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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오 Dec 17. 2022

이해할 수 없지만



 모두가 약속한 듯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그들은 모두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있었다. 경적소리와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 그것 말고는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기환은 혀를 끌끌 차며 중얼거렸다. 요즘 젊은것들은 참.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사람들이 그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는지 힐끗 그를 쳐다보았다. 뭘 보는 거야. 뭐야, 기분 나빠. 기환의 귓가에 사람들의 독백이 맴돌았다. 기환은 괜히 그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한참을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이는데 누군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르신, 저희가 설문조사를 진행 중인데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기환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교복을 입고 머리를 한껏 끌어올린 학생이 서있었다. 작은 키에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치마, 자신의 손녀보다 어려 보였다. 기환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더니 팔짱을 끼고 그럴 시간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아, 하고 짧은 볼멘소리를 냈다. 기환이 저리 가라고 손짓했다. 그러나 그녀는 굴하지 않고 인터뷰에 응해주면 커피 한 잔을 대접해드린다고 말했다. 기환은 그 말에 제발 부탁드린다는 마음의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어린 학생이 돈이 어디 있다고. 그녀가 기환이 고개를 돌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기환은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카페 안은 온통 흰머리를 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카운터 앞에는 ‘65세 이상 아메리카노 무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본 기환은 겉옷 안주머니에 손을 향했다가 다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래도 저희 할머니가 여기 커피 맛있다고 하셨어요.  그녀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는 커다란 책가방에서 노트북과 필기구를 꺼냈다. 기환이 커피를 들이켜자 쌉쌀한 원두 맛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학교 일은 할머니랑 할 것이지. 그는 입맛을 다시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돌아가셨어요. 그녀는 바삐 움직이는 손을 멈추지 않고 답했다. 기환은 오히려 무덤덤한 그녀의 대답에 쓴 커피를 한 번 더 들이켰다. 다행히 그녀에게서 불편하다는 눈치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손을 높게 들어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이제 시작하자며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렸다. 기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첫 질문은 휴대전화 기종이 무엇인지였다. 기환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엄지로 폴더를 열었다. 아들이 사줬을 땐 나름 최신형 기기였다고! 기환이 휴대전화를 그녀의 앞에 들어댔다.

 “전화기는 전화로만 쓰면 될 것이지. 요즘 애들은 길을 가면서도 계속 이걸 들여다봐서 문제야.”

 이어서 기환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녀가 멋쩍게 웃음을 보였다.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지만 기환은 말을 멈추질 않았다. 이게 요즘 애들을 멍청하게 만든다, 나 어릴 적엔 차라리 책을 보면서 걸었다. 그녀는 기환이 숨을 고를 때까지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어르신은 만약 스마트폰이 사용자가 위험에 처했을 때 자동으로 구조를 요청하는 시스템은 원치 않으시겠어요. 기환은 그녀의 말에 주먹을 쥐었다. 고작 이게 뭘 안다고 나를 도와? 그녀는 높아진 그의 언성에 절로 눈이 커졌다. 다시 그가 숨을 고르며 커피를 마시고서야 키보드를 두들길 수 있었다. 다음 질문을 하러 고개를 들었을 땐, 기환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도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그곳엔 그가 앉아있던 벤치가 있었다. 둘은 잠시 아무런 대화 없이 연신 그 벤치를 바라보았다.

 침묵을 깬 건 기환의 한숨이었다. 그제서 그는 언성을 높인 것에 짧게 사과를 건넸다. 그녀는 기환의 말을 못 들은 듯 여전히 창밖을 들여다보았다. 우리 할머니가 저기서 차에 치어 돌아가셨지. 마스크가 입을 가렸음에도 기환의 귀에 뚜렷하게 들어왔다. 분명 그녀가 말한 게 아니었다. 기환은 다시 벤치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다 차에 치인 손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뒤에는 그녀를 살리려 몸을 던진 할머니가 있었다. 결국은 두 명 다 목숨을 잃었다. 만약, 더 빨리 구조가 왔으면 할머니가 살 수 있었을 텐데. 다시 그녀의 소리 없는 독백이 기환의 귀에 들어왔다. 그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할 일이 생겼다는 핑계를 댄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잠시만요, 하고 기환에게 스티커를 건넸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이 시스템에 대한 찬반 여부에 붙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곰곰이 투표용지를 바라보다 스티커를 붙이고 카페를 뛰쳐나갔다. 그의 등 뒤로 그녀가 허리를 숙이며 감사했다고 말했다. 기환이 나가고 그녀는 투표용지를 뒤집어보았다. 그녀가 건넨 붉은 스티커는 찬성이라 적힌 칸 가운데에 붙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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