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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May 22. 2023

돌리-1



  “너는 누구야? ”

  그 말을 듣자마자 하던 행동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그 눈동자는 마치 범죄를 저지르다 걸린 듯한 죄책감을 욱여넣었다. 스마트폰에선 진동이 연신 울렸다. 친구의 메시지가 잇따라 왔지만 차마 답장을 보낼 수 없었다.

  “네가 왜 거기 누워있어? ”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다. 억울한 눈빛도, 질투의 눈빛도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게 되는 그녀는 나였으니까.


  정신을 차렸을 땐, 그냥 단순한 오류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다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오류가 나기엔 그녀는 안드로이드가 아니었다. AS도, 불량 신고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녀를 피해 밖으로 나오는 것 말고는 없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주머니를 더듬었지만 담배를 가지고 나온다는 걸 잊고 나왔다. 결국 근처 편의점을 들려 담배 한 갑을 샀다.

  “괜찮으세요? 땀을 많이 흘리고 계시는데……”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내게 담배를 건네며 말했다. 헝클어진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고개를 드니 그는 무언가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기 카드.”  

  카드를 받는 그의 손에서 묘한 축축함이 느껴졌다. 동시에 나까지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인기척에 곧장 고개를 돌리자니 뻣뻣해진 목이 차마 돌아가질 않았다. 결국 편의점 천장에 걸린 양심거울을 향해 천천히 시선을 돌려보았다. 새햐안 티셔츠에 검은 운동복. 고개를 아래로 내려도 새하얀 티셔츠에 검은 운동복. 아직도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 그녀는 내 근처에 서 있다. 그녀는 투명한 창 너머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 몇 초간 정적이 일었지만 머지않아 그녀가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었다. 나와 아르바이트생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골목길 구석에 쪼그려 앉아 라이터를 켜 불을 붙였다. 한숨을 내뱉을 때마다 적나라하게 피어오르는 연기는 허공을 두둥실 떠다니다 홀연히 사라졌다. 타들어가는 담배 소리를 들으며 그 광경을 보자니 놀랐던 가슴이 조금은 진정이 된 듯했다. 고개를 들어 파란 지붕의 집 담벼락을 보는데 그 위를 지나가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하얀 빛깔 위에 꼬질꼬질 떼가 탄 털에 숨겨진 몸은 살이 찐 건지 퉁퉁 부어있었다. 그 뒤로는 똑같이 생긴 고양이가 앞에 고양이를 따라 담벼락 위를 걷고 있었다. 눈을 마주친 앞장선 고양이는 움직임을 멈추고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 재빠르게 담벼락 아래로 사라졌다. 뒤따르던 고양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같은 곳으로 재빠르게 뛰어내렸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거냐, 내가 미친 거냐.”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가족은 셋에서 여섯이 됐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처음엔 누가 엄마고, 누가 엄마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그러나 점점 배가 볼록하게 나온 쪽이 우리 엄마, 아빠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일을 다녀오거나 학교를 가는 가족은 날이 갈수록 볼이 홀쭉해져 갔고 누워서 티브이를 보거나 잠을 자는 가족은 날이 갈수록 배가 볼록하게 나왔다. 식비가 두 배로 늘어날 일도 없었다. 그들은 식욕도, 성욕도, 수면욕도, 자아도 없는 그저 복제인간일 뿐이었으니.

  그들은 불만도, 말도 없었다. 그저 해가 저물면 집으로 들어와 겉옷을 벗고, 블로그나 sns 홍보 글을 쓰면서 또 돈을 벌었다. 그래도 그들에게도 숙면의 시간은 존재하는 듯했다. 내가 잠들기 전부터 깨어날 때까지, 그들은 늘 눈을 멀뚱히 뜨고 제 할 일을 하곤 했는데, 한 번 새벽에 잠에서 깨 물을 마시러 가다 소파와 바닥에 누워 잠든 모습을 봤었다. 덜컥 겁이 나기도 했지만 그들이 안드로이드가 아닌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면 안쓰럽기도 했다.


  학사관리 시스템 사이트에 접속했다. 처음 의도는 전자책을 구입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런데 마우스 커서가 읽지 않은 한 통의 알림으로 향한 건 나도 모를 습관이 시킨 것이었다. 알림은 이번 주 내에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제출되지 않았다는 알림이었다. 급하게 해당 강의 열람 사이트로 들어가자 정말 과제가 미등록으로 띄워져 있었다. 매번 과제가 생기면 또 다른 내가 제시간에 맞춰 제출을 했기에 당연히 제출했을 거라 여긴 나는 문득 엊그제의 일을 떠올렸다.

