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가 걷던 길을 따라 걸었다

생레미드프로방스

by 서쪽하늘



딸은 선크림을 많이 바르라고 했다. 남프랑스의 햇볕이 뜨거웠다. 안 그래도 시커먼 얼굴이 더 타게 생겼다. 파리와는 달리 조용한 아를의 새벽을 걸어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시간이 남는다며 정류장 근처의 론강에 한번 더 다녀오라고 했다. 파리에 와선 처음으로 혼자 걸어서 가봤다. 몇 분 되지 않는 거리지만. 고흐가 그림 그릴 때는 없었을 건물과 유람선. 그 시절 모습을 상상해 봤다.



여행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걸까. 어젯밤에도 글 쓰며 졸았다.
"너보다 늦게 자야 하는데. 너 빨리 자라."
딸이 웃으며 말했다.
"아유, 그냥 먼저 자."

눈 떠보니 휴대폰 충전이 15%다. 그때부터 나갈 때까지 충전했는데 40%. 충전기를 들고 나왔다. 다행히 충전가능한 버스였다. 기차에서 봤던 풍경이 버스창밖에 또 보였다. 참 초록초록하다.



사진은 참 중요하다. 사진 찍기보다 느끼라고 하지만 결국 기억은 흐릿해지고 그 기억을 되살리는 데는 '사진'이 가장 좋다.

딸은 내 사진에 목숨 건 것처럼 열심인데 난 잘 찍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딸은 12 계명을 어기는 게 거의 없다. 내가 6번을 안 지킨다.ㅎ 요즘은 내가 더 사진에 열심이다.

사진을 다시 찍어 달라지는 않고 여러 장 찍으라고 하거나 동영상으로 찍으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얻어걸리는 게 있지 않을까 싶은 걸까. 여행 중반에 들어선 시점에
십계명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아점을 먹으러 갔더니 두 군데나 문이 닫혀있었다. 할 수없이 이번엔 영업 중인 좀 비싼 곳으로 갔다. 오전이라 음료만 된단다. 휴. 다시 검색해서 들어갔더니 친절한 분이 맞아줬다. 비록 빵이지만 빵이면 어떤가.

많이들 물어본다. 어디서 왔냐고. 이번에도 물어봐서 south korea라고 딸이 말하자 한국에 관심이 많다며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안녕하세요'를 하길래 내가 '줄리'라고 해주니 어리둥절해하다 웃으며 좋아했다. 줄리는 예쁘다는 프랑스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좀 다른 의미가 있지만.ㅎ

네 번째 집에서 환대받으며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니 뭐가 잘 안 풀린다고 낙담할 것도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고.

식당 찾아 삼만리.



생레미드프로방스는 아를에 비해 사람이 적고 한적했다. 고흐의 흔적을 따라 조용히 걸었다.
바닥에 쓰여 있는 걸 따라가면 된다. 우리가 걸은 길은 '반고흐길' 고흐는 엄청나게 많은 그림을 그려서 내가 못 본 게 많다. 천천히 걸으며 그림과 그림 그린 곳을 찾아봤다. 건물이 지어져서 남아있지 않은 곳이 더 많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가끔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프랑스에 와 있고 고흐의 흔적들을 찾아다닌다는 게. 고흐가 올리브나무를 그린 곳에 사람들이 앉아서 올리브나무를 그리고 있었다. 그 어느 날 고흐처럼. 이곳에 와서 그림 그리는 풍경을 자주 보는데 참 좋다.



내가 좋아하는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그림의 배경지는 거의 남아있었다. 우리 집 거실에 커다란 그림으로 걸려있고 따라 그려도 봤다.



기원전 유적지가 있다고 해서 가봤다. 옛사람들이 살았던 방을 보는데 신기했다.



동네 구경을 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창밖에 시선 고정. 저녁엔 라면에 누룽지를 넣고 어묵티백에도 누룽지를 넣어서 먹었다. 별미네. 내일 '안시'로 가야 해서 짐을 쌌다. 짐 싸는 것도 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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