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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May 28. 2023

기억을 걷는 시간


  2020년 6월 3일. 준이 죽었다. 그는 수요일마다 봉사활동을 다녔던 복지관으로 가다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에 치여 죽었다.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그가 차를 향해 뛰어들었다고 했다. 내가 그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땐 하늘이 노랗게 물들어갈 즈음이었다. 처음엔 장난 전화라고 생각해 곧장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나 점점 나를 잠식시키는 불안감에 가웃을 벗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준은 활짝 웃고 있었다. 새하얀 치아를 드러낸 준의 사진 옆에는 검은 띠 두 줄이 그를 감싸고 있었고, 그토록 좋아하던 꽃들의 주변에 활짝 피어있었다. 거뭇한 상복을 입은 준의 부모님과 여동생을 마주하고 나서야 드디어 준의 죽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준의 가족을 보고 웃음을 보여야 할지, 눈물을 떨어트려야 할지 판단할 수 없어 그저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떨구는 걸로 인사를 건넸다. 준의 어머니는 두 손으로 내 손을 붙잡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도대체 그녀가 잘못한 일이 무엇이 있기에 내게 고개를 숙이는 걸까. 뒤에서 준의 아버지는 애써 내 얼굴을 마주하는 것을 피해 준의 사진만 바라보았다.

  준은 자동차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차가 질주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대로 들이박게 될 건물이 유치원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더욱이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늘 우려한 일이었기에…… 그래도 이 일이 정말로 벌어질 줄은…… 준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생각을 했다. 준이 사람들에게 베풀어주는 사랑, 그 일부를 내게 조금 더 나누어줄 순 없었던 걸까.

  

  영안실에 누워있는 너는 어딘지 모르게 편안해 보였다. 입을 맞추던 그 입술과 내 거친 손으로 만진 너의 보드라운 볼. 껴안을 때마다 쓰다듬었던 등줄기, 입 안을 가득 채웠던 빳빳하게 세워진 성기. 나는 너의 시체를 껴안을 수도, 어루만지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나체를 드러낸 채 이불 한 장만 덮은 너의 모습은 수도 없이 보았지만, 차마 지금 준의 모습을 덤덤하게 바라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준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가루가 된 준을 보자니 저게 정말 준의 모습이 맞나 싶었다. 새하얗던 준의 피부보다 더 새하얀 지금의 준. 이제 준은 없다. 온전히.


  애써 긍정적인 말을 내뱉어주었다. 다크서클이 잔뜩 내려온 사람, 손목에 자해 흔적이 남은 사람, 진료를 받는 내내 웃기만 하는 사람. 약을 꾸준히 먹는다면 금방 나을 수 있다고, 지금 잘하고 있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어쩌면 내 입에서 나온 그 말은 내가 듣고 싶은 말일지도 몰랐다. 금방 나을 수 있다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정말 그들이 온전히 나아지고 있는 진 모르겠었다. 내 앞에선 괜찮다고, 요즘은 별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해도 병원을 나가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까. 주치의라도 그들의 삶 하나하나 모든 걸 관여할 순 없는 거니까.


  젠가를 쌓아 올리는 건 그만큼의 시간을 공들여야 어느 정도의 높이가 있는 탑이 된다. 그러나 고작 블록 하나가 어긋나면서 전체가 무너지는 건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내 30년 인생에 비하면 준은 고작 블록 하나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블록 하나는 나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와르르 무너진 블록 더미들을 보면 한숨을 쉬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환자들에게 플루복사민을 처방해 주며 깊으면서 가벼운 심호흡을 내뱉는다. 한 번의 들숨에 준을 떠올리고, 한 번의 날숨에 준의 죽음을 떠올린다. 그러면 더욱이 준의 죽음이 생생하게 실감되었다.


  가끔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싸늘하게 축 늘어진 너를 껴안는 것. 온기가 느껴지지 않더라도 그렇게 너의 존재를 기억하고 싶었다. 준의 주위를 감싼 국화보단 고개를 푹 숙인 둥굴레 꽃이 더 그에게 잘 어울렸을 텐데. 짙었던 꽃내음이 조금씩 희미해졌다. 확산되던 냄새가 점차 흐려질수록 준의 기억은 선명해졌다. 여름을 알리는 아지랑이가 눈앞을 일렁여도 내 눈앞을 떠돌아다니는 건 너의 얼굴. 눈을 질끈 감았다.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삼다수를 한 병 산 뒤에 플루복사민 한 알을 함께 삼켜냈다. 다시 젠가 블록들이 쌓아 올라졌다. 언제 다시 무너질지 모르지만 알약 하나로 이를 버텨낸다.


