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대신 '뜨아', 그리고 이제는 밍밍한 허브티

아, 언제쯤 이 심심한 맛이 익숙해질까?

by 달빛모아

30여 년을 뜨거운 커피를 즐겨 마셨다.

그런데 요즘 내 손에는 허브티가 들려 있다.


30년 가까이 오로지 '뜨아(따뜻한 아메리카노)'만 고집해 온 내게, 요즘 마시는 허브차들은 하나같이 밍밍하기 짝이 없다.


​사실 차를 전혀 안 마신 건 아니다.

한창 일할 때 하루에 네다섯 잔씩 커피를 들이붓다 보니 몸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오던 시기가 있었다.


20대 중반에는 제법 정갈한 분위기에 취해 다도를 배우기도 하고 잎차를 정성껏 우려내기도 했다.


하지만 카페인이 주는 그 짜릿한 힘은 너무나 강력했다.

결국 내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하게 기댈 곳은 다시 커피였다.


​젊은 날, 카페에서 주문을 하는 건 때로 작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모두가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외칠 때 혼자 "저는 따뜻한 걸로요"라고 말하는 것조차 왠지 시선을 받는 듯해 불편했으니까.


커피가 아닌 다른 차를 주문하면 꼭 이런 질문들이 따라붙었다.

​"왜, 속이 안 좋아? 어디 아프니?"

"어머, 어젯밤에 잠 못 잤구나?"

​그 관심이 고맙기보다 그냥 좀 피곤했다.


"저는 원래 잎차가 좋아요"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지만, 사실 잎차는 내게 어쩔 수 없는 차선택이었다.


카페인에 민감하다고 고백하면 "예민하구나"라는 말이 돌아오곤 했으니까.


​그런데 중년이 되어 좋은 점이 딱 하나 생겼다. 이제 커피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그래. 나도 요즘은 '커피 금지령'이 내려질 정도야."

"커피 정말 간절한데, 마시면 밤을 꼴딱 새우잖아. 우리 나이 땐 잠이 보약이지."


​건강이 최고라며 맞장구쳐주는 친구들이 곁에 있어 마음이 참 편하다. 물론, 카페인 프리 음료가 오리지널 커피만큼 맛있지는 않다.


집에서 마시는 꽃잎차는

찻잔에서 꽃이 피어나는 광경을 볼 수 있어

그나마 위로를 받는 느낌인데 대부분의 커피숍 잎차는 티백에 싸여있으니 따뜻한 물과 함께 피어오르는 꽃도 잎도 볼 수 없어 아쉬움이 있다.


요즘은 디카페인 커피도 잘 나온다지만, 내 고집일까.

마실 거면 제대로 된 한 잔을 마시고 싶지, 흉내만 낸 건 왠지 김 빠진 맥주처럼 느껴져 손이 잘 안 간다.

​그래서 오늘도 주문대 앞에서 짧은 고민에 빠진다.


'오늘 컨디션 정도면 커피 한 잔 괜찮지 않을까?'

​결국은 또 밍밍한 허브티를 손에 쥐지만 말이다.


아, 언제쯤 이 심심한 맛이 익숙해질까? 그래도 이 밍밍함 덕분에 오늘 밤은 편히 잠들 수 있겠지.


언젠가는 찻잔 속에서 꽃이 피어나는 카페를 찾아가 봐야겠다.









글벗님들, 오늘도 함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롯이 나를 챙길 수 있는 틈을 만드시길,
평온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