다. 아는 사람 동상도 만났다. 왜 스위스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반가웠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딸은 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인도사람인 듯한 젊고 예쁘고 조용한 여자가 그린 것 좀 볼 수 있냐고 해서 딸이 보여줬다. 예쁘다며 자기가 그린 그림도 보여줬다. 함께 온 사람들은 가족인 것 같은데 시끌벅적했다.

곧이어 중국사람인 듯한 부부가 등장했고 그들도 시끄러웠다. 어딘가에선 한국사람 참 시끄럽네 하고 있을지도. 여행초반에 목소리 좀 줄일 수 있냐고 지적받았던 나는 정말 조용해야겠구나 다짐했다.



김치볶음밥을 할까 하다 양이 적어서 맛은 안 나고 김치만 다 써버릴 것 같았다.
계란프라이를 해서 저녁을 먹었다.

이제 배추김치랑 볶음김치 장조림이 하나씩 남았다. 햇반하고 사발면 몇 개랑. 아직 많이 남은 건 누룽지와 김이다. 그게 어딘가. 소중한 식량이다. 스위스에서는 가능한 사 먹지 않고 떠나려고 한다. 프랑스 물가는 우리와 비슷하거나 조금 비쌌는데 여기는 많으면 다섯 배까지도 비싸다. 이탈리아는 제발 스위스 같지 않기를.

내일 또 호수를 보러 간다. 이탈리아에서도 계속 물(바다)을 보러 다닌다. 내가 물을 좋아하니 더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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