 이젠 환자들이 먼저 내게 오늘 하루를 물어보았다. 그럼 나는 입을 앙 다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어떻냐는 질문에 왜 고개만 끄덕이는지 꼬리를 무는 환자도 있었지만 그냥 묵묵히 키보드를 두들기면 잇따른 질문을 하진 않았다. 그리고 환자들이 나갈 때마다 타이레놀을 한 정 꺼내 삼켰다. 작지만 두꺼운 타이레놀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뜨겁다. 어쩌면 이 뜨거움이 두통을 흐릿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아직도 귓가엔 준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여전히 내 살갗엔 준의 온기가 머물렀다. 나는 오늘도 준의 흔적 안에서 살고 있었다. 지구가 태양을 몇 번 감싸 안아도 그 흔적은 사라지지 않을 거니까...... 찰나의 순간마저도 영원히 갇혀버린 나는 또다시 헤매기 시작했다. 귓가를 간질이는 바람을 따라 쓸쓸히 춤을 추는 낙엽처럼. 아마 내일도 오늘 하루와 같겠지.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쉬지 않고 걷고 있지만 주변 풍경이 변하는 것도, 내 손에 쥐어지는 것도 없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나온다는 것을 깜빡 잊고 버스에 탔다.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병원 앞 정류장 하차벨을 누른 뒤였다. 삐- 소리 한 번이 머릿속을 띵하게 울린 듯했다. 결국 오늘 하루는 간호사들에게 급한 용건이 있으면 유선전화를 쓰라고 일러두었다. 그러나 왠지 모를 불안감은 순식간에 온몸을 감쌌고 나도 모르게 다리를 달달 떠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선생님, 힘들어 보이십니다.”

  그는 양극성 장애를 진단받은 환자로 뚜렷하게 증상이 보이진 않았지만 세 번의 자살 시도로 잠시 입원을 시켜두었었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나 보네요. 선생님도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니.”

  엔터 키를 누르고 곧장 웃음일 지어 보였지만 축 내려앉은 그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가진 않았다.

  환자나 나가고 잠시 탁자 위에 올려두었던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 비치어지는 내 모습은 마치 처음 환자들이 나를 마주했을 때의 표정과 같았다. 잔뜩 내려온 다크서클, 거뭇한 목, 움푹 파인 눈가. 아무래도 잠을 많이 못 자서 그럴 거야......

  습관적으로 주머니 안에 손을 집어넣었지만 잡히는 건 없었다. 준을 제외하곤 누군가와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편이 아니었다. 그저 준과 이어주었던 매개체가 잠시 없어졌다는 게 나를 이렇게 미치게 만들 줄은 몰랐다. 아니면...... 아직까지 휴대전화 액정 위로 떠오르는 준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게 나를 미치게 만드는 이유 일려나.


  모든 진료 스케줄을 바꾸었다. 매주 수요일은 휴무날로. 대신 휴무였던 토요일에 진료를 하고, 오전 퇴근이던 목요일을 오후 퇴근으로 변경했다. 원장이 지랄할 걸 감안하고 얘기를 꺼냈는데 생각 외로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수요일은 준이 다녔던 센터로 갔다. 처음 복지사를 만나고는 절대 준과의 관계를 밝히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내가 복지관 문을 열고 신발을 벗으려 허리를 숙일 때까지, 그녀는 단 한 번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슬리퍼를 갈아 신고 들어오자 여자는 볼펜과 종이 한 장을 내게 건넸다. 그곳엔 내 이름과 생년월일, VMS 아이디 그리고 혹시라도 상해를 입을 시 보험 처리가 가능하니 개인 정보 제공에 동의하는지 동그라미 표를 그리는 칸이 있었다. 준도 아마 곧대로 전부 적었을 터였으니 나도 따라 꼼꼼하게 종이에 적힌 글씨가 하라는 대로 개인정보를 적어 내렸다.