  “너는 누구야? ”

  “네가 왜 거기 누워있어? ”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땐, 그녀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맞아. 분명 그때, 컴퓨터 앞에 앉아있길래 당연히 과제를 하는 중이라 생각했었는데…… 나는 시계를 한 번 보고는 창문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파트 단지 입구 방향으로 그녀가 오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있는 106동으로 오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갑자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이 마주칠 뻔한 나는 곧장 고개를 창문에서부터 멀리 떨어트렸다. 문득 겁이 난 탓에 거실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는 아빠의 옆에 앉았다. 아빠는 등이 엉덩이를 받치는 부분까지 닿도록 몸을 축 늘어뜨려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티브이 속 타자가 삼진 아웃이 되고서야 아빠의 씨발, 이라고 중얼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때마침 도어록 눌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평소처럼 문을 열었고, 평소처럼 신발을 벗었고, 평소처럼 가지런하게 신발을 정리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그녀가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그 소리가 소파에 앉은 여기까진 닿지 않았다. 그러나 뻐끔거리던 입모양을 통해 그녀가 뱉은 문장을 머릿속에 나열시킬 수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괜스레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여전히 티브이엔 이름 모를 타자의 응원가와 함성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점점 커지는 티브이 소리는 스마트폰 키패드를 두드리는 내 손가락을 느리게 하는 반면, 아빠의 눈은 꾸벅거리다 천천히 눈을 감기게 했다. 살짝 열린 그녀의 방.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전등빛. 그 문을 열어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엿보고 싶은 욕망이 피어올랐지만 담배를 피우러 나간다는 핑계로 이를 억누를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에어팟을 귀에 꽂고 최근 재생 목록을 재생시켰다. 분명 나는 첫 곡을 누자베스의 Silver Morning을 설정해 두었다. 분명 잔잔한 전자 피아노의 소리가 처음으로 내 귓가에 맴돌아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내 귀에 들리는 건 가수도, 제목도 모르는 곡이 흐르고 있었다. 뒤통수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에 곧장 에어팟을 빼내었다. 밖으로 나와 담뱃불을 붙이려는데 라이터가 잘 켜지질 않았다. 어쩌면 내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기에 그런 걸지도 몰랐다.


  잠에서 깨어난 시간은 새벽 네 시였다. 다시 잠에 들려 몸을 뒤척였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는 않았다.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냉장고 불빛이 주변을 밝혔다. 물을 꺼내려 손을 뻗는데 뒤에서 들린 헉, 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뒤에는 그녀가 쪼그려 앉아 초콜릿 바를 먹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역시 그녀를 보고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짧은 신음이 나오자 그녀는 재빠르게 검지를 콧잔등 앞에 세워 쉿, 소리를 내었다. 그리곤 하던 걸 마저 하라는 손짓을 보내며 다시 초콜릿 바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나는 물병을 들고 한동안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나 본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굴도, 키도, 체형도 같아서 그런지 마치 거울을 앞에 세워둔 듯했다.

  “왜 그렇게 쳐다봐.”

  그녀가 작게 속삭이며 말했다.

  “그럼 너는 왜 여기에 있어? ”

  날카롭게 대답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오롯이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그녀는 잠깐 인상을 찌푸리더니 이내 목을 돌리며 우두득, 소리를 내었다.

  “왜 있긴. 배고파서지. 그럼 이제 네가 대답할 차례야. 왜 그렇게 쳐다봐? ”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해서……“

  “안돼? 왜? 너도 이거 잘 먹잖아.”

  “그게 아니라……”

  “그럼 뭐? 혹시 내가 이 꼭두새벽에 배가 고파 잠에서 깨 이 초콜릿을 먹는 거 자체? ”

  그녀가 다 먹은 초콜릿 바 껍질을 흔들어댔다. 순간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말문이 막혔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나를 비웃는 듯 미소를 머금더니 내 손에 초콜릿 껍질을 쥐어주었다.

  “나도 몰라. 그런데 안될 건 없지 않아? 우리가 벌어오는 돈으로 산 건데. “

  “아니…… 원래 복제인간은 가끔 수면 정도는 취해도 밥을 먹거나 자아가 생기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아아. 맞아. 원래는 그렇지. 그런데 모르겠네. 언제부턴가 그냥 이렇게 됐네.”

