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리에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니 그림이 너무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매일밤 곯아떨어졌다.
어젯밤엔 시간이 났지만 이야기를 오랫동안 하느라 또 그리지 못했다. 예전 여행 때 무겁게 들고 갔다가 그대로 돌아온 적이 있어서 꼭 그려야겠다. 이번엔 오일파스텔도 모두 가지고 왔다. 프랑스까지. 무겁게. 그러니 그려야 한다.
새벽 6시 30분 눈을 뜨니 딸은 자고 있었다. 기회는 지금. 오일파스텔을 비닐봉지에 마구 넣어왔더니 서로 묻고 난리가 났다. 그림을 80% 그리니 성당의 종이 여덟 번 울렸다. 8시다. 나머진 집에 가서 마무리. (언제? 하긴 할 건가)
아침은 사과 한 알에 누룽지를 먹었다. 누룽지는 부피와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아서 산 걸 다 가져왔는데 잘했네.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아네씨호 벤치에 앉아 빵을 먹고 멍 때렸다. 어제 놓친 풍경이 있으면 구경하며 사진을 계속 찍어댔다. 고흐여행은 너무 좋았지만 뭔가 찾고 느껴야 한다는 부담은 있었던 것 같다. 조금은 숙제를 하고 다닌 느낌이랄까.
이제 진짜 여행 같다. 처음 보는 세상을 즐기면 되는. 오늘도 사진을 찍어준다는 분을 만났다. 저번처럼 중년부부였는데 이번에도 여자분이 찍어줬다.
아네시호는 매우 커서 호수의 한 부분인 세브리에 까지도 버스를 타고 갔다. 시간이 남아서 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묘지를 만났는데 풍경이 엄청났다.
시간이 되어 패들보드 설명을 듣고 내가 먼저 보드에 올라탔는데 무서웠다. 번지점프도 탔는데 물은 무섭다. 바닥이 보이지 않으면 더. 난간도 없는 곳에 서서 노를 젓는다니. 일어나려고 시도해 봤지만 역시 무서웠다. 구명조끼를 입었어도.
덕분에 딸은 혼자 처녀뱃사공이 되어 씩씩하게 한 시간 동안 노를 저었다. 난 주로 보드 앞 쪽에 앉아있었고 하늘 보고 살짝 눕기도 했다. 어차피 제대로 젓지 못하니 푹 쉬라고 딸이 말했다.
"그래 바람 살랑이고 풍경 예쁘고 좋다."
마트에서 새우와 양파를 사서 딸이 새우볶음밥을 해줬다. 재료가 다양하지 않았지만 맛있게 감사히 먹었다. 엄마 해 먹이느라 애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