  혹시 봉사활동을 하러 오다가 사고가 난 경우는 어떻게 처리가 될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침을 한 번 삼키는 걸로 참아내기로 했다.


  옷걸이에 걸린 앞치마를 둘러매고 복지사를 따라 열 평도 안 될 정도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문을 열자마자 코를 쑤셔대는 퀴퀴한 냄새에 눈이 번뜩 떠졌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마스크를 코 끝까지 고쳐 썼다. 준도 이 냄새를 맡으면서 수요일 하루를 보냈겠지. 진작 그와 같은 냄새를 맡으러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듯했다.

  좁은 방 안에 초라하게 놓인 의자엔 나를 포함한 총 다섯 명이 앉아 있었다. 50대로 보이는 백발의 여성, 풋풋한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 남성 그리고 내 또래로 보이는 키 작은 여성. 백발의 여성과 대학생 남자 둘은 구면이었는지 복지사가 주의 사항과 담당하게 될 짝을 공지하러 들어오기까지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그래도 셋 덕분에 어색한 기류가 흐르지 않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것도 있었다.

  셋은 능숙하게 장갑을 꼈다. 그리고 배정받은 어르신의 이름이 적힌 약 봉투를 찾아냈다. 캡슐형 약을 분리해 안에 담긴 가루를 죽에 넣은 뒤 숟가락으로 휘적거리는 걸 보고 그들을 따라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냥 약을 드리면 어르신들이 거부감을 느끼실 수 있어서 이렇게라도 드시도록 하는 거예요. 그래도 이번에 배정받은 어르신은 스스로 식사는 가능하시니 옆에서 말동무만 해주시면 됩니다. “

  옆에서 지켜보던 복지사가 말했다. 그러곤 휘적거리던 숟가락을 뺏어 들어 대신 약을 저어주었다. 금세 뭉쳐버리던 가루들이 그녀가 숟가락을 휘적거리자 금세 골고루 퍼져 녹아들었다. 매번 이런 약 따위를 처방만 해주다 이런 전처리를 하다니. 괜스레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센터는 총 여섯 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1층은 카운터와 강당, 식당. 2층은 창고와 자료 보관실, 3층은 작은 종합병원. 4층부터 6층까지 세 개의 층이 알츠하이머나 파킨슨 병 환자들의 병실로 쓰였다.

  내가 가게 된 곳은 5층으로 여성 알츠하이머 환자가 입원한 병실이었다. 식사가 담긴 쟁반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한진이라는 남자 대학생이 함께 5층으로 향했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띵동, 소리가 날 때까지 나를 힐긋거리며 눈동자를 연신 굴려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그는 병실을 알려주겠다며 내 담당 어르신의 성함을 물어보았다. 그는 최경애라는 이름을 듣고 찰나의 탄식을 내뱉었다.

  “제 담당 어르신이랑 같은 병실입니다. 따라오시면 돼요.”

  

  한진을 따라 도착한 병실 문을 열자 절로 눈을 질끈 감게 되는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그는 내 담당 어르신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방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르신, 한진이 왔습니다. 그동안 건강하셨어요? ”

  그가 인사를 건넨 방향은 창가 방향이었다. 그곳엔 창가 너머로 보이는 한강을 그윽이 바라보는 최경애 어르신이 있었다. 그녀는 한진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늘은 여기 선생님께서 보조해주실 거예요. ”

  “갸는... 안 온 겨...?”

  “...... 네. 요즘 일이 바쁘다고 해서 당분간은 못 오실 것 같아요. ”

  한진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하자 그녀도 다시 고개를 창밖을 향해 돌렸다. 잠깐의 정적. 그 참을 수 없이 짙은 정적은 나도 모르게 침을 한 번 삼키게 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먼저 말하진 않았지만 그녀가 말 한 ‘갸’가 누구인지, ‘갸’의 얼굴을 선명하게 그릴 수 있었다.