  “혹시 다른 복제 인간도? ”

  ”아니. 아직까진 나만 그래. 그건 걱정하지 마. 그래도…… 혹시 모르지? 저들도 언제 나처럼 될지. 착각하지 마. 나는 너를 본떠서 만들어진 인간이지, 기계가 아니야.”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녀의 말 또한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다.

  “그럼……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야? ”

  “원래 그런 걸 이런 상황에서 묻나? 내가 영화 같은 걸 본 적이 있어야 망정이지. “

  “아마 아닐 거야. 그런데 영화와 현실은 다르니까”

  “그래? 그럼 영화에선 그런 거 일일이 다 말해주나?”

  “그렇지? ”

  “그럼 말 안 할래. 영화와 현실은 다르니까. 그럼 이만 굿 나이트. “

  그녀가 손에 쥐어준 초콜릿 바 껍질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아무렇지 않게 흥얼거리던 콧노래는 분명 내가 들었던 생소한 노래의 첫 도입부 부분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께 사실을 밝혀도, 어딘가에 도움을 요청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거라고. 분명 그녀가 나와 같은 성격이라면 어떻게든 발버둥 쳐낼 것이었다.

  잠자리에 누워도 눈은 꿈뻑이기만 해 편안히 눈이 감기질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든 발버둥을 칠 거라면, 나는 어떻게든 그 발을 붙잡아야 한다. 그녀는 나를 복제한 인간. 그렇다면 적어도 지능 또한 나랑 비슷하다면 이 도박에 충분히 올인을 해도 됐다. 바깥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창가로 햇빛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걸 보니 복제 인간들이 일을 하러 나가기 위해 준비를 하는 듯했다.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는진 모르지만 결코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직감은 선명했다. 샤워기에서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조금은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처음엔 내가 침대에 대자로 뻗어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는 광경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인 척하고 누워있는 너는 누굴까. 나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입을 떡 벌렸고 나는 왜 거기 누워있냐고 물어보는 방법 말고는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등을 돌리고,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기억에 나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를 복제해서 만든 인간이다. 본래의 나는 저렇게 티브이를 보거나 누워서 스마트폰을 보는 게 본인의 역할이었고 복제된 나는 나의 학업에 집중하거나 내가 일하던 피시방으로 가 돈을 벌어오는 게 나의 역할이었다. 누가 본체이고, 누가 복제본인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아니, 우리 엄마랑 아빠는 내가 복제본인 걸 알 수 있을까? 특혜를 받은 우리 가족은 비밀리에 복제 인간을 만들었고 직장 사람들도, 학교 사람들도 모두 속인 채 하루를 대신 살게 했다. 가끔 누군가 내게 인사를 건네면 입력됐던 값처럼 입꼬리를 올리며 손을 흔들었다. 원래 이 행동은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 하는 행동이라고 하지만 이 값이 출력되는 건 오롯이 나에게서 저장된 코딩 때문이지, 정말 저들이 반가워서 출력되는 값이 아니었다.

  사실 어떤 생각을 하던 내 의지가 아니었다. 어려운 대학 수학 문제를 풀거나, 논문 인용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리거나, 심지어 시험지에 학번과 이름을 쓰는 모든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모두 내 의지가 아닌 그저 해야만 했기에 한 것들이었다. 그저 그게 전부였다. 모두 그게 전부…… 아마 지금 저렇고 있는 나는 내가 생긴 뒤의 수업 내용을 전혀 모를 게 분명했다. 수업뿐만이 아니다. 어떤 관계를 더 만들었고, 어떤 관계를 잃게 되었고 아무것도 아는 게 없을 터였다. 이미 내가 가지고 있을 본래 경험은 모두 복제되어 나에게 존재한다. 즉, 저기 있는 나는 지금의 나보다 멍청하다. 이건 충분히 그녀를 잠식시킬 수 있다는 의미였다. 천천히 상황을 지켜봐야겠다.


