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코리안 유교걸이었다.
단정한 옷 무채색옷 평범한 옷차림을 추구했고,
조금이라도 노출 있는 옷을 입으면 부끄럽고 시선이 집중되는 거 같은 느낌을
견디기 힘들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나와 비슷한 여성들을 '코리안 유교걸'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어떤 사회적 현상에 대해 명칭이 생기면 '내가 독특한 게 아니구나'라는 일종의 안도감을 얻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다고 해서 주관적인 불편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일상을 지내다가 불편한 감정과 생각이 불쑥- 올라온다는 것은
무의식에 해결되지 않은 어떤 감정과 경험이 알아달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다.
그 감정은 무의식 저편에서 꾸준히 신호를 보내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가 신경 쓰이지?', '나는 이상하게 아닌 걸 알면서도 ~가 하기 힘들어'라는 마음이 들고
이유를 찾기 어렵다면 무의식에 어떤 트리거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코리안 유교걸'이었던 내가 헬스장에서 자유롭게 레깅스를 입을 수 있기까지
무의식을 탐구하고 감정을 해소한 과정을 써 내려가보려 한다.
나는 무의식에 숨겨진 “여성성을 수치주는 마음” 관련된 트리거를 헬스장에서 발견했다.
운동을 꽤나 좋아해서 헬스를 2년 넘게 하는 중이다.
하지만 헬스장에 갈 때마다 묘하게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마음이 올라왔는데
'몸매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처음엔 헬스장에서 제공하는 체육복을 입었다.
하지만 기구 운동을 하면서 근육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고,
하다 보니 욕심도 생겨서 레깅스를 구입하게 됐다.
그런데 막상 사놓고 입지를 못했다.
왠지 모르게 벌거벗고 세상에 나가는 느낌, 사람들이 전부 내 몸을 보고 평가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레깅스만 입고 탈의실 밖을 나가지 못하고 망설이던 사이에 다른 여성분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레깅스와 짧고 붙는 상의를 입고 운동을 하러 나갔다.
'뭐가 문제야? 저 사람들도 더 붙고 얇은 옷을 입고 그냥 가잖아! 아무도 너 안 쳐다봐 왜 그래 대체?'
용기 없고 이해 안 되는 내 모습을 스스로 공격했다.
자괴감이 몰려왔다. '이게 뭐라고..'
무의식 대면의 포인트는 일상에서 올라오는 불편한 마음(생각, 감정)은
그 자리에 상처가 고여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일상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마음은 무의식의 아이가 알아달라는 신호이자 감정 해소의 힌트가 된다.
예전의 나였으면 그냥 바지로 갈아입고 나갔겠지만
무의식 탐구를 하면서 이 상황이 내가 마주해야 할 감정이 주는 신호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 그냥 나가서 내가 마주해야 할 감정들을 찾아보자. 올라오면 그냥 느끼자!'
근데 밖으로 나가자 막상 사람들은 놀라울 만큼 내 몸에 관심이 별로 없어 보였다.
나 혼자 움츠려 들고. 특히 하체 운동을 할 때 옆에 남자분들이 거울로 내 몸에 대해 평가하고 훑어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은 유독 뚝딱거리며 운동을 했다.
신기한 건 옆에 여자분은 엄청 자연스럽게 살이 드러나도 본인의 동작에만 집중해서 운동하고 계신 것이었다.
순간 깨달았다.
'내가 내 몸을 수치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타인에게 투사시켜서 수치와 두려움을
회피하려고 “유교걸”인척 하고 다녔구나'
집으로 돌아와서 감정 해소를 시작했다.
종이에 글로 가감 없이 써 내려가며
헬스장에서 레깅스를 입어 불편했던 감정에 대해 스스로 대화를 시도했다.
'네가 레깅스를 입고 운동하고 있으면 어떤 마음이 올라와?'
ㅣ
사람들이 내 몸을 쳐다볼 거 같아.
ㅣ
그게 왜?
ㅣ
평가받는 건 두렵잖아. 특히 남들이 내 몸을 쳐다볼 때 너무 불편하고 긴장돼.
ㅣ
그렇구나.