  내가 맡은 역할은 말동무를 하는 것이었지만 시선은 연신 침대 머리맡에 놓인 약 봉투로 향했다. 한준은 담당 어르신이 앉을 수 있도록 침대를 거의 직각으로 세워 죽을 떠다 먹여드렸다. 그의 손바닥 위에 얹어진 손수건에는 약이 섞인 뽀얀 죽이 걸쭉하게 묻어있었다. 그가 죽을 뜨는 대로 턱을 치켜세워 받아먹는 담당 어르신은 마치 말을 하는 법을 잊은 듯했다. 주름진 손에는 두꺼운 주삿바늘이 꽂혀 있었고, 아래에는 소변을 받는 배관이 있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까지 간 알츠하이머 환자의 흔한 모습이었다. 본과 시절, 실습을 다닌 병원에 갈 때면 꼭 한 번씩은 저런 환자를 마주하곤 했었다. 나는 그들의 MRI 사진이나 CT사진을 보고 약을 처방해 주거나 주치의가 회진을 도는 걸 따라다니다 숨을 헐떡이며 누워있는 모습을 본 게 전부였다. 이렇게 식사 수발을 하거나 약을 먹는 모습을 직접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일 수밖에 없었다. 막상 그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자니 괜스레 가슴이 뜨겁게 내려앉는 듯했다.

  그녀는 죽이 담긴 그릇이 바닥을 보일 때까지 단 한 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빤히 향하는 그녀의 시선 끝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릇을 싹싹 긁어내며 바닥이 완전히 드러나고 나서야 그녀는 그릇을 돌려주러 나를 바라보았다. 비슷한 시간에 맞춰 한진도 수발을 끝내 입가와 옷 앞섶에 묻은 죽을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 후 병실 밖을 나왔다. 내 뒤를 따라 나온 한진은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며 똑같이 허리를 숙였다. 다시 로비로 내려가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데 병실 안에서 다급히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한진과 나는 화들짝 놀라 문을 벌컥 열었다. 다행히 누군가 쓰러져 있거나 사고라고 여길 상황은 없었다. 그저 경애 어르신은 우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주지 못한 것 같아 인사를 하려 불렀다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방긋 웃는 그녀를 보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한진은 뒤꿈치로 복숭아뼈를 툭, 툭 차다 입을 열었다.

  “이해해 주세요. 경애 어르신이 치매가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오늘 제가 수발해 드린 어르신이 경애 어르신의 아버님이신데 원래는 저런 환자복이 아닌 우리와 같은 앞치마를 두르고 어르신들이 드실 식사를 만들어주신 분이에요. ”

  “초기 이후 나타나는 증상인 건 알고 있었지만 아버님이실 줄은 몰랐네요.”

  “참 무서워요. 멀쩡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갑자기 50년 넘도록 모신 아버님도 못 알아보게 된다는 게.”

  한진의 멋쩍은 웃음이 어딘가 모르게 씁쓸해 보였다.

  “어떻게 보면 다행일 수도 있겠네요. 지난 시간이 정말 지옥과 같았던 분인데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 대가로 그 기억까지 통째로 잊을 수 있으니까요.”

  “등가교환이 성립될까요? “

  “모르죠. 그건 기억을 직접 걷던 사람이 제일 잘 알 테니까요.”

  

  로비로 나와 곧장 이어지는 스케줄을 따랐다. 식당으로 올라가니 이미 수발을 먼저 끝낸 봉사자들이 줄을 선 어르신들에게 배식을 하고 있었다. 복지사는 나와 한진을 보자마자 반찬 적정량을 알려주곤 내 손에는 집게를, 한진의 손에는 국자를 쥐어주었다. 동네 독거노인들은 모두 이곳으로 와 점심 끼니를 해결한다고 준에게 듣긴 했는데 이 좁은 동네에 이렇게나 많은 독거노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입이 떨 벌어졌다. 대부분 성경책을 들고 있거나 무릎을 움켜쥐고 있었지만 식판을 들고 있을 땐 모두가 급식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들뜬 모습을 보였다. 돌이켜 생각하면 저들에게도 점심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놀이 따위를 한 적이 있었을 텐데…… 엘리베이터에서 한진이 한 말이 떠올랐다. 지옥과 같던 시간을 모두 지우는 대가는 사랑하는 사람만 잊는 게 아닌 사랑했던 추억까지 잊는 거야. 그러니까 그건, 등가교환이 전혀 성립되지 않아.

  “닮았네. 그것도 아주 많이.”

  참전 용사 모자를 쓴 노인이 안경을 고쳐 쓰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 마치 진실을 말하라고 닦달하는 듯했다. 거짓을 말한다면 저 눈동자에 빠져 죽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많이 보고 싶을 거야. 그럴 테지. 나도 많이 보고 싶은걸.”