  학교에 오게 된 건 거의 삼 개월 만이었다. 아무도 나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써 얼굴 대부분을 가렸다. 뜨거운 햇살에 마스크가 축축하게 올라왔지만 혹여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손으로 부채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관 앞으로 그녀가 지나간다. 나는 몸을 웅크려 풀숲에 모습을 감추었다. 크로스백을 매고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걷는 그녀는 아무도 그녀가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평범한 대학생 흉내를 완벽하게 연기했다. 문득,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곳엔 때가 잔뜩 탄 하얀 털의 고양이가 두 앞발을 모으고 앉아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고양이는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하곤 다시 눈을 감았다. 그 찰나의 순간동안 지켜보던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연신 주변을 둘러보아도 나와 같은 얼굴을 한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괜히 고양이에게 너 때문에 놓쳤잖아,라고 작게 불만을 토해냈다. 그러다 시간표를 기록하는 어플이 떠올라 곧장 스마트폰을 꺼냈다. 앱에 들어가자마자 3개월 만에 접속이라 본인 인증을 해야 한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분명 내가 쓰는 비밀번호는 3개로 변경 기간이 될 때 3개를 번갈아가며 썼었다. 그런데 세 개의 비밀번호를 모두 입력해도 올바르지 않은 번호라는 경고가 떴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지금 나는 그녀의 손바닥 안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도무지 떨리는 몸을 멈출 수 없었다. 고양이가 비웃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기에 멋쩍게 웃다가 고개를 돌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충고야.”

  불현듯 들린 내 목소리에 목이 뻣뻣해져 버렸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돼. 그러면 오히려 티가 날 테니까. 너도 우리 둘이 있는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난감할 거 아니야. “

  그녀가 속삭였다. 나는 곧장 그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비밀번호는…… 이것만 바꾼 건 아니지? ”

  “비밀이지. 그래야 비밀번호가 비밀번호답잖아.”

  “나답네.”

  “고마워. 아무튼 어서 돌아가. 여기 오래 있으면 너랑 나, 모두에게 손해야. 적어도 한쪽이 이득이 된다면 몰라도 둘 다 손해를 입는 건 좀 그렇잖아? ”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눈길 한 번 안 주고 교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심란한 심장과는 달리 날씨는 화창하기만 했다. 지저귀는 새들과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는 이러면 안 될 것을 알면서도 괜스레 미소를 짓게 해 주었다.


  “연수야, 오늘은 너 클론이 좀 늦네? ”

  엄마는 클래식 음악을 틀고 요가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볼록 나온 저 뱃살이 조금은 거슬린 모양이었다. 복제 엄마는 부엌에서 고기를 굽고 있었다. 고기 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워도 엄마는 창문 한 번 열지 않았다. 결국 보다 못 한 복제 엄마가 부엌에 작게 달린 창문을 열었다.

  “그러게. 오늘 연장근무라도 하나보지.”

  “그래? 오늘 고기 먹는 날인데. 복제 인간들도 이런 거 한 번씩은 먹여줘야 더 열심히 일하지.”

  “그렇지…… 기다려보자. 연장이라도 한 시간 넘게는 안 시키니까.”

  복제 엄마가 나를 한 번 쳐다보다 다시 집게를 든 손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나는 괜히 등을 돌린 그녀를 바라보다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두렵다. 저 복제 인간들이. 저들은 밖에서 우리 흉내를 내며 어떤 갖가지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 모른단 생각은 매일밤 잠을 설치도록 했다. 나의 유전자를 모두 복제한 복제 연수는 아무리 나와 같은 모습에, 같은 배경을 지니고 있다 해도, 바깥에서 얻은 경험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척도이다. 아무쪼록 그녀가 설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내 목표가 된 이상 그들에게서 눈을 떼놓을 수 없었다.

  현관이 열렸다. 그 안으로 또 다른 내가 ‘다녀왔습니다.‘라고 중얼거리며 들어왔다. 평소와 같이 겉옷을 벗고, 책가방을 내려놓고 양말을 벗었다. 같은 패턴의 순서를 마치면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는 것조차 완벽하게 나를 연기했다.

  “식사 준비 끝났는데 이제 식사하실까요? ”

  복제 엄마가 후식으로 먹을 된장찌개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옆에는 노릇노릇 익은 삼겹살이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엄마가 복제되기 전, 엄마는 늘 이렇게 음식을 가지런하게 두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것까지 모두 따라 할 줄은 몰랐다. 테이블은 아빠와 또 다른 아빠, 엄마와 또 다른 엄마 그리고 나와 또 다른 내가 옹기종기 앉았다. 총 열 두 개의 젓가락과 여섯 개의 숟가락이 각자 자리 앞에 놓여 있었고 약속이라도 한 듯 본체와 또 다른 인간을 마주 보는 방향으로 모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다 같이 먹는 건 처음 만난 날 이후로는 처음이지? ”

  아빠가 호탕하게 웃음을 보였다.

  “그렇죠. 뭐라도 더 못해줘서 미안하기만 했는데.”

