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제베 창밖 풍경이 예뻤다

카페테라스, 원형경기장, 론강

by 서쪽하늘


"엄마 내 머리 좀 땋아 줄래?"
손재주가 없고 심하게 안 꾸미는 난, 딸이 어릴 적 머리스타일과 옷차림을 예쁘고 못해준 게 마음에 남아있다. 어설프게 땋아주고 나니 자꾸 딸의 머리를 쳐다보게 됐다. 얼마 안 가 머리카락이 삐져나왔다.

생라자르역에서 출발해서 기차로 갈아타고 한 번 더 갈아타면 아를이다. 가방을 밀고 가는데 젊은 남자가 먼저 지나가라고 친절하게 손짓했다. 또 한 사람은 무거운 내 가방을 계단 위로 들어줬다. 프랑스 무섭게만 생각했는데 (소매치기, 인종차별) 선입견이 깨졌다. 물론 뭔가 겪었다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아직까지는 아니다.

여권이 안 보여서 기차역에 가방을 펼쳐놓고 뒤져서 찾았다. 딸이 말했다.
"엄마 여권은 엄마 가방에 넣고 다녀."
"어 그럴게."
자꾸 파리에 대해 물어보게 된다. 마치 딸이 파리에 사는 사람이라도 되듯.
"엄마 나도 파리 처음이라고~~"
그렇지. 근데 가는 날까지 계속 이럴 거 같은 데 어쩌냐. 딸도 물어 물어 기차역에 도착했고 기다리며 대합실에서 아침으로 전날 산 빵을 먹었다.

기차역에서 처음 1유로(1559원)를 내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 프랑스 초고속열차 TGV(테제베)를 탔다. 그것도 이층에.



기차 창밖의 초록과 연두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고흐 그림 같은 그린카펫. 비현실적 풍경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기차 안의 (무료) 화장실에 다녀온 딸이 주스와 커피를 사가지고 왔다. 초콜릿 하나는 그냥 줬단다. 4시간이나 걸리니 책을 읽을까. 꺼내봤지만 창밖풍경 때문에 한 장이나 읽었으려나. 딸은 지인들에게만 공개하는 유튜브에 올릴 여행영상을 벌써 만들고 있었다.



아를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가져온 걸로 진수성찬을 차려 먹었다. 딸은 씻더니 또 머리를 땋아달라고 했다.
"계속하다 보면 가는 날 쯤엔 잘하겠지?" 가이드가 고흐 그림 속 카페 밖에서 여행자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쉽네. 저기 앉아서 커피 한 잔 했어야 하는데. 노란 집도 없어졌다고 해서 가지 않았다. 고흐가 입원했던 정신병원은 지금은 문화센터로 바뀌어있었다. 너무 아름다워 고흐가 좋아했을 것 같다. 뜻밖에 거기서 아는 얼굴을 (그림으로) 만났다. 봉준호감독. 자랑스러워라.



아를 시청과 성당에 가봤다. 광장엔 분수가 있는데 새들을 위한 자리도 따로 있었다. 지나다가 모자를 하나씩 샀다. 잘 어울려서
우리는 갑자기 신났다.



원형경기장 입장료는 16,500원이었지만 아깝지 않았다. 웃통 벗은 남자가 밖에서 방패를 들고 다녀서 뭐지 했는데, 정말 경기장 안에서 싸움을 했다. 제대로야 안 했겠지만, 날도 더운데 고생하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론강의 별이 빚 나는 밤> 속 풍경으로 갔다. 딸에게 말했다.
"고흐가 어디쯤에서 그림을 그렸을까. 이 길도 밟았을까."
숙소로 가려는데 자꾸 뒤돌아 봤다. 눈에 많이 담고 싶었다. 딸이 말했다.
"엄마 내일 와서 또 걷자."



저녁엔 너구리 두 개를 끓이고 햇반 하나를 덥혀서 먹었다. 음 김치냄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