  “저를… 아시나요? “

  적정량인 동그랑땡 세 개를 노인의 식판 위에 얹었다. 그는 입꼬리를 가볍게 올리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애가 그렇게 자랑했는데 어떻게 몰라? 집사람으로 삼고 싶은 사람이라고. “

  그가 말을 마치자 옆에서 배식을 기다리던 한 노인이 팔꿈치로 그의 몸을 한 번 쳤다. 그러고 나서야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다음 반찬을 배식받으러 자리를 옮겼다. 몇몇 노인들과 봉사자인 백발의 여성, 그리고 대학생 둘이 서로와 내 눈치를 보려 눈동자를 힐긋거리는 게 느껴졌다.

  “유진 선생님, 잠깐 동그랑땡 배식 좀 도와주실래요? 여기 선생님 뭐 좀 작성시켜야 하는 걸 깜빡하고 못 시켰네.”

  백발의 봉사자가 내 손에 쥐었던 집게를 받아 들더니 또래로 보이던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좁은 사무실로 나를 이끌었다.

  “정 힘들면… 조퇴하셔도 돼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여서 그래요.”

  “정말 괜찮아요. “

  “방금 그 어르신이 한 말은 너무 신경 쓰지 말고요…“

  “네.”

  대충은 예상을 했던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 자랑을 늘어놓았던 준이 이 복지관에서도 내 자랑을 안 했을 리 없다고.

  “오버했다면 미안해요. 저희는 괜히......”

  “정말 괜찮아요.”

  

  잠시동안 준이 되었다. 준은 어떻게 이 수요일을 보냈을까 싶었는데.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 너의 하루는 생각보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였다. 너의 손길로 살갗을 간질이던 흔적이 털을 곤두세우게 하고, 너를 닮은 낯선 이를 마주하면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그럼 나는 밤이 찾아오면 울다 지쳐 잠에 들겠지. 그래도 내 얼굴을 어루만지고, 가슴을 움켜쥐었던 준의 손이 다른 이들에게도 따듯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으니...... 사실 너의 그 손길이 더 그리워지는 것 같았다. 몇 번의 손짓, 몇 개의 표정 모두 아득히 그려진다.

  그저 현실의 현실이었다. 네가 없는 건. 가끔은 환자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무모할 수 있었음을 알아도 의지는 내 대뇌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이런 내가 점점 지쳐갔다. 그럼에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아름다웠던 것 같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거기서 몸집이 더 커진 아이들은 커다란 책가방을 올려 매고 손에는 스마트폰을 쥐고 걸었다. 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남자의 앞에 놓인 상자 안에 동전을 넣으면서도 웃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아이들은 노란 유치원 버스에 올라탔다. 아이들이 모두 탔는지 확인한 선생님은 문을 닫고 동요를 틀었다. 어릴 적 내가 들었던 동요와는 완전히 다른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내가 언제 저런 노래를 또 들었더라. 분명 환자를 치료하며 저런 동요와 비슷한 노래를 틀었었다. 조금은 유치하고 가끔은 말도 안 되지만 살포시 눈을 감기에 충분한, 2분가량의 시간. 우리는 그걸 매료되었다고 부르곤 했다. 너는 내게 매료되었다. 나는 네게 매료되었다. 우리는 동요에...... 매료되었다.

  유치원 버스가 신호에 걸렸다. 아이들을 태운 버스는 가만히 붉은색 불이 초록색 불로 바뀔 때까지 검은색 K5 뒤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초록색 불로 바뀌어도 K5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유치원 버스는 얌전히 앞 차량이 출발할 때까지 경적 한 번 울리지 않았다. 아마 평소였다면 유치원 버스 기사는 경적을 울리며 앞 차량에게 욕설을 퍼부었겠지. 그러나 뒤에 아이들이 있자는 이유 하나 만으로 턱 끝까치 차오르는 말들을 삼켜내기엔 충분했을 것이었다. 절로 인간의 욕망을 삼켜낼 수 있도록 하는 아이들. 준은 그런 희망을 지켜냈다. 나중에 준을 본다면 내 가슴에 그의 얼굴을 파묻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어야지. 고맙다고. 자랑스럽다고. 쉽지 않았을 너의 그 선택이.


