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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May 20. 2023

음악, 사랑 그리고 너

lala



  참 재밌지. 음악은 그 시간에 아름다운 경치를 집어넣고 내 삶에 사운드 트랙을 만들어 완벽하게 하잖아. 관능적인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일은 그 어떤 알코올도 필요 없어. 내 속의 시인이 만년필을 꺼냈어. 텅 빈 깡통으로 돌아가도 나, 너 그리고 시인 셋만 있으면 어디로 향하던 행복에 가까워져. 음식점 알바로 생계를 버틸 때의 기억, 밤을 꼬박 새우며 나의 가치를 높이려 안달이 났을 때의 기억, 그런 건 모두 부숴버리자. 그리고 그 조각들을 모아 혜성처럼 지나가는 밝은 기억으로 만들자. 그저 우리는 내 삶 위에 사운드 트랙을 얹은 레코드 판을 돌리며 천천히 플로우를 타자. 그럼 창문 밖에서 밝은 혜성이 지나갈 거야.


  꿈을 꾸었다. 어렴풋이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는 꿈이 아닌 듯 생생하게 내가 살아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서울의 골목이라면 한 번 즈음은 스멀거리며 올라올 담배냄새도 나지 않았고, 길거리에 발가벗은 여성의 몸이 새겨진 명함도 한 장 떨어지지 않았다. 내 눈앞에는 편백나무를 깎아 만든 듯한 턴 테이블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서재에 레코드 판이 한 장도 없었기에 무작정 가게에 들어가 아무거나 잡히는 걸로 하나 샀다. 포장을 뜯으며 lp를 올려둘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 듯했다. 그런데 턴 테이블이 놓여 있던 곳에 다시 와보니 턴 테이블은 온데간데없고 뿌연 먼지만이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무릎을 굽혀 검지와 약지를 모아 먼지를 한 번 훑었을 때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게 가장 돈을 벌기엔 딱이라니까? 고집 좀 부리지 마. 언제까지 이 따위로 살 건데.”

  실장이 언성을 높였음에도 나는 꿋꿋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요즘 그런 음악을 누가 듣는다고. 정신 좀 차려. 이번에 너한테 의뢰한 그룹은 당장 음원 차트 실시간 순위에서도 볼 수 있는 그룹이라고. 수록곡이 되더라도 돈은 짭짤하게 들어올 거라고.”

  “아이돌 음악은 싫습니다. 아이돌이 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싫고요. “

  그는 머리를 헝클어뜨리더니 문을 세게 닫고 나갔다. 그가 나가고 나서야 다시 프로듀싱에 집중할 수 있었다. 녹음했던 비트에 맞춰 적적한 멜로디를 위에 입혔다. 4736251…… 4736251…… 키를 하나 좀 낮춰 다시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다. 키를 낮추니 조금은 두 음이 조화를 이루었다. 녹음 버튼을 누르려는데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갑자기 손이 멈추었다. 요즘 그런 음악을 누가 듣느냐니…… 한동안 멍하니 F# 건반을 바라보다 녹음 버튼을 눌렀다. 방금 떠오른 대로 건반을 두드려댔다. 삑사리가 났다. 취소 버튼을 누르고 다시 재생. 또다시 삑사리. 일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실수가 연신 이어졌다. 잠깐 건반에서 손을 떼고 의자에 몸을 눕히니 절로 한숨이 나와버렸다. 씨발…… 그리고 옆에 두었던 코로나 병맥주를 따 벌컥벌컥 입 안으로 들이부었다. 고작 맥주의 알코올 도수로는 얼굴을 붉게 만들기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분노에 모든 것들이 삑사리가 날 것 같았다.


  “요즘 그런 음악을 누가 들어…… 자기야. 자기 결혼하고 싶다며.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잖아. 그러니까…… 제발 그 똥고집, 이제 그만 내려놓자.”

  고집을 내려놓으란 말은 내게 죽으라는 말과 같이 해석되었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가로젓고 싶었지만 장미와 가시가 그려진 목까지 떨어진 눈물에 차마 목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은색빛 아침부터 시작된 그녀의 눈물은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 때까지 멈추질 않았다. 아마 우리 둘 다 오늘이 지나면 그 눈물조차 보지 못한다는 걸 직감했던 걸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우리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던 것이었다. 안녕이란 두 글자가 이렇게 잔인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등을 돌린 게 한쪽이 아닌 둘이 함께 등을 돌리자고 약속을 한 거니까.

  그러니까 더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이것 때문에 그녀를 포기했으니 더더욱…… 내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떤 장애물이 내 앞을 가로막아도… 난 나아가야만 했다. 그것이 그녀와 한 암묵적인 약속이니까.


SNS는 아무리 불행한 인생이라도 행복한 척 편집한 삶의 일부를 드러낸다. 그런데 액정 위로 떠오르는 그녀의 모습은 이토록 진실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새하얀 치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그녀, 그 치아의 색보다 더 눈부신 그녀의 웨딩드레스. 그 옆에는 내가 아니었다. 내 손에는 청첩장은커녕 모바일 청첩장 하나 오지 않았다. 나는 축하해,라고 작게나마 중얼거리며 애써 쿨한 척을 해냈다. 그러나 의지와 달리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내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녀의 말대로 내 고집을 내려놓고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녀의 옆엔 턱시도를 입은 저 남자가 아닌 내가 서 있었겠지. 서로를 마주 보며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 보이겠지. 그때처럼.

  스마트폰을 더 세게 쥐어 잡았다. 내가 작사가였다면 더 아름다운 가사를 뽑아냈을 것 같았다. 요즘 노래는 이별이 유행이라니까. 그런데 이별이 유행을 탈 순 없잖아. 그렇다고 사랑 또한 유행이 아니니 어떻게 보면 그 둘의 균형은 완벽한 수평을 이룰 수도 있겠네.


  차가웠다. 얼음장 같은 새벽의 공기 위로 흩날리는 담배연기는 뭉게뭉게 피어오르다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플로우를 타는 건 그저 직업병이었다. 직업병에서 시작된 습관…… 그저 습관. 그 위로 보이는 너의 얼굴은 쥐려고 손을 뻗어도 사라져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잡히지도, 뭉쳐지지도 않는 이 연기는 약속했던 조각처럼 모을 수 없었다. 조각조각 모아서 간직할 수 없으니까 그저 사라져 없어질 것들이니까 더 아름다웠다. 우리가 우리였던 날의 눈부심은 결국 눈을 질끈 감아 찰나의 순간으로 느껴진 것이었다.

  ‘마지막 기회야. 정말 이번 걸그룹 노래 프로듀싱 안 할 거야? ‘

  그의 문자를 빤히 바라보자니 아른거리던 그녀의 얼굴이 조금은 희미해진 듯했다. 그러나 그 암묵적인 약속은 희미하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나는 담배를 한 개비 더 꺼내 불을 붙였던 꽁초로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안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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