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묘비는 따뜻했다

오베르쉬르우아즈

by 서쪽하늘



"엄마보다 먼저 자야겠어."

"코 골았어? 많이?"

"어. 잠들었다가 소리 커지면 깨서 엄마 자세 바꿔주고 그랬어."

미안해라. 전날 계단을 많이 올라가서 그랬나.


아침을 빵으로 먹고 잘 살다니 내가 기특하다. 물론 딸은 나를 위해 먹을 곳을 검색해 두었다는데 늦게 열어서 어쩔 수 없이 오늘도 빵으로 먹었다. 파리에선 다 맛있어서 어느 빵집에 가도 된다나. 어제도 크로와상에 감동받더니 오늘도 딸은 크로와상을 먹었다. 먹어보니 살살 녹긴 했다.(저녁에 들어올 때 또 들렀다.)


"엄마 아침부터 밥 먹는 사람 아냐?"

"어 그렇긴 한데 괜찮아." (십계명)

"파리는 거의 고흐투어인데 괜찮아?"

"그게 고흐를 좋아하긴 하는데 그 정도로 계획할 줄은 몰랐지. 엄마가 개선문이나 루브르박물관 같은 곳을 좋아하지는 않으니. 우리 계획도 북적이지 않은 동네나 시골길 걷기였고. 너는 괜찮아?"

"난 또 올 거야. 이건 엄마 위한 여행이지."



숙소에서 나오는데 쌀쌀했다. 곧 해가 쨍 나고 더울 거야 무시하고 기차를 탔다. 어느 순간 하늘이 구름으로 가득 차고 해는 찾을 수 없었다. 나무가 흔들리는 게 바람도 세졌다. 전날 더웠기에 둘 다 겉옷을 챙기지 않았다.


딸은 빠르게 판단해서 환승할 곳에서 내리자고 했다. 가는 데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추웠다. 언덕을 한참 올라가서 빈티지 매장에서 옷을 샀다. 어쩌다 깔 맞춤이 되어 커플룩처럼 보였다.



이번엔 버스로 이동해서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으며 고흐 볼 생각에 설렜다.



드디어 도착. 여기도 고흐 저기도 고흐 행복해라.



나도 그려본 오베르의 교회를 보다니.



묘비 사이를 오가며 찾아다녔다. 고흐 묘비에 오는데 '빈손'으로 왔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묻혀있는 고흐와 동생 테오의 묘지는 특별한 게 없 소박했다. 묘비를 손으로 쓸어주는데 따뜻했다.



'까마귀 나는 밀밭' 그림 속 장소에 정말 까마귀가 있었다. 까마귀 조상도 당시에 있었겠지. 이 나무들도. 이곳에도 단체로 온 아이들이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꽃향기 가득하고 조용한 아름다운 곳이어서 자연을 사랑한 고흐의 마지막이 그래도 행복했겠구나 위로받았구나 다행스러웠다.



고흐에게 도움을 많이 준 '닥터 가셰'의 집에 들어가는 데 6천 원 정도가 들었다. 풍경 속 나무와 지붕들이 너무 예뻐서 아깝지 않았다.



우체통까지 색칠을 하고 집집마다 꽃들이 만발했다. 라부여인숙은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다. 영어 해설 속에 단어들만 들리고 대부분 못 알아들었다. depression. melancholy. 영화도 보여줬는데 음악까지 좋아서 좋았다.

끝나고 작게 박수를 쳤다.



기념품샵에 다녀간 사람들 기록이 있었다. 딸이 쓰라고 해서 뭐라고 써야 하나 망설이다 간단히 썼다. 딸은 그림을 그렸다.



다시 파리로 돌아오니 차냄새 담배냄새 바닥엔 꽁초들 시끌시끌. 한국마트에서 식혜 새우튀김김밥 레쓰비 삼각김밥 컵라면을 사고 기념품샵에 갔다가 들어왔다. 누가 시차를 물어보면 이렇게 말해지.

"시차가 뭐야?"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 아를로 이동이라 저녁을 먹고 짐을 쌌다. 딸이 이불 속에 들어가더니 서둘러 눈을 감았다. 난 잠을 참아야 한다. 딸보다는 늦게 자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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