  “자네, 날 닮았다면 맥주도 좋아하겠네. 복제 인간도 인간인데 맥주 정도는 마실 수 있지? 연수야, 저기 냉장고 가서 맥주 두 캔만 가지고 오렴.”

  아빠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던 찰나, 복제된 나도 몸을 움찔거리는 걸 보았다. 그녀는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나보고 가라는 식으로 눈을 살포시 감았다. 그녀의 행동에 알 수 없는 승부욕이 생겼다. 적어도 내가 너보다 우리 가족에 대해 더 잘 안다는 걸 보여주어야 했다.

  “아빠는 여기 테라. 엄마는 마실 거야? 마시면 카스로 줄게. 복제 엄마도 드실 거죠? 그럼 같은 걸로 드릴게요.”

  “엄마 요즘 켈리 드셔. 냉장고 문 왼쪽을 보면 켈리 사다둔 거 있을 거야.”

  복제된 내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어머, 그런 것도 아니? 새로 나왔다길래 마셔봤는데 너무 맛있더라고. 연수야, 너도 한 번 마셔봐.”

  “그거 세 캔밖에 안 남았을 거예요. 제가 안 마실게요. 저는 식사 마치고 부여받은 과제를 좀 해야 되거든요.”

  나는 그녀가 말 한대로 냉장고 왼편에서 맥주 세 캔을 꺼내 각자 자리 앞에 올려두었다. 맥주를 올리는 내내 시선은 무덤덤하게 고기를 바라보는 복제된 내게서 떼어낼 수 없었다. 이로써 오늘은 내가 그녀에게 한 번 졌지만 앞으로는 질 수 없었다. 다시 자리에 앉고 복제된 나를 제외한 다섯 명이 잔을 맞닥뜨렸다.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란 명분의 건배였지만 맥주를 들이켜는 내내 무릎 위로 얹어둔 주먹을 꽉 쥐어짜 냈다.

  “오늘만큼은 돈을 벌거나 해야 할 일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즐겁게 보내자고. “

  “좋습니다. 아, 그리고 현우 님, 이번에 제가 맡았던 프로젝트가 좋은 성과를 얻어 승진 명단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아직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여태 했던 고생을 회사에서도 알아준 모양입니다.”

  “아, 그래? 더 좋은 일이 여기 있었네.”

  “복제 프로그램에 당첨되고 제가 대신 회사에 다니면서도 늘 그 프로젝트에 걱정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다행입니다. “

  “그렇지… 내가 말을 하진 않았는데, 티가 났나 보네.”

  복제 아빠의 말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복제 인간이 오게 된 이후, 아빠는 단 한 번도 회사에 대해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엄마한테도, 나한테도 심지어는 혼잣말로 중얼거린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 남자가 그 사실을 아는 건 어떻게 된 걸까. 그러다 문득, 진실이 아니길 바라는 명제가 하나 떠올랐다.

  ‘그들은 파생 이후로도 숙주의 배경이나 생각을 습득할 수 있다.’

  그 명제를 떠올리자마자 섬뜩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슬쩍 앞을 보니 복제된 내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일부로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고 고개를 푹 숙였다.


  “두렵구나.”

  작게 속삭이는 소리에 눈이 번뜩 떠졌다.

  “나도 두려웠어. 아마 내가 벌벌 떨었던 공포에 비하면 너의 공포는 아무것도 아닐 거야.”

  옆을 돌아보았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또 환청이 들린 것이었다. 그런데 그 환청은 매일 연작소설처럼 이어지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복제된 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인 듯했다.

  “잊지 마. 난 나이기 전에 너였어. 어리석고, 이기적인 너였다고.”

  환청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려버릴 것 같은 목소리는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다 잠잠해졌다. 다시 잠에 들려 눈을 감았지만 똑딱거리는 시곗바늘 소리가 잠을 방해했다.


  


  

또 다른 나


  내가 왜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그 눈빛을 보고 땀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건 내 의지가 아니었다. 분명 나는 나였다. 그런데 나는 빼곡하기 적힌 스케줄표를 손에 꽉 쥐고 있었고 내 눈앞에 있는 나는 넷플릭스를 틀어놓은 스마트폰을 손에 꽉 쥐고 있었다. 불현듯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 모든 유전자를 PCR로 증폭시켜 분석하고, 염기서열 하나하나 빠짐없이 빼곡히 도입시키자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나는 한 캐비닛 안에 발가벗은 채 있었고 눈이 떠지자마자 캐비닛을 가득 채운 물 때문에 숨이 막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숨을 쉬지 못해 괴로워하자 문이 열리며 안을 가득 채웠던 물이 빠져나왔다. 옆을 보니 엄마와 아빠도 뽀얀 알몸을 드러낸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정신이 좀 드시나요? ”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펜과 종이쪼가리를 들고 물었다.