남들이 네 몸을 쳐다볼 때 뭐 때문에 불편하고 긴장되는 거 같아?
ㅣ
몰라. 그냥 기분이 쎼하게 나쁘고 수치심이 느껴져.
아닌 거 아는데도 그런 느낌이 들어.
ㅣ
남들이 네 몸을 쳐다보는 거 그게 왜?
ㅣ
아니, 남의 몸을 쳐다보는 건 잘못된 거잖아. 기분 나쁜 건 당연한 거 아니야?
ㅣ
사회 통념적으로 그렇지, 근데 누군가는 또 그걸 즐기거나 아무렇지 않아하기도 하잖아.
넌 그거 때문에 유독 많은 감정이 올라오고 있잖아.
그리고 세상에 당연한 건 없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너의 깊은 마음에 다가갈 수 없어
잘 생각해 보자. 관련된 어릴 적 중 어떤 기억이 떠올라?
ㅣ
음.. 엄마가 생각나. 엄마가 어릴 때 파인 옷이나 공주 같은 예쁜 곳,
신체가 드러나는 옷에 관심을 가지면
'이런 거 입지 마. 사면 갖다 버릴 거야.'라고 했던던거 같아
(이때 아픈 마음이 올라왔다)
그리고 내가 어깨가 파인 옷이 유행이었을 때 사고 싶다고 했더니
'이런 거 입을 거면 입고 집에 오지 마'라고 했어
(이때 수치심과 두려움이 느껴졌다)
몸매를 드러내는 것
= 사랑받고 싶은 엄마의 생각에 반대로 행동하는 일
=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할 거 같은 두려움
= 내가 입고 싶은 예쁘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에 대한 욕구를 무의식 중에 억압함
= 욕구가 올라올 때마다 수치줌('이 옷은 너무 과해서 나랑 안 어울려', '이런 건 나랑 안 어울려')
= 날 '유교걸'이라고 합리화하며 욕구와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무의식 중에 억누름
ㅣ
당시 '나'에게 빙의된다 생각하고
느껴지는 그 당시 감정을 적어 내려갔다.
올라오는 슬픔, 수치심, 두려움을 느끼면서
한 호흡 쉬는데
문득,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빠는 내 옷차림에 대해 수치 주거나
뭐라고 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왜 아빠가 떠올랐는지 의문이었다.
헬스장에서 유독 '남자'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이는 어릴 적 태초의 '이성'인 아빠와의 관계에서 어떤 힌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빠가 '옷차림'으로 날 구박하거나 수치준 적은 없었기에 탐색이 약간 까다로웠다.
앉아서 조용히 '아빠한테서 어떤 마음이 느껴져?'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다.
ㅣ
미워. 그냥 모르겠는데 미운 마음이 올라와.
(이때, '아빠 미워!'라고 입 밖으로 내뱉어보았다.
그랬더니 아빠에 대한 다양한 기억이 떠오르며
정말 만 가지 감정이 올라와서 힘들었다. 이 부분은 스토리가 길어질 거 같아 여기선 짧게 쓰고자 한다)
ㅣ
어떤 상황이 기억나?
ㅣ
(아빠와의 기억 중 현재 주제와 관련된 기억을 떠올려 봄)
내가 항상 놀아달라고 가서 칭얼대면 피곤한 모습을 하면서 '저리 좀 가서 놀아!'라고 했어.
= 아빠에게 '사랑받고 싶음을 표현했는데 거절당함'
= '아빠에게 사랑을 달라고 하면 수치당하는구나'라는 무의식적 관념이 형성
주말엔 자주 놀아주셨던 거 같은데, 맨날 밤에 늦게 들어오셨던 기억이 나.
= 내가 필요할 때, 곁에 없었던 기억
아빠 본인이 기분 좋을 때는 나한테 관심을 주다가,
기분이 나쁘면 돌변해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어.
= 아빠를 언제든 나를 갑자기 두렵게 할 수 있는 존재로 인식
아빠와의 관계 및 기억, 감정 등은
커가면서 이성 관계, 남자들과의 관계(또래, 직장 동료 등)에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끼친다.
