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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Dec 17. 2022

무제



  이곳은 전쟁터였다. 키보드와 마우스를 두들기는 사람들의 모니터에는 총이나 검을 들고 상대를 죽이기 바빴다. 누구는 아, 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고, 누구는 욕을 지껄이며 키보드를 쾅쾅 두드리기까지 했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나는 피시방에 오면 절로 사람들이 난폭해지기 일쑤구나, 생각했다.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화면을 슬쩍 보니 우리 인친해요.라는 말이 액정 위로 떠올랐다. 나는 살짝 미소를 보이며 메시지를 보낸 사람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사진은 얼굴 절반이 하얀 마스크에 가려져 눈만 수줍게 나와 있었다. 다음 사진을 넘기려 했지만 사진은 한 장뿐이었다. 키보드 앞에 둔 헤드셋에서 굵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열심히 수업을 하고 계시는구나. 나는 수업 화면을 띄워보았다. 선생님의 캠을 제외하곤 모든 학생의 화면이 꺼져있었다. 저 검은 화면 너머로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 학생은 몇이나 될까? 괜스레 선생님의 새하얀 머리카락이 측은해 보였다.

 턱을 괴고 선생님의 화면을 연신 들여다보았다. 역시 눈이 천천히 감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화면을 숨기고 sns 창을 띄웠다. 스크롤을 내리니 분명 같은 수업을 듣고 있어야 할 반 친구들의 게시글이 눈에 밟혔다. 누구는 머랭을 치고 누구는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그중 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뭐하냐? 전송되기 무섭게 상대방이 입력 중이라는 글씨가 떠올랐다. ‘롤 하는 중. 너는?’ 나만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는 게 아니란 사실에 콧방귀가 절로 나왔다. 나는 대학 가야지,라고 보낸 뒤 채팅방을 나갔다.

 모니터 오른쪽 아래에 걸린 시계를 힐끔, 쳐다보았다. 분명 약속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혬19에게 문자 한 통 오지 않았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보려는 순간, 한 여자가 허겁지겁 피시방 안으로 들어왔다. 문이랑 가까운 곳에 앉은 탓인지 그녀가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몇 발자국 앞에서 직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나를 아는 사람인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러자 그녀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 얼굴에 들이댔다. 나는 놀라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뒤로 당겼다. 그리고 문득, 헤드셋에 마이크가 켜진 게 아닌가 싶어 재빨리 일어나 음량을 확인했다. 그녀가 보여준 화면에 나는 놀란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저 사람이 혬19…… 슬쩍 그녀의 계정에 들어가 피드를 확인하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오늘 만나자고 한 건 나였으니 미소를 되찾고 옆자리 의자를 빼주었다.

 그녀도 컴퓨터를 켜자마자 가장 먼저 sns를 창에 띄웠다. 그리고 헤드셋을 머리에 쓰더니 스마트폰을 들어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뒷자리에선 게임이 마음대로 안 됐는지 욕을 지껄이는 소리가 넘어왔다. 그녀는 그 소리에 신경 쓰지 않고 카메라를 내게 들이댔다. 그리고 찍어줄 테니 자연스레 있으라고 시켰다. 오늘 게시물 하나 올릴 수 있겠네. 나는 그녀가 말 한 대로 헤드셋을 끼고 자연스레 의자에 허리를 기댔다. 헤드셋을 써서 그런지 선생님의 수업하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소리를 줄이고 싶었지만 최소 음향이 정해져 있었다. 수업에 집중하라고 해놓은 시스템 같았다. 나는 새어 들어오는 수업 소리를 흘러 들으며 사진 찍히는 데 열중했다. 하지만 뒷자리에서 울려 퍼지는 욕설은 도무지 흘려지지 않았다. 욕설은 점점 커지더니 큰 목소리와 함께 쾅, 소리가 났다. 그가 마우스를 집어던진 것이었다. 마우스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다 혬19의 스마트폰 위로 떨어졌다.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쳤다. 다행히 그녀의 손은 다치지 않았지만 액정과 카메라에 나뭇가지를 연상시키는 금이 갔다. 혬19는 박살난 스마트폰을 보며 소리 내 울었다.

 “정말 중요한 부분이니 다들 집중하도록.”

 혼비백산 속, 헤드셋에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급히 볼륨을 키워 귀를 기울였지만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선생님의 화면도 검게 물들었다. 잇따라 수업이 종료됐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나는 문자를 보냈던 친구에게 중요한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중요한 거? 그런 게 있었어?라는 답장에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이어서 다른 친구들에게도 똑같은 메시지를 보냈지만 모두 그와 같은 답장을 할 뿐이었다. 사라진 건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니지 않았을까……

 피시방 안으로 경찰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마우스를 던진 남자를 잡아 밖으로 연행해갔다. 그녀는 여전히 울음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나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내가 저들 보단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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