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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Dec 18. 2022

저울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지? 나는 귀에 꽂은 이어폰을 뺐다. 잇따라 동네에 놓인 낡은 스피커에서 치지직, 소리가 났다. ‘현재 전국적으로 산불이 퍼질 예정이오니 즉시, 모두 한강으로 대피해주시길 바랍니다.’ 소름이 끼치는 음성에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나가려는데 이미 아빠가 마스크를 쓰고 문앞에 서있었다. 아빠는 내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고 덥석 손을 잡았다. 그리고 어서 한강으로 가자며 내 몸을 이끌었다.


 한강공원은 온통 사람으로 북적였다. 강북 방면인 반대편도 마찬가지였다. 급하게 나와 잠옷차림의 사람도 간간이 보였지만 모두가 약속한듯 입가엔 마스크가 얹어져 있었다. 우리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최대한 앞으로 나아갔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렀다. 나는 땀을 식히려 옷 앞섶을 펄럭였다. 그런데 캄캄했던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새벽의 일몰을 연상케 했다. 그러나 손목시계 위 바늘은 일몰 시간까지 닿기에 한참은 부족했다.

 왜 굳이 한강으로 모이라고 한 거야? 한강까지 왔지만 감감무소식인 스피커에 하나 둘씩 불만을 술렁이기 시작했다. 아빠도 내 손을 만지작거렸지만 초점을 잃은 눈에 불만이 있는 듯 싶었다. 그때, 머리 위로 헬기가 지나갔다. 그 중 하나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에 쏠리자 잠시 정적이 일었다. 그 틈으로 헬기 안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확성기 소리와 뒤섞여 들렸다.

 ‘화재가 곧 이곳까지 번질 예정입니다. 완전히 진압이 될 때까지 한강에 몸을 숨기십시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헬기는 곧장 산으로 향했다. 나는 주변부터 강 건너편을 훑어보았다. 모두가 한강에 들어갈 수 있을까? 아마, 몇 명이 물에 잠기며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언제 화재가 진압될 지 모르는데 언제까지 잠수를 하는 건 불가능이다. 점점 몸이 달아올랐다. 심지어는 옷을 벗어 던진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선뜻 물에 뛰어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발을 머뭇거릴 뿐이였다. 손을 타고 느껴지는 아빠의 체온이 뜨거워 나도 모르게 손을 뗐다. 아빠는 감기에 걸린 사람처럼 넋을 놓고 있었다. 괜찮은지 묻자 아빠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저 사람 잡아! 코로나 확진자야!”

 주차장에서부터 절박한 외침이 울렸다. 시선을 돌리자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 한 남자를 쫒고 있었다. 나라도 먼저 강에 들어가야겠어! 멀리서 보았어도 그의 얼굴은 잔뜩 겁에 질린 게 느껴졌다. 그러나 확진자라는 말에 사람들은 마스크를 고쳐쓰기만 할뿐 그에게서 한발짝 물러났다. 그때, 남자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연신 기침을 뱉다 괴로운 듯 신음을 냈다. 이어서 그가 입에서 불을 뿜어냈다. 그 광경에 모두가 입을 다물질 못했다. 방호복을 입은 사람도 뛰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축 늘어진 어깨에 나는 말을 더듬거렸다. 아빠를 보니 눈동자가 지진이 난 듯 요동쳤다. 나는 아빠의 손을 꽉 잡았지만 곧장 내 팔을 뿌리쳤다.

 반대쪽에서도 우리의 상황을 보았는지 웅성임이 끊이질 않았다. 모두가 혼비백산한 와중 풍덩,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물에 뛰어든 것이다. 그를 시작으로 언제 한강에 사람이 다 들어가는 지 고민했냐는 듯 넋을 놓고 하나 둘씩 강에 몸을 던졌다. 나는 아빠에게 팔짱을 꼈다. 아빠는 나를 번쩍 들더니 비명을 지르며 강가로 달렸다. 그리고 나를 강 한편에 던졌다. 젖은 머리에 시야가 가려졌다. 앞머리를 올리자 좀비떼처럼 강에 사람들이 빠져드는 광경이 보였다. 그러나 아빠는 인파에 꿈쩍도 않고 꿋꿋하게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지만 연신 얼굴에 튀는 물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여전히 산책로에는 사람으로 북적였다. 강도 마찬가지로 여러 개의 머리가 둥둥 떠다녔다. 그런데 겁에 질린 웅성임만 울릴 뿐, 더이상 물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빠를 포함한 산책로 위 사람들은 그저 허탈한 웃음을 보이며 강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뒤에 펼쳐진 산 능선 위로 불길이 퍼졌다. 강에 빠진 사람들은 모두 그들에게 어서 들어오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발을 꿈쩍이지 않았다. 그때, 한 사람이 기침을 내뱉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그녀는 멋쩍게 손을 흔들더니 등을 돌렸다. 그리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산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녀의 실루엣이 시야에서 멀어졌다. 그녀를 따라 산책로 사람들도 천천히 한강 밖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아빠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제발 아빠만이라도, 그러나 점점 멀어지는 거리는 도무지 좁혀지지 않았다. 지원을 온 헬기들이 머리 위를 지나갔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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