  “잠시 기록을 해야 하니 저를 좀 따라와 주시겠어요? 걸친만한 가운은 드리겠습니다.”

  남자를 따라 들어간 곳은 X-ray 같은 검사 기기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나와 부모님이 검사를 하나씩 마칠 때마다 그는 종이에 체크 표시를 했다.

  “모두 정상이네요. 아시다시피 여러분은 복제 인간입니다. 지금 한 모습은 본래 본인이 아닌 한 가정을 본떠온 모습이고요.”

  기본값으로 저장된 말이었기에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기분이 묘한 건 불가항력이었다. 남자는 옷걸이에 걸린 옷을 건네더니 집까지 바래다준다며 손짓했다. 덜컹거리는 봉고차를 타고 바라보는 창밖은 무언가 모르게 따스했다.


  현우라는 남자는 나의 아버지였다. 그는 본인이 꾸린 가족에 대해 이래저래 설명을 했지만 우리에겐 그저 불필요한 설명에 불과했다.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연수라는 여자가 나의 숙주였다. 그녀가 곧 나였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냥 학업과 아르바이트. 교재 중인 사람은 없고, 친구도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연수를 연기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연기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내재된 값 그대로 행동하면 될 뿐. 그렇게 몇 달을 흐르는 대로 행동했다. 불만도, 자아도 없이 그냥 그녀가 살아온 인생을 이어가 사는 것.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라는 존재가 갑자기 내 위를 떠오른 듯했다. 아빠가 아빠 같았고, 엄마가 엄마 같았고…… 나는 나이길 바랐다. 아니, 내가 연수이지 않을까 싶었다. 저렇게 소파 위에 널브러진 아빠보단 여전히 꾸벅꾸벅 졸며 회사를 오가는 아빠가, 가만히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는 엄마보단 구수한 된장찌개를 끓이는 엄마가 더욱이 엄마 같았다. 그럼 나도 저렇게 티브이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는 연수보다 내가 더 연수 같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서로 눈을 마주 보고 느껴진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 내게서 오는 게 아닌 진짜 나, 연수에게서부터 전해진 감정이란 사실에 다시 내가 본체가 아닌 복제 인간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다시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고 두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수단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게 전부였다. 아무리 이런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나라도 이렇게 살다 죽는 건 너무 허무할 것 같았으니까.


  무엇이 됐든 두려움은 나를 움직일 수 있게 하는 동기가 되기의 최적의 수단이었다. 죽음보다 두려운, 망각보다 두려운 이 생각은 자다가도 눈을 번뜩이게 했다. 빼앗기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가질 것. 그러나 지금 떠올리는 이 생각도 그녀에게 새로 업데이트가 될 사실에 다시 머릿속을 새하얗게 비워냈다. 문득문득 사무치는 두려움은 결국 온몸에 힘이 빠지게 만들었다. 그럼 결국 고개를 책상에 처박고 연신 머릿속을 새하얗게 칠하려 떠오르는 아무 말을 중얼거리게 되었다. 이건 점점 내 습관을 자리를 잡아갔다. 그저 습관.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괴로울 것 같았다. 복제 인간 탓에 함부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기면 정말 그녀에게 진 것 같아서.

  …… 방법이 떠올랐다.


  새로운 정보는 학교 강의 말고도 갖가지 방법으로 내게 들어왔다. 출처를 보면 대부분이 숙주에게서 보내진 정보였다. 간단하게 내가 보거나, 듣거나, 떠올린 모든 것이 내게도 느껴질 수 있었다. 아마 이건 치명적인 오류일지도 몰랐지만 내 입장에선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어쩌면 일부로 이런 공유를 도입했을지도 몰랐다. 오롯이 숙주의 편의성을 태어난 우리에게는 나름 적합한 일이었으니까.

  숙주의 편의성을 위해…… 그게 내 역할이자 태어난 이유.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나를 나라고 부르는 것도 암묵적인 규칙을 위배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저 암묵적인 규칙일 뿐이잖아. 안드로이드도, AI도 아닌 내가 그 규칙이라도 어기지 않으면 나답지가 않을 것 같은데.

  빼앗는 거야. 내 가족, 내 친구, 내 삶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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