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시간 45분 비행 성공
2025년 5월 13일
출국 날짜가 다가오자 설렘보다 불안했다. 몇 시간의 비행에도 뒷 목이 뻐근한데 잘 버틸까. 정성 갸륵한 딸의 스케줄을 보며 이런 생각이나 하다니. '돗자리 펴고 쉬기' 항목이 반갑다니 걱정이구만.
생각해 보니 앞으로 살면서 이렇게 긴 시간 딸과 함께 있을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럼 우리 아주 행복해야지.
이틀 전 짐을 챙기는데 여권이 보이지 않았다. 두 시간은 찾아 헤맨 것 같다. 항상 보이는 곳에 있었는데 아무리 뒤져도 없었다. 마지막 여행 때 뭘 입었지 옷 주머니까지 뒤지다 급기야 임시여권 만드는 법을 검색했다. 아 복잡해.
다시 한번 차분하게 찾아보자.
어? 보석함. 언니네 집에 빈 보석함이 있길래 가져왔고 중요한 걸 넣어놨던 것 같다. 열어보니 있었다. 여권을 찾게만 해달라고 빌었다. 여권만 찾으면 뭐든 하겠다고. 매번 위기 때마다 등장하는 얍샵한 바람.
오타와에서 출발한 딸은 7시간 걸린다. 먼저 도착해서 일하며 나를 기다린다고 했다. 나도 새벽 5시에 출발.
체크인(짐 부치기) 환전까지는 살짝 왔다 갔다 했지만 순조로웠다. 아들을 보내고 평소 지문인증이 잘 안 돼서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 2층으로 갔다. 7시에 시작한다며 (당시 6시 45분) 안에도 있다고 들어가서 하라고 했다. (그냥 할 걸 가서 물어보니 2층 한 곳 밖에 없다나. 서로 말이 다름.)
스마트패스전용이 바닥에 쓰여있었다. 맞아 이런 게 있었지. 미리 해둘걸. 이제라도 하려고 앱을 까는데 돈이 나가는 건가? 아 몰라 몰라 그냥 일반줄에 서있었다. 너무 느렸다.
몇 번의 과정을 겪으며 탑승시간 8시가 다가오자 목은 타고 가슴은 두근두근. 이 큰 공항에 오직 나만이 얼굴이 벌게서 초조했다. 2시간 여유 두고 온 나, 해외여행은 3시간 전에 와야 했다.
역시 한 번에 통과되지 않은 지문을 해결하고 후다닥 나와서 뛰었다. 일단 탔으니 파리엔 갈 테고 내려서 헤매는 건 그때 걱정하자. 내리면 일단 나의 든든한 딸이 기다리고 있으니.
딸이 한국승무원일 거라고 했는데 죄다 프랑스인이었다. 목은 마른데 물은 언제 주는 거야. 준비했다가 보여주고 콜라를 겨우 마셨다.
영화는 한국어 자막이 거의 없고 더빙이었다. 더빙은 들어줄 수가 없네. 예전엔 다 더빙으로 봤는데.
치킨 or 파스타 하고 다니길래 밥이나 샌드위치는 없냐고 쓰고 있는데 딱 보니 둘 중 하나다. 파스타로 낙찰. 나쁘지 않았다. 잘하면 유럽음식 잘 버틸 수도? 아직 한참 멀었구먼 또 속단한다.
다들 과자를 갖다 먹었다. 나도 먹고 싶어서 옆 사람에게 물어보니 뒤에 있다나. 가서 하나씩 가져와서 딸하고 먹으려고 했는데 먹다 보니 다 먹었다. 내리기 전에 또 한 번 간식을 줬다. 이건 숙소로 가져와서 같이 먹었다.
승무원들 머무는 곳 근처에 작은 창문이 있는 환한 여유 공간이 있었다. 다들 거기 서서 스트레칭도 하고 쉬었다. 나도 그때부턴 왔다 갔다 했다. 매우 천천히 시간이 흘러갔지만 조금씩 파리로 가고 있었다.
졸다가 책 읽다가 모니터 속 지도 보다가 멀리 창밖을 쳐다봤다. 무조건 창가를 외쳤었는데 큰일 날 뻔. 복도 쪽 좌석이라 그나마 다리도 뻗어보고 스트레칭을 해가며 버텼다. 다행히 비행시간 반을 넘어서며 지끈거리던 머리가 괜찮아졌다.
드디어 착륙. 딸이 사람들만 따라가면 된다고 해서 부지런히 갔는데 앞사람들이 어느 순간 흩어졌다. 어디로 가야 하지. 대충 가보니 양쪽에 전철이 있었다. 직원에게 물었다. "check out, Where?" 전철 타면 된다고 하는데 뒤에서 한국모녀가 전철 타는 거네 했다. 입국심사 용 예상질문을 A4 세장이나 뽑았는데
바뀌었다더니,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권에 도장 꾹 찍더니 보내줬다. 짐이 늦게 나와서 사라진 걸까 마지막으로 떨었다.
나가니 딸이 내 모습을 영상으로 찍으며 맞아주었다. 영상 속 내 얼굴은 벌겠다. 만났으니 이제 됐다.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서 숙소로 갔다. 약간 헤매기는 했지만 파리에 와 본 듯 뭐든 척척해내는 딸이 신기했다. 하지만 난 보자마자 잔소리를 하며 십계명을 어길 뻔. 조심!
숙소에 도착해서도 십계명을 어길 뻔했지만 잘 참았다. 싸 온 햇반과 반찬은 물가 비싼 스위스에서 먹어야 한다 해서 근처에서 누들을 먹었다.
작은 공원을 산책하고 골목을 걷다 왔다. 9시가 넘었는데도 환해서 깜짝 놀랐다. 백야는 아닐 텐데.
노천카페가 많았고 다양한 인종이 있었다. 파리 무서웠는데 아직까지는 자유분방하게 사는 모습에고 개성 있고 친절했다.
딸과의 수다가 더 그리웠는지도. 딸은 공감을 참 잘해주고 언제나 내 편이다. 힘들겠네 밀린 내 수다 날마다 들어주려면. 요즘 바빴던 딸도 좀 쉬었으면 좋겠다. 오늘 피곤했으니 수다 떨다 일찍 자기로 했다. 잠이 올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