나의 경우, 헬스장에서 남자들의 시선이 불편해던 이유는
아빠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수치심
사랑받으려고 떼쓰면 버려질 거 같은 두려움을 남자들에게 투사했던 것이다.
즉, 레깅스를 입는 것
= 몸매를 드러내는 것
= 여성성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
= 남자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마음의 표현을 '레깅스를 입는 행위' 투사
= 아빠(남자)한테 사랑받으려는 노력
(어릴 때는 아빠한테 놀아 달라고 하는 것 -> 어른이 된 후 아빠한테 놀아달라고 할 수 없으니, 이 장면에서는 ‘레깅스를 입는 행위’) 하면 버려질 거 같은 아픔, 두려움과 연결
= 딸(여자)로서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스스로 상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 마음을 수치 주고 감춤
ex)'유교걸'이라서 레깅스 입는 게 부담스럽고, 파인 옷을 입는 게 어렵다며 합리화함
= 레깅스를 입으면 어릴 적 아빠의 사랑이 필요했던 나의 아픔이 느껴질 거 같아 아픔을 느끼지 않으려 억누름
(스스로 '나의 여성성에 대해 수치'를 줌)
= 억누른 마음은 현실에서 힌트를 주기에,
레깅스를 입은 나를 보는 남자들의 시선에서 아빠와의 기억에 관련된 아픔을 보라고 계속 신호를 줌
(사실, 그들은 쳐다보지 않거나 나에게 관심이 없을 수도 있는데 나 혼자 쳐다본다고 생각하며 투사함)
이렇듯 무의식 감정 해소 작업은 마치 고구마 캐기와도 같다.
하나인줄 알았던 기억에 여러 가지 아픈 기억, 감정이 줄줄이
올라오니까. 하지만 할수록 일상에서 나를 불편하게 했던 도저히 모르겠던 문제들의
뿌리를 인식하게 되면서 그만큼 자유로워지기도 한다.
여기서 남자=아빠로 투사하는 게 비약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태초에 맺게 되는 모든 관계는
가족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성과 관련된 문제라면 아빠와의 기억에서
동성과 관련된 문제라면 엄마와의 기억에서
힌트를 찾으면 쉽다.
덧붙여,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헉 뭐야 저건 좀 아니지'라며 평가하기도 했는데
그 마음의 이면에는 부러움, 질투가 숨겨져 있었다.
나는 마음껏 사랑해 달라고 요구하지 못하는데
저들은 세상에 사랑과 여성성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다니는 거 같아 괜히 짜증이 났던 것이다.
(노출이 있는 옷을 입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사회적 관념의 영향도 받았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어릴 적 기억이 나서 울기도 하고, 화가 나서 종이에 욕을 적어서 찢어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엄마, 아빠도 (외) 할아버지, (외) 할머니한테 더 큰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겠단 생각에 아픔도 느끼고
그러다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라는 마음이 올라왔다.
언제든 다시 미워질 수도 있지만, 그 또한 마음이니 수용하려 한다.
부모-자식 관계가 대부분 그런 거 아닐까? 애증의 관계이니 말이다
용기를 내서 레깅스를 입고 헬스장 탈의실 밖을 나갔다.
근데 신기하리만큼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음을 이제는 머리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되었다.
감정해소 전에는
억지로 합리화하며 '야 아무도 너한테 관심 없어 왜 그래' 였다면
이제 그냥 같은 상황에서 생각이나 마음이 올라오지 않는다.
마음이 올라오는 공간이 텅- 빈 느낌이다.
빈 공간 속에서 자유로움을 경험한다.
그리고 어쩌다가 남들이 내 몸을 보는 시선이 느껴져도
'아 - 쳐다보네'라는 인식만 되지
전처럼 '기분 나빠 뭐야, 내 몸이 이상한가?'라는
마음이 올라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운동 자체에 집중이 잘되고 재밌어졌다.
이렇게 나는 헬스장에서 레깅스를 입을 때 느껴지는 불편함이라는 현실의 힌트로
나의 성관념, 여성성을 수치주는 마음을 알아차렸고
무의식 한 겹을 벗겨냈고 그만큼의 내적 자유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