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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Dec 18. 2022

컴퓨터 게임



  컴퓨터 게임이라도 해봐. 어떤 게임은 치매 예방에 좋대잖아. 처음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 말을 업신여겼다. 게임은 무슨 게임. 그러나 저녁을 먹으라고 방에 있는 아들을 부르려고 하는데 문득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 뒤로 나는 그 친구에게 연락을 보냈다. 어떤 게임이 치매 예방에 좋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늘 한 시간씩은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내는 매일 이 모습이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저 양반이 어떤 바람이 불어서 매번 저러나 몰라. 그러나 차마 치매 진단서를 아내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장모님의 건강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 탓에 통통했던 아내의 볼살은 하루가 무섭게 빠져갔다. 나는 진단서를 아내가 못 보도록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다. 아빠, 이 캐릭터는 힘보단 민첩성에 투자를 해야 해. 갑자기 아들이 방에 들어와 화면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여기 사냥터는 레벨 업하기 좋지 않아. 다른 좋은 사냥터 있어. 나는 적극적인 아들의 모습에 머리를 긁적였다. 고3이 된 이후 아들과 말을 섞으려면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만 했다. 힘겹게 건넨 질문도 그는 늘 응, 아니, 됐어, 이 세 글자 중 하나로만 대답했다. 그런데 아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건 게 얼마만일까. 나는 최대한 아들의 말을 귀담아들으려 의자를 책상 앞으로 당겼다. 그가 말 한대로 마우스 커서를 옮기며 검지를 연신 눌렀다. 그러니 공격 키를 누를 때마다 떠오르는 대미지 숫자가 더 늘어났다. 내가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우자 아들이 방긋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수능이 끝나면 같이 피시방에라도 가자고 말을 덧붙였다. 아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아들도 매주 주말마다 친구들과 피시방을 가곤 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그는 늘 아내 앞을 서성이며 우물쭈물거렸다. 그게 몇 번 이어지니 그녀는 말없이 지갑에서 천 원짜리 지폐 서너 장을 꺼내 주었다. 그럼 나는 매번 아내에게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아내는 한결같이 괜찮다며 나를 설득했다. 나는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확연히 얇아진 팔, 쏙 들어간 볼,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내일 친정에 좀 내려가 볼게. 숟가락을 들기 무섭게 아내가 말했다. 그래, 가서 장모님 잘 보살펴드리고 와. 그녀는 곧장 나 없는 동안 술을 마시지 말라며 당부했다. 앞으로 무서워서 술을 어떻게 마셔. 그 말이 머릿속에 연신 맴돌았지만 아내의 축 처진 어깨에 입이 막혔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날 때까지 식기 부딪히는 소리만 울렸다. 아내가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바람을 쐐러 간다며 겉옷을 챙겨 입었다. 그녀의 밥그릇 안에는 밥이 반이 넘게 남아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게임을 더 알려달라는 핑계로 밥을 다 먹고 방으로 오라고 부탁했다.

 아들이 방으로 들어오자 나는 잠시 볼멘소리를 내었다. 그러다 책상 서랍을 열어 숨겨둔 진단서를 보였다. 그는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한동안 가만히 서있다 주먹을 꽉 쥐었다. 엄마한텐 비밀이다. 그도 내 말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예상보다 빨리 아내가 돌아왔다. 그녀는 곧장 가방을 꺼내들더니 옷과 화장품을 챙겨 넣었다. 내일 아침 일찍 바로 출발할 거야. 그러다 갑자기 나를 째려보았다. 게임 적당히 하고. 진짜 꼴 보기 싫은 거 알지? 그녀의 말에 짧게 웃음을 보였다. 그녀는 가방 지퍼를 닫자마자 바로 알람을 맞추더니 방 불을 껐다. 나는 작게 조심히 다녀오란 말을 한 뒤 부엌으로 갔다. 싱크대가 잔뜩 쌓여있는 걸 보니 점심에도 설거지를 안 한 듯 보였다. 수도꼭지를 틀고 수세미로 그릇을 닦는데 나도 모르게 눈앞이 흐릿해졌다. 이내 뺨에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서둘러 옷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아빠, 내일 같이 피시방 갈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언제부터 뒤에 서있던 걸까. 엄마한테는 비밀로 할게. 그가 덧붙여 말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응,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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