  닦아내면 그만인 게 눈물이니까. 안고 가면 그만인 게 또 기억이니까. 가끔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다시 또 뭔가 좀 낯설고 익숙하지 않았다. 결국 두려움이 앞섰고 마음이 무거워져 어느새 이렇게 입가엔 한숨이 맺혔다.

  시간은 날 어른이 되게 했지만, 강해지게 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더 나를 바보로 만든 것 같았다. 잘 몰랐고, 무모했으니까. 부서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여겼으니까...... 더 아름다웠다.

  준은 어른이었다. 나와 같은 바보였지만 어른이 되었어도 무모했다. 그렇기에 손을 움켜쥐어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기만 했다.


  일렁이는 너의 얼굴. 그것은 마치 희망고문. 전부 내려놓고 훌쩍 떠나고픈 생각이 들어도 결국 내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네가 다녔던 복지관이었다.

  네가 그랬을 것처럼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식사 수발을 하고, 네가 그랬을 것처럼 독거노인 식판에 반찬을 퍼 나르고, 네가 그랬을 것처럼 기부를 했다. 그럼에도 난 네가 아니었다. 네가 될 수 없었다.

  ‘그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어요.’

  망상증 환자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내 모습이 그와 같아 보이진 않을까. 가끔은 비의 색이 초록 빛깔이고, 파란 달이 빛나면 너와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세상은 그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나와 준의 가족만이 그 좁은 세상에 갇혀 준의 얼굴을 잊지 않으려 애써 그려냈다. 티브이에선 그가 살려냈을 수도 있는 아이들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뒤에서 희미하게 미소를 활짝 그린 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네가 될 수 없었던 나였기에 내 망상은 더욱이 광활해져만 간다.


  병원 앞이 자동차 붉은 점등으로 가득 차올랐다. 와이퍼로 창문을 연신 닦아내도 시야는 쉽게 트이지 않았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어느덧 교통체증의 원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로 위를 검붉게 잔뜩 물들인 피. 그 앞엔 박살이 나버린 두 대의 승용차와 엠뷸런스 두 대. 다른 자동차들은 사고의 현장을 돌아서 가느라 교통체증을 피할 수 없었다. 나도 다른 차들과 마찬가지로 사고의 현장을 돌아서 갔다. 그런데 불현듯 사이드미러로 탈 것에 실려 나가는 사람이 눈에 밟혔다. 일 미터가량 되어 보이는 키, 싸늘하게 축 늘어뜨린 팔. 박살이 나버린 자동차 뒤편엔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마침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환자의 진료 시간에 늦어버렸다. 결국 나는 그 광경을 못 본 척할 수밖에 없어 그대로 액셀을 밟았다.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고, 사고 한 장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나도 같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액셀을 밟았다. 그런데 왜 점점 뺨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걸까. 준, 나는 너처럼 될 수 없었나 봐.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고 했는데, 난 어떤 요소 하나 너와 같을 수 없었어. 너를 진심으로 사랑했는데 그럴 수 없었어. 그게 너무 억울해. 내 모든 시간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작가의 말


  개인적으로 ‘모순’이란 단어를 굉장히 좋아해 글을 쓰면서도 굉장히 자주 언급하기도 합니다. 제목도 ‘기억을 걷는 시간’이지만 그 걷는 시간이 추억을 회상하는 길을 걸어가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그 기억을 걷어내려는 의미도 담겨 있거든요.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을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그러다 불현듯 정신과 의사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양극성 장애나 우울증 등에 걸린 의사의 이야기를 쓰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스토리 라인을 짜면서 문득 제가 쓰려고 하는 게 최진영 작가님의 ‘구의 증명’과 좀 비슷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넬의 노래에서 따왔으니 저의 느낌대로 조금 모방을 하는 방식으로 써보자, 해서 이 글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써야지, 하고 다짐을 했다기보단 그저 문득 떠오른 스토리였기 때문에 구성도 그저 산책을 하거나, 대중교통 안에 있을 때, 나도 모르게 중얼거려지는 중2병 같은 문구들을 메모해 둬 본문에 썼습니다. 그렇기에 조금은 어색할지 몰라도 덕분에 더 풍부한 표현